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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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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주는 만큼만


BY 한이안 2015-08-26

농사를 짓다 보니 일기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하늘이 하는 일이라 탓할 대상도 없다. 그럼에도 내 마음 속에 하늘을 향한 야속함이 들어앉는다.

하늘도 야속하지. 어찌 이렇게 땡볕으로 자글자글 온 누리를 태우시는지!

그 원망이 하늘에 닿았을까? 아님 하늘도 더는 사람들의 타들어가는 마음을 외면하지 못했던 걸까? 아니, 작물들이 속절없이 타들어가는 것을 더는 지켜볼 수 없었을까? 하늘이 비를 내려준단다.

난 전국적으로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에 비를 기다리며 내 타들어가는 작물들을 달랜다.

곧 비가 올 거란다. 물이 고파도 그 때까지만 참아라!”

가뭄에 참깨 사이에 심어놓은 들깨가 자라지 못하고 땅으로 주저앉을 기세다. 들깨들에도 며칠만 참아내라고 어르고 또 어른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은 영 편치 않다. 갈증에 말도 못하고 축 늘어져 있는 걸 보기가 너무도 안쓰럽다. 그도 그럴 것이 옮겨 심고 나서 빗물 한 번 제대로 받아먹지 못했으니 버티는 것인들 맘대로 될까? 그 생각을 하니 버티라는 말이 외려 미안하다.

들깨가 저 모양이어서 먹을 수나 있을지 모르겠어요.”

옆 밭을 경작하시는 아주머니와 잠깐 일손을 놓고 마주 앉아 말을 건넨다.

비료를 줘야지?”

무슨 비료요? 복합이요?”

약과 비료를 쓰지 않는는 걸 고집하던 내가 아주머니의 말에 바로 반응한다.

요소를 줘야지?”

그 말에 귀가 번쩍 뜨인다. 생각도 오지게 돌아간다.

키가 커야 열매가 많이 맺힐 테니 우선 키부터 키워야겠네요?”

하늘이 잔뜩 흐리고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난 서둘러 밭으로 내달린다. 빗방울이 빗줄기라도 되는 양 내 마음이 촉촉하다.

비가 내리면 그 비에 녹아 스며들어 내 들깨를 튼실하게 키워줘?’

난 간절한 바람을 담아 들깨 밑에 요소를 한 줌씩 쥐어뿌린다. 요소 뿌려주는 일을 마치고 손을 탈탈 털며 난 흐뭇하다.

비가 온단다. 뿌려준 양분 잘 빨아들여 쑥쑥 자라렴.’

빗방울이 닿은 옷이 습해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욕실로 향한다. 걱정은 싹 물러간 홀가분함이 찾아든다.

한데 웬 걸? 빗방울은 빗줄기가 되어주지 않았다. 그것도 감질나게 조금 내리고 만다. 빗줄기를 생각하고 요소를 한 줌씩 뿌려줬는데 불난 데 부채질하고 온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타죽을 텐데, 하늘이 어찌도 이리 야속하냐? 그래도 어쩌겠어. 하늘이 하는 일, 하늘이 주는 만큼만 먹어야지.’

그렇게 내 마음을 달랜다. 달래도 다 아물지 않는 섭섭함은 여전히 하늘을 향한다.

하늘도 야속하지. 빗줄기 좀 시원스레 내려주면 어디 덧이라도 나나?

햇볕이 쨍쨍하다. 햇볕을 탓할 마음은 없는데 말라 물기 없는 땅을 보는 마음은 편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