기억의 저편
세월만큼이나 늙어버린 누런 주전자에
막걸리 한 되가 숨이 차다
새참 나르는 길은 언제나 호젓해서 좋았다
조각조각 이파리들이 팔랑팔랑 계절을 알리고
이름모를 들꽃들이 좁은 길에 줄을 서서 피어있고
군데군데 에리한 속새풀들이 보초를 서 주었다
아버지가 손을 흔든다
들판이 흔들린다
세상은 늘 바르게 사는 사람들에게 비켜나 있다
허기짐이 따른다
목젖을 파고드는 막걸리 한 사발이 아버지의 힘인가
얼굴에 붉은 꽃들이 잠시 피었다 진다
먼 길 떠나신지 스무해
서 계신 자리에 잡풀이 우거지고
꽃들도 어김없이 계절을 찾는데
기억속의 낡은 아버지는 저만치 멀어져 있다
양은 주전자만큼 나도 낡아져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