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아냐?
철학자아들, 이 다음부터는 '철학자'로 줄여서 말한다, 철학자가 6살 무렵 그 어머니인 수학선생은 거의 날마다 앞산에 올라갔다. 위로 오르면 등산이 되고 옆으로 가면 오솔길 산책이 되는 좋은 산이 집앞에! 있었던 것이다.
사실... 수학선생이 이 산 앞동네로 이사온 것은 그의 나이 20살 무렵이었다. 이사 오기 전날 밤 꿈을 꾸었는데, 새 집 베란다에 나가 양치질을 하는 꿈이었다. 이른 아침인 듯 초록색 난간에는 이슬이 흥건히 맺혀 있었고, 샤시를 하지 않은 베란다에서는 역시 물기 먹은 앞산이 잡힐 듯 가까이 보였다. 11층이라는 사전정보가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아직 가보지 않은 새집의 베란다는 위태위태하게 높았다. 그리고 비스듬한 경사가 느껴졌다. 경사를 느끼면서부터는 난간 사이도 넓어 보였다. 약간의 아찔함까지 더해져서 더할 수 없이 매력적인 새집의 꿈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다음날 찾아간 집은 이 꿈과 별다르지 않았다. 단지 새 아파트를 장만했으니, 이제부턴 김치만 먹어야한다던 수학선생의 어머니 말씀이 농담이 아닌 말 그대로의 사실이었던 기억이 덧붙었다.
어?든 그로부터 대충 13년 후에 수학선생은 철학자와 함께 앞산의 오솔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이 산책을 할 때는 수학선생의 약 5미터 뒤를 철학자가 일정하게 뒤따라간다. 앞서가는 수학선생은 눈으로 길을 살피고 간혹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면 철학자를 기다려서 손을 잡고 간다. 다시 평탄한 길이 나오면 손을 놓는다. 그러면 철학자는 다시 5미터의 간격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 날 수학선생은 철학자를 기다려 생수병을 넘겨주었다. 목이 마를 수 있겠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먹고 싶을 때마다 알아서 목을 축였겠지 하는 흐믓한 마음. 한동안이 지난 후 다시 철학자를 기다렸다가 넘겨받은 생수병은 말끔히 비어있었다. "이걸 다 먹었니?" 철학자의 설명은 이러했다. 즉, 비 온 자리가 말라가면서 갈라터진 흙에다가 부어주었다는 것이다. " 그래 그래 물이 먹고 싶지? " 아마도 십중팔구 이렇게 중얼거렸을 것이다. " ...더 달라고? 나도 이게 다야! 할 수 없지 뭐. 이걸로 만족하라구...먹고 싶은대로 다 먹을 수는 없는거야...됐지? 안녕! 다음에 또 만나자!" 어머니로서의 직감에 따른다면 추가로 이렇게 중얼거렸을 확률도 꽤 높다.
그 날인지 그 다음 날인지 철학자는 또 이런 얘기를 해서 수학선생을 경악하게 하였다. 둘이 나란히 앉아 연못에 떠있는 오리를 보고 있었는데, 수학선생은 다정한 오리부부의 모습에 절로 섭섭한 마음이 들려던 참이었다.
"엄마 저건 오리새끼야?"
"응?"
깃털이 하나 뒤집혀서 오리 곁에 떠 있었는데, 철학자가 그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오리새끼인 걸로 생각한 것이다. 떠 있는 모양이며, 깃털소재며, 어미오리 몸에서 나온거며...오리털과 오리새끼가 얼마나 근본적으로 다른 것인지 설명할 말이 막힌 수학선생은 화가 났다.
"바보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