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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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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게 죽을 준비


BY 그대향기 2015-12-03

 

 

 

​요즘 부쩍 죽는다는 문제가 간단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친정엄마처럼 딱 일주일 병원에 계시다가

자식들의 때 늦은 효도나마 받고 돌아가시면 좋으련만

본인이 서서히 죽어가는 걸 의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고통은 있는데로 다 느끼며 죽어간다면 얼마나 슬프고 끔찍스러울까?

연세 드신 분들이 자는 잠에 죽기를 원하는 마음을 이해한다.​

연세 많은 노인들을 모시고 사는 생활이 벌써 23년째

매일매일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고

일주일에 한번씩 목욕탕에 가서 등을 밀어드리고

아프면 병원으로 식사준비를 위해 시장으로

분주히 오가는 생활 속에서도 죽음을 체감하며 산다.

하기사 삶과 죽음 사이는 종잇장 하나 차이기도 하다.​

감기가 오래 안 낫는다 싶어서 병원에 모시고 갔더니 폐렴으로 돌아가시고

잦은 소화불량으로 큰 병원에 갔더니 간암이라고 하셨다.

치매로 힘들게 병원생활을 하신 할머니도 있었다.

만성신부전증으로 날마다가 전쟁이셨던 할머니

심장병에 고혈압에 당뇨는 기본이고 방광염과 ​피부트러불까지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이신 할머니는 매 끼니 약이 한주먹이시다.

조금씩 치매끼가 나타나기 시작하셨다.

자꾸 남을 의심하고 본인이 소외당하고 있다는 착각으로 괴롭다.

하루에도 몇번씩 통장을 확인한다.

본인이 못 찾으면 무조건 남편한테 내 놓으라시니 그것도 참....

한두번이면 웃으며 대할 수 있겠는데 매번 그러시니 난감하다.

본인의 실수가 아니라 번번히 남의 탓이다.

나이 탓으로 봐 드리는 중이다.

그래도 87세 할머니 치고는 아주 양호하다고 본다.

개인 위생 깔끔 이상이고 미적 감각도 젊은이 저리 가라다.

유행에도 매우 민감하시다.

젊음을 지키는 비결처럼 보이시는데 그래도 나이는 못 속이는 모양이다.

세월 거스러는 장사없다더니 딱 맞는 말이다.

본인은 천년만년 사실 것 처럼 뭐든 쟁여 놓으신다.

이것도 다음에 사용할 것 같고 저것도 이 다음에..

나눔이 좀 약하다.

돌아가시고 나면 누군가는 그 짐을 다 정리해야 하는데

자꾸만 자꾸만 모아두시고는 깡그리 잊어버린다.

유효기간이 몇년씩 지난 화장품을 생일 선물로 주시기도 한다.

아까워서 발에 바르기도 하는데

날짜 지나기 전에 기분 좋게 선물 받고 싶다.

몇년 전에 어떤 할머니는 죽은 사람 물건 정리하기 힘들다며

미리미리 나누어 주시고 본인 물건을 하나둘씩 처리하셨다.

그런 행동이 죽음을 준비한다는 걸 아실텐데도

전혀 동요없이 오히려 아름답게 느껴졌다.

죽음 앞에서 담담해지기가 쉽지 않다.

천수를 누리다가 고요히 잠든 듯이   가면 얼마나 좋을까만

사고로 고통받다가 또는 질병으로 신음하다가 죽을 수 있다.

서서히 죽어가는 걸 느끼면서 받을 고통 다 받으며 죽는다면

그런 죽음만큼 힘든 죽음도 없을 것 같다.

망가지고 형편없어진 몸으로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별해야 한다.

사랑하는 가족들한테 힘든 모습은 안 남기고 싶지만

그게 내 의지하고는 상관없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질병이고 사고다.

예방을 하고 주의를 한다고 하지만

활화산이 될지 휴화산이 될지

그건 순전히 내 희망사항에서 벗어난 ​사건들이다.

솔직히 나는 오래 살고 싶다.

이 세상은 즐겁고 신나는 일이 너무 많다.

물론 아프고 힘든 날도 있지만.

그래도 나는 행복한 날 쪽에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다.

우선은 내가 행복해야겠지만

나의 가족들과 내가 아는 좋은 사람들이 행복하다 말하는 삶이길 바란다.

그리고 죽는 날까지 크게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

아프면 반복되는 고통이 거의 공포수준이다.​

내 가족들도 그리고 내가 기억하는 좋은 사람들도.

오래오래 건강하게 잘 살다가

어느 날 하늘나라로 불려 갔으면 좋겠다.

아쉬울 것도 없고 서러울 것도 없을 나이에.​

가는 사람도 남는 사람도 편히 인사할 수 있는 그런 이별을 하고 싶다.

세상 끝날까지 정신은 흐려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기억하는 내 사랑하는 모든 이들을 잊고 싶지 않다.

내가 모시던 할머니처럼 본인이 갈 날짜를 이틀 정도만 틀리고

어느 정도 알수 있어서 차근차근 내 주변을 정리하고 싶다.

내가 아끼던 물건 줘서 반길 사람한테 주고도 싶다.

이만하면 참 잘 살아냈다고 생각이 들 때

춥지도 덥지도 않은 좋은 계절에 편안히 숨을 거두고 싶다.

가쁜 숨이 아니라 고요한 숨고르기.

목련이 피는 계절이나 라일락꽃이 피는 계절이면 더 좋겠다.

친정엄마처럼 소나무향이 좋은 야트막한  산에 뭍히고 싶다.

작은 결혼식처럼 내 장례식은 작은 장례식으로 하라고 해야겠다.

젊은 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낯설겠지만

할머니들은 죽음에 대한 준비가 되는 분이 있고 전혀 안되는 분도 계시기 때문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순서에 맞게 유언을 하신 분도 있고

죽음이 임박했는데도 생명의 끈을 놓지 못하는 분도 있다.

죽음에 초연해지기가 사는 것 보더 더 어려운 문제같다.​

곁에서 봐 왔으니 아름답게 준비해야겠다는 여유를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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