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탁샘이란 책을 읽었다.
탁선생님이 강원도 산골학교에서 겪은 일들을 에세이형식으로 쓴 글이다.
내 어린 시절이 떠오르고 그때 산을 오르내리며 봤던 풍경이 고스란히
밀려와 첫장부터 끝장까지 맛있는 음식 아껴먹듯 재미있게 읽었다.
그 글 중 짧은 글 한 편과 아이들이 쓴 시 두 편을 소개할까 한다.
중간중간에 내 어린시절 풍경도 그려 넣었다.
* 책상 나르기
개학을 해서 창고에 넣어 두었던 내 책상을 교실로 옮겼다.
광복이랑 둘이 들고 가려는데 책상 다리가 발에 걸려서 제대로 들고 갈 수가 없다.
책상을 뒤집어서 들고 가니 편했다.
광복이가 책상을 끙끙 겨우 들고 가다가 머리로 책상을 가리키며 웃는다.
"망신이다. 망신도 망신도 개망신이다."
"광복아, 뭐가 망신이여?"
"보세요. 책상이 뒤집혀서 가잖아요."
생각해 보니 다리 네 개를 하늘로 뻗은 채 우리 손에 들려 가는 책상 모습이 우습기도 하다.*
나는 산을 하나 넘어 학교를 다녔다.
책보따리를 허리춤에 매고 친구들과 장난도 치고,
봄엔 진달래 꽃을 입이 퍼래지도록 따먹고
여름엔 도랑가에 꿀풀이나 물봉선화 꽃 달달한 똥구멍을 빨고,
가을엔 고소한 깨금을 딱먹고,
겨울엔 꽁꽁언 손을 호호불어가며 눈길을 걷다보면 땀이 흐르고,
다시 봄이 오면 산새소리에 맞춰 학교를 가고,
고갯길에 빼꼼히 나를 보던 나리꽃과 귀퉁이 밭에 피어난 메밀꽃, 감자꽃.
그 산 길따라, 미루나무 신작로 길따라 학교에 가면
하얀 단층학교와 착했던 선생님들이 이 책을 읽으니 가지런히 보였다.
**봄꽃(3학년 하지연)
나는 자두꽃 봤는데
복숭아꽃도 다 보고
그래가주고 강아지를
할머니네 강아지 똘똘이를 데리고 가서
머리 위에 올려 주고 싶었다.**
내 어린시절 고향 풍경은 꽃, 꽃, 꽃이 그려진다.
위 아이의 시는 혼자 꽃구경하다가 강아지도 보여 주고 싶다는 마음을 표현한것같다.
나도 꽃을 보면 나혼자보기 아까워 친구들에게
"여 여 도라지꽃이다. 나리꽃이 우릴 쳐다보는 것 같지?"
친구들은 별 감흥이 없지만 나 혼자 감흥에 젖어 산길을 내려오면서 신나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마을(4학년 주미경)
개구리가 세마리 정도 있었는데
비가 오니까
논에 엄청 많다.
손님들이 와서
와, 여기는 개구리 마을이구나 했다.
비가 안 오니까
신기한 마을이 생겼다.
산딸기를 따먹으니까
시구운 산딸기 마을이다.
요즘엔 오디가 많이 열렸으니
오디나무 마을이다.***
산길을 걷다 산딸기 따 먹고, 뱀딸기도 따 먹고, 가만히 있는 뱀에게 돌팔매질도 하고,
길가마다 밭가마다 도랑가장자리마다 오디나무(뽕나무)가 많았다.
오디나무는 키가 작은 편이라 따먹기가 편했다.
입이 까매지도록 실컷 따먹고, 찌그러진 누런 주전자에 한가득 담았다.
바람이 불면 개밥그릇이 날아가고, 나무가지가 빙빙돌았다.
아까운 앵두가 떨어지고, 대추나뭇잎이 훠어얼 사과과수원 오솔길로 날아갔다.
강원도 산골이라 겨울엔 눈이 내 허리만큼 왔다.
외할아버지가 학교가는 큰길까지 길을 내 주었고,
뒷간가는길도 구멍처럼 뚫어주고, 옆집 가는 길도 서로 뚫었다.
양지바른 흙담벼락에 앉아 날고구마 깨물어 먹고, 고드름을 왕사탕 먹듯 와드득와드득 씹었다.
때양볕, 낡은수건 머리에 쓰고 밭에서 김을 매던 외할머니가 나만 보면 환하게 웃던 얼굴이 떠오른다.
순하고 착했던,외할머니 잔소리가 심해도 허허웃던 외할아버지가 아궁이불에 노랗게 구워주던 찰옥수수.
이모들과 냇가에 빨래하러 가고, 봄이면 광주리 옆에 차고 나물 뜯으러 갔던 어린날의 풍경이
이 책을 보면서 내내 떠올랐다.
책을 읽으며 잠시 옛날을 회상하느라 멍때리기도 하고,
눈에 눈물이 고이고, 입가엔 미소가 걸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