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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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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이 쓰는 편지(10)


BY 편지 2014-12-01

내가 일하는 이곳의 창은 안에서 잡아당기는 쪽창이다.

윗부분의 창은 그런대로 넓은데 열리지 않고,

아랫부분의 작은 창은 앞으로 당겨서 삼분의 일만 열리는 창이다.

왜 이런 답답하고 실용성도 없게 생긴 창으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관공서 창들이 대부분 이렇게 생긴 이유는

도둑방지와 빗물이 들어오지 말라고 이런 방식을 쓴 것 같다.

 

이 창에선 뒤뜰과 갈지자 오솔길이 보인다.

탁한 노란색 나뭇잎이 매달린 이름 모를 나무가 있고,

그 옆으로 물기는 말랐지만 제법 많은 잎이 붙어있는 단풍나무가 보인다.

단풍잎 아래에 떨어져 있는 잎이 미술시간에 했던 데칼코마니 같아서 감탄을 했다,

청소반장님이 나뭇잎을 쓸고 있는 소리가 쓱쓱쓱 난다싶더니

후드득 탁탁탁 소리가 나기에 창문을 봤더니 나뭇가지를 흔들어 조금 남아있던

나뭇잎을 떨어뜨리고 계셨다.

그래, 이제 가을이 손 흔들며 가는 11월이지.”

하던 일을 마저 하고 얼굴을 딱 붙여 다시 창밖을 보니 나뭇잎 무덤이 여러 군데 생겼다.

 

서정적이면서 글을 잘 쓴 책을 요즘 읽고 있다.

나는 서정적인 걸 못 견디게 좋아한다.

한 줄의 시도, 몇 장의 수필도, 두꺼운 소설도, 수채화 그림도, 대중음악도

서정적인 걸 찾아보고 자주 듣게 된다.

도서관에서 책 제목 때문에 손이 가서 빌리게 되었는데,

차창 밖의 자작나무이영미님이 쓴 여행기.

러시아 문화예술기행인데 사진도 그림도 러시아 예술가들의 이야기와 풍경이 어우러져

서정적이면서 아름다운 책이다.

난 마음에 드는 책은 글자 한자 한자 놓치지 않고 꼼꼼하게 읽게 된다.

 

러시아는 자작나무가 많다.

러시아 횡단 기차를 타면 자작나무만 끝도 없이 보인다고 글에 쓰여 있다.

작가는 러시아에 공부를 하러 갔다.

작가가 살고 있는 곳 창밖엔 자작나무가 보이고 자작나무가 이마를 맞대고 있는

산책로를 걷고 러시아 사람들을 보고 러시아 개를 보고 카페에 들려

차를 마시는 자질구레한 일상 이야기이다.

러시아 여자들이 깜짝 놀라게 예뻐서 못생긴 여자가 더 눈에 뜨이고

개를 사랑해서 떠돌이 개한테 동전을 던져주고, 개를 막내자식으로 소개할 정도라고 한다.

큰 개도 지하철에 태울 수 있고,

우스갯소리로 러시아 개는 혼자서도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는데

러시아엔 예술가들도 참 많다.

그 예술가들의 성장기와 완성기와 죽음까지 자세하게 소개를 했다.

예술가들은 일찍 죽었는데, 그들은 하늘나라에서 또 다른 해야 할 일이 있는 듯

서둘러 훌쩍 떠난다고 표현하고 있다.

러시아 사람들의 이름은 참으로 길고 발음하기도 기억하기도 어렵다.

막심고리키는 소설가인데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슈코프란다.

막심고리키는 작가 스스로 붙인 이름이라는데, ‘견디기 어려운이라는 뜻이다.

평범한 태생이나 보편적인 삶을 가진 사람들은 예술가로 성공하기가 어렵다.

성격이 삐뚤어지고 개성이 강하고 나쁘게 말해서 약간 정신이상자들이

예술가로 성장하고 자기만의 묘하면서 독특한 예술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밋밋한 느낌의 화단에 나뭇잎이 쌓이면

자신의 다리 밑에 떨어진 낙엽은 사람들의 발길에 부서지지 않고 데칼코마니 같이

그대로 찍혀 예술작품이 되고,

11월엔 뜰마다 나뭇잎 무덤이 생겨 쓸쓸함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지만

그 나름의 고독과 서정이 흐른다.

 

나뭇잎이 물드는 가을이면 창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고 길어지게 마련이다.

이렇게 좁고 작은 창을 보면

11층 부엌 창에서 내려다본 아이들이 어렸던 가을이 그려진다.

11층이라 앞 베란다엔 높은 복합 상가와 하늘만 덩그마니 보여서 별로 흥미롭지 않은데

내가 가을을 느끼고 바라보게 된 곳은 반대편 부엌 창이었다.

그 곳 아래엔 공원이 보이기 때문이다.

차창 밖의 자작나무작가가 살고 있는 창처럼

내가 살았던 부엌 창 아래에도 풍성한 가로수가 두 줄로 나란히 보이고

오솔길이 있는 공원이 있었다. 그 공원엔 자작나무가 모여 있고

낮은 상가엔 우리의 단골 가게들이 자작나무를 바라보며

책대여점과 비디오점과 구멍가게가 있었다.

자작나무는 잎이 심장모양이고 유리창처럼 맨질거려서 햇빛과 닿으면 눈부시게 반짝거리고

나무줄기가 하얗고 가을엔 노랗게 물이 드는 서정적인 나무였다.

하루가 다르게 물들어가는 가을이 쓸쓸하면서 아름다웠다.

그 부엌창가에 서서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 간식을 만들고

툭하면 들어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반찬을 하고

세월이 무심하고 부질없이 가는 걸 느끼곤 했었다.

향기로운 차 한 잔과 엽서만큼 만한 창을 보며 마음을 달래던 날들이

이런 책을 보거나 이런 창을 보면 잠깐씩 잠깐씩 과거로 돌아가게 된다.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지만

그 부엌창의 가을은 지금 이곳의 창 풍경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아마도 작가는 러시아의 가을이

11층 창에서 내려다본 부엌 창처럼 고독하지만 아름다워서 글로 쓰게 되었을 것이다.

 

저녁이 찾아왔다. 창밖은 이제 어둡다.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밤하늘에 달아 놓은 달과 별같이

나무에 달아 놓은 빨간 단풍잎이 별 같다.

별처럼 오래도록 걸려있지 않고 조만간에 떨어지겠지만 내 기억엔 오래 남으리라

20년의 시간이 흘러도 남아 있는 11층 부엌창의 가을처럼.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슈킨(러시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한순간에 지나가는 것.

지나간 것은 또 다시 그리워지는 것을. (18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