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기심 천국 세 딸들이 크고 있었다.
모두 청소년기에 접어들어 있기에 알고 싶은 것이 많아
이성에 대한 효기심은 더 많았다.
아이가 재촉했다.
엄마의 첫사랑을 고백하라고...
쳇! 이녀석들은 내가 여자도 아닌줄 아는가.
괘씸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나의 첫사랑을 고백했다.
나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지금의 남편과 결혼을 한후 가끔씩 그사람은
어디서 무엇을하며 살고 있을까 궁금해질때도 있었다.
가끔씩 꿈을 꾸기도 했었다.
아이들이 나에 첫사랑을 찾아주겠단다.
허참! 이녀석들이 아빠에게는 불효인것을...
아이들이 깔깔 웃는다.
아이들은 나를 불쌍하게 생각할때가 많다.
밤비내리는 소리만 들어도 새싹이 움트는 소리를 들을수 있으며
내일 기후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감지할만큼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나와는 달리 아빠는 항상 털털이 지나쳐서
"그냥 남자."
함께 찻집엘 간다는 것은 용서할수없는 범법행위이며
둘만의 여행을 꿈기기엔
너무가 큰 범죄이기에
그저 밥벌어 먹이기에 만 충실한 남자.
그리살다보니 나도 남편을 닮아가는지
어느새"퉁부처"가 되어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큰아이 어린시절 "소나기"라는 책을보면서
엄마의 첫사랑을 묻길래 살짝콩 나의 첫사랑을 들려주었던 기억이 난다.
글을 쓰다보니 첫사랑 고백이 지금 처음이 아님을 알겠다.
아마도 이녀석이 그걸 마음에 두고있다가
지금 얘기를 하는듯..
아이가 빠르게 컴퓨터를 검색하고 있었다.
그리고는 쨉도안된다고 외쳐댔다.
무엇이 그리 쨉도 안되냐고 물었더니
첫사랑 그남자는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 되어있었단다 했다.
아빠랑은 쨉도 안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재잘거렸다.
이제 아빠 엄마가 모두 늙어서 첫사랑을 찾아도 무방하단다.
그리고는 아이들이 모두 객지로 나갔다.
나원참!
아이들로 인해 잠자고 있던 내 첫사랑에 불을 질러댔다.
딱 한번만 보고 싶었다.
아니 10분만 .
아니면 편지 한통만이라도 건넬수 있다면....
그사람과 헤어진후로 딱 일년만에 결혼을 하였다.
그남자는 나에 결혼에 대해 몹시 분노하고 있었다.
그사람과 나는 주로 펜으로 만났었다.
그시절에는 표절이라는것이 없었기에.
더 아름다운 사연을 나눌수 있었으며
한참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시절이었기에
더 좋은 추억을 엮어갈수 있었던것같다.
그것이 나에 첫사랑이 되었다.
그러나 글로 나누는 사랑과
현실적으로 나누는 사랑과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아마도 인연이 짧았던지 그 벽을 넘지못했던것 같다.
누가 먼저 용기있게 팡팡쳐서 그벽을 깨부수울수 있었더라면....
지금도 그 사람에게 받았던 "악세서리 자전거"를 잊지 않았다.
조동진에"울고있나요 당신은 울고 있나요..."라는 노래를
부르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와의 첫만남은
눈이 내려 발목까지 푹푹빠지는 겨울이었다.
더풀더풀 내리는 눈송이를 헤치며
산성공원에서 데이트를 하였다.
칙칙한 진 회색빛 하늘을 타고 내리던 눈송이가 얼마나 아름답던지
환상의 극치였다.
그러나 그사람과의 아릿한 헤어짐은 많이도 가슴이 아팠다.
그시절 나는 학력에대한 콤플랙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공부잘하는 오빠밑에서 자라면서
내스스로 상처를 만들며 살았던 것 같다.
결혼하여 아이를 잘기를수있는 남자를 결혼 1순위로 꼽았었다.
그남자가 그것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대학을 휴학한체 군에 입대한줄 알았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대학을 자퇴한 상태로 군에 입대를 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졸업을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너무나 실망한 나머니 어리석게도 이별을 선언하는...
다 ~부질없는것을.
