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틀 동안 비가 왔다.
태풍을 안은 비라 바람도 제법 불었다.
오후부터 내리기 시작하던 비는 밤에 더 거친 바람과 함께 빗줄기도 굵어졌다.
후둑후둑 내리던 비가 후두둑....
처마끝에 내 달은 차양이 제법 두들겨맞는다.
처마 끝 풍경은 뎅그렁뎅그렁 분주히 우는 밤
방에 불을 다 끄고 촛불을 켰다.
방의 눅눅함도 좀 말리고 향초의 은은함도 즐길 겸
도자기촛대에 작은 향초를 피워 놓고
오래간만에 시디가 아닌 녹음테이프를 돌렸다.
비오는 날에 맞는 피아노반주곡으로.
맑은 날 밤 보다는 비오는 밤이 더 분위기 잡고 싶어진다.
그래봐야 향초 하나 켜 두고 오래 된 테이프 돌리기지만.ㅋㅋㅋ
직직지이익....
오랜만에 돌아가는 오디오는 힘에겨운가보다.
애들이 다 떠나가고 없는 큰 집에 남편과 둘만 있다.
남편은 남편서재에 나는 내 미니서재에.
이맘 때 우리 나이 때는 아이들이 집에서 대학을 안 다니면
거의 다 부부만 남는다.
시골이라 교통이 불편해서 애들을 기숙사가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시켰다.
일찌감치 애들을 떼 놓은 셈이다.
대학 때도 집에서 다들 멀리 갔다.
최소 4시간거리.
떠나보내는데는 익숙하다.
두 딸도 아들도 안스러움은 없고 쿨하게 잘가~
꼭 덧붙이는 인삿말은 건강해라~
그래놓고는 택배만 무진장하게 자주 많이 부쳐준다.
혹시라도 밥 안 해 먹고 먹을거 떨어져서 굶을까 봐.
내가 택배 보낸거 받는 날은 딸들이나 아들 친구들 잔칫날이라고 했다.
"얘들아~우리엄마 택배왔어. 모여모여~"
신나게 털어먹고 나눠먹고 떨어지면 친구네들 돌아가며 같이먹고
그래서 우리애들 주변에는 친구들이 많대나 어쨌다나?ㅋㅋㅋ
오늘도 아들한테 가을겨울 이불을 택배로 보냈다.
여기보다 추운지방이라 두툼한 이불 3장에 베개까지 새걸로.
받는 즉시 그 박스에 지금 있는 여름이불을 착불로 보내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불 사이사이 치약이며 새타올과 과일을 꼼꼼하게 챙겨넣었다.
저번에는 용돈까지 비밀스럽게 살짝 넣어줬는데 이번에는 참기로 했다.
다달이 주는 용돈에서 추가로 십만원을 더 준게 있었다.
향초와 함께 아이들 생각하는 내 마음도 녹아든다.
멀리 있다고, 비행기를 타고 이국으로 날아가 있다고 안 그리울까?
쿨하게 덤덤하게 떠나 보내는 그 마음 뒤로
내가 떠나보지 못했고 내가 걸어보지 못했던 아쉬움도 따라간다.
가라 더 멀리로.
결혼이라는 새장에 갇히기 전에 더 멀리 가 보고 오너라.
가 보고, 해 보고, 겪어보고, 안주하고 싶을 때 돌아오라고 떠나보냈다.
우리 엄마가 안 해 준걸 내 딸한테는 내 아들한테는 해 주고 싶었다.
내가 덜 먹고, 내가 덜 입고, 내가 덜 욕심내기로 했다.
촛불이 점점 희미해져 가고 피아노곡이 느려지게 느껴 지는 밤
삼베이불이 갑자기 서걱거리는게 어색하다.
이번 주만 깔고 세탁해서 풀기를 빼고 접어 넣어야겠다.
퀼트 면 요를 깔아야할까 보다.
여름이 물러가는 소리가 들린다.
풀벌레소리가 다르다.
여름벌레가 아니고 가을벌레소리다.
야산에는 벌써 덜 익은 밤송이들이 퍼렇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을이다.
풋가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