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찬우 좀 봐주면 안돼요?
전화기 너머로 힘없는 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외손자가 11개월이다.
아버지 때문에 힘든 엄마를 생각해서인지 몇번이나 애를 두고
가라해도
그냥 혼자서 본다고 했다.
친정이 가까이 살면 자주 맡겨두고 친구도 만나고
그 좋아하던 공연도 보러가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라 해도
마다했던 딸이다.
결혼전에는 내가 \'딸이 있어 참 좋다\'를 시리즈로 올릴 정도로
엄마를 위해 주던 딸애였다.
지나치게 보수적이던 아버지때문에 꼼짝 못하는 엄마를 불러내어
같이 공연도 보고, 영화도 보고, 엄마가 카페 번개도 할수있게
시간을 마추어 집앞에서 기다려주던 딸이었다.
외손자가 사내애라 그런지 잠시도 가만이 있지 않는다.
전화 할때마다 밥먹었냐고 물어보면 아직...이라고만 맥없이 말하는 딸아이가
안쓰러웠다.
내가 열흘정도 봐줄테니 좀 쉬라고 자꾸 채근을 하니 장난감,분유, 옷가지를 싣고 왔다.
하룻밤 자고 어서 가라고 떼밀었다.
하루 이틀은 그저 외손자가 귀엽고 예뻤다.
사흘째부터는 점점 지치기 시작하더니 비몽사몽이 되었다.
밤중에 몇번이나 깨어 분유를 먹이고, 아이가 또 움직일때마다 잠을 깊이 들수가 없다.
남편 밥을 차려주고 손자 이유식을 시키고나면 밥상위를 기어 올라가는 손자때문에
안고 있어야 한다.
어쩌다 운이 좋으면 남편이 먹다 남은 밥을 싱크대 앞에 서서
몇 숟가락 겨우 떠먹는다.
남편도 잠간 안아주지 오래는 보지 못한다.
팔에 힘이 없으니 잠시 안았다가 내려놓고 슬그머니 나가버린다.
손자가 잘때 얼른 청소 하고 빨래 돌리고, 개고....
잠시도 쉴틈이 없다.
아이를 데리고 왔을때 딸애의 얼굴이 반쪽이었다.
이러니 딸이 밥을 제대로 챙겨 먹지 못하는구나.
남자애라 그런지 장식장, 쇼파, 침대..올라가지 않는데가 없다. 손 닿는곳은 모두 치우고
구석구석은 왜그리 잘 들어가는지..
뭐든 입에 주워 넣어 수시로 마루를 닦아내고...
손자덕분에 청소는 잘하지만 정말 힘들었다.
옛어른들의 말씀이 구구절절 맞다.
\'일을 하면 했지 애는 못본다\'는 말이.
엄마덕분에 잠도 실컨 자고 ,너무 편하게 쉬었다며 좋아하는 딸아이를 보니
마음이 짠하다.
어제 손자를 데려갔다.
손자가 남기고 간 흔적을 치우고, 우유가 묻은 이불 빨래를 하고나니
허리도 아프고 다리에 쥐가 내린다.
우리 아이들은 어찌 키웠을꼬.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는 잠 좀 푹 자 봤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했다.
수시로 깨는 아이때문에 잠이 모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그래도 젊어서, 내 아이니까 그냥 그렇게 키웠던 것 같다.
지금은 힘에 부친다. 체력이 딸려 도저히 애를 못보겠다.
애를 봐줄테니 맡겨두고 내년에 복직하라고 했던 말을 취소 했다.
안그래도 한 해 더 쉬려고 휴직 연기 신청하고 왔어요.
아빠때문에 힘든 엄마가 또 손자 보면 아마 스트레스 받아 병나면 어떡해요.
그래, 고맙다. 생각해줘서.ㅎㅎㅎ
오래된 컴퓨터가 잘 켜지지않아 애먹는 모습을 보더니
노트북을 사주고 갔다.
서재방은 보일러를 켜지 않아 추우니 안방에서도 컴을 할수있게
옮겨다닐수있게 배려해서 노트북을 샀단다.
그리고 핸드폰도 최신형 갤럭시 폰으로 바꾸어 주면서
설명을 찬찬히 해주고 엄마가 꼭 필요한 항목을 첫 화면에 깔아주었다.
언제라도, 어디서든 글을 쓸수있게 메모창을 만들어주고 복사해서
옮겨갈수있는 방법도, 카페도. 메일도, 카카오톡도 바로 들어갈수 있게
일일이 설명을 해주는 딸아이의 마음이 예쁘다.
\'딸이 있어 참 좋다\'
아침 일찍 목욕탕에 가서 몸무게를 달아보니 2키로나 빠졌다.
어, 손자 덕분에 다이어트도 했네. 큰 소득이다.ㅎㅎㅎ
에구, 손자와 또 전쟁을 치를 딸을 생각하면 마음이 안쓰럽지만
그래도 다~ 그렇게 엄마가 되는거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