대학이 뭔 대수라고 그러나그때는 몰랐었다.
그사람역시 자기자신이 대학을 중퇴한 상처에대해 오열을 하고 있었나보다.
결국은 그사람과 나와의 사이에 가로놓여있던 학력이라는 벽을 깨지못하였다.
생각해보니 그사람과 나사이 두가지 벽이 있었던것같다.
하나는 글과 현실과의 차이에서오는 벽이었으며
또하나는 학력이라는 벽이었다.
둘중에 누구 하나가 그 벽을 팡팡 때려부숴버렸다면 어찌되었을까?
우리는 그렇게
3월초에 헤어지고 4월달에 우연히 남편을 알게되었다.
첫사랑과 헤어지고 얼마되지 않은 상태라 결혼이라는것은 상상도 할수없었으며
죽을때까지 사랑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더구나 늦다리 같은 남자를 사귀고 싶지도 않았다.
친구소개로 알게된 새남자는
몸도 약해빠지고 돈도 없고 직업도 없는 남자를
첫사랑의 공간을 메꾸기위해 슬슬 만났다.
그러나 그래도 그것이 인연인지
별볼릴없는 우리 남편이 한없이 가여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알고난사실 "이남자도 나에게 학력을 속이는.."
하 -참 - 나원!
가방끈이 짧은것은 나에 운명이었나보다.
남편을 소개받을때 모모대학 출신이라 들었는데
그는 소개한사람이 잘못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같은 이유로 두번째 남자와 헤어질수가 없었다.
몇달후 그 첫사랑의 동생이 나의 직장으로 찾아왔다.
형이 다시 대학에 갔으니 다시 시작해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지금의 남편을 건져주기로 결심을 하고있는 터이기에
복잡해지는것이 두려웠다.
그의 동생에게 "나는 이미 약혼을 했노라" 말했버렸다.
며칠후 첫사랑이 황급히 찾아왔다.
약혼했다는 말이 사실이냐고 몹시도 분개해있었다.
자기와 헤어지고 몇달되지도 않았는데 약혼이라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이냐고 오열했다.
오랜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분노하는 첫사랑에 추억이
아릿한 영상으로 가슴깊이 맺혀 있어서 나를 아프게 했다,
나는 그때 남자의 눈빛이 무서운것이라는것을 알았다.
그리고는 그 남자와는 끝.
나에 남편은 본의 아니게 학력을 속였다는 사실을 몹시 미안하게 생각했다.
결혼을한후 참 열심히 살았다.
나에게 아이들을 잘기를수 있도록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며칠전 회갑년에서 우리 친정식구를을 다 모여놓고
우리 친정아버지께 감사인사를 드렸다.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딸을 냉큼 내어주셔서 감사하다고.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았다고"말했다.
가슴이 찡했다.
남편도 어 느정도는 나에그첫사랑에 대해 알고는 있지만
내 가슴에 이렇게 긴 아픔으로 자리한줄을 모르겠지.
우리 아이들 역시 지엄마 가슴이 이렇게 아펐으리라 상상도 못했겠지.
첫사랑을 찾아 컴퓨터 여행을 하면서 그사람이
모모기업 "CEO"가 되어있으매
감사 감사 첫사랑 잘됬으면 됬지. 야호 ! 만세다.
그리고 참 우연한것은
그사람이 "상구보리 하화중생"이라는 블로거를 2010년부터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전혀 무관하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다음해에"위로는 보리를 구하고 아랫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글을써서 전시회를 하였다.
우연치고는 정말 묘상한 우연이었다.
며칠동안 첫사랑 여행을 하였다.
그사람은 나를 얼마만큼 기억하고 있을까?
내 첫사랑 내곁으로 10분만
딱 10분만 만나서 사과를 하고 싶다.
아니면 전화 한통만...
그러나 이기적인 생각이고 내 첫사랑에 또다시 허물을 입히고 싶지 않다.
또 신기한 것은 우리 작은딸 직장에서 그와의 직장이 10분거리밖에 되지않았다.
자장 ~ 자장~
내 첫사랑 추억들이여!
잠들어라.곱게 곱게 잠들어라
이리하여 첫사랑 여행을 멈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