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일을 냈다. 어느 순간부터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다시 비집고 들어왔다.
지난번 미용실을 다녀온 후 한동안 잠잠하다 했더니 그게 다였다.
미용실에 가서 심플하게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나를 졸졸 따라 다니기
시작했다. 아무리 달래고 얼러서 주머니 깊숙이 구겨 넣어도 어느 결에 튕겨져 나와
내 마음을 붙들고 있다.
며칠 전에는 근처 농협에 가서 현금을 찾았다. 미용실에 가서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에 끌려서였다. 버텨봐야 마음만 괴로울 뿐이라는 걸 그동안의 경험으로 이미
학습한 효과다. 그래 꺼내온 돈을 주머니에 넣고 아파트 입구에 새로 생긴 미용실로
향했다.
‘오늘은 개인사정으로 쉽니다.’
‘아르바이트생 혹은 직원 구함.’
유리벽에 붙어있는 두 개의 딱지를 보면서 망설이다 돌아섰다.
‘그냥 견디라는 하늘이 뜻이야. 받아들여!’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은 머리를 어떻게 해보고 싶다는 욕구로 사로잡혀
있다.
며칠을 버티다 다시 마음이 이끄는 대로 하기로 했다.
‘그래 끝내버리자. 쓸데없는 갈등으로 마음을 허비하지는 말자.’
머리를 감고 드라이를 한다. 드라이를 해 봐야 폼이 안 난다. 그러기에는 머리가
너무 어중간하다. 머리뿌리도 팍 죽어 있다,
화장도 한다. 옷도 나름대로 골라 입는다.
최대한 예쁘게 하고 가야 미용사도 그에 맞춰서 신경을 써준다는 말이
생각나서였다.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고 집을 나섰다.
“뭐 하실 건가요?”
젊은 미용사가 손님의 머리를 드라이기로 다듬으면서 묻는다.
“파마요.” 나는 변화를 갈망하는 욕구가 꿈틀대는 눈길로 대답한다.
“잡지 좀 갖다드려!”
직원인 모양이다. 여유와 배짱이 느껴지는 말투로 한쪽에 눈치 보며 서 있는
여자에게 말한다. 나이가 지보다도 많을 듯한데 찍 내뱉는다. 왠지 슬쩍 그 말이
귀에 거슬린다.
‘그래도 지가 사장이라고 윗사람 흉내를 내고 싶은 모양이지?’라고 나름
생각해본다.
어쨌든 녀석의 말에 여자가 잽싸게 잡지를 집어 나에게 건네준다.
‘저 녀석 내가 상대하기 깐깐한 손님이라는 것을 알기는 할까?’
나는 여직원(?)이 가져다준 잡지를 뒤적인다. 머리만 댕강댕강 짤라다 붙여놓은
그림들이 종이에 가득하다. 특이하다. 댕강댕강 잘라다 놓은 머리들이 그득한데도
아무렇지가 않다. 생각의 차이다. 그때그때의 생각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증거다.
우리는 그때그때의 생각에 따라서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고 환호하기도 하고,
슬퍼하기도 하고 ……
난 그림들의 머리모양에 집중하며 페이지를 넘긴다. 내가 원하는 머리 모양이 있다.
파마기가 있는 듯 없는 듯 자유로운 느낌이 다가오는 머리모양 두 개를 고른다.
“골랐어요?”미용사가 마무리를 여직원에게 맡기고 내게로 다가와 묻는다.
나는 두 개의 그림을 보여주고 말한다.
“커트를 한 후 여기 이 사진처럼 이 정도의 파마기만 있었으면 해요. 될까요?”
“되죠?”
그는 거울을 보면서 내 머리를 이리저리 매만져 본다.
“길이가 좀 짧아서 똑같이는 안 나올 겁니다.”
똑같이 해달라는 말로 들었는지 그가 살짤 말을 비튼다.
“똑같이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 정도의 파마기만 있게 해달라고요. 파마기가 있는 듯
없는 듯, 그러면서 자유로운 느낌이 들게, 틀에 박힌 단정한 느낌은 싫어요.
볼륨 파마는 절대 하지 마세요! 살짝 볼륨만 준다더니 구불구불해서 내 맘에 안
들었어요. 맘에 안 들면 돈 안 줄 거예요.”
나는 또 다시 먹힐지 안 먹힐지 모르는 주문을 해댄다. 그가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거울을 보고 있다는 것을 의식한 행동이다.
나도 그의 반응을 거울을 통해서 읽는다.
내 머리에서 그의 손놀림이 잽싸다. 머리를 도구로 감을 때마다 당겨지는 느낌이
시원하다. 한숨 잠이라도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헌데 생각뿐이다.
난 눈을 완전히 감지 못하고 그의 손놀림을 따라 시선을 옮기며 거울 속의 나를
바라보기에 여념이 없다. 내 머리에 차츰 분홍색과 노란색 파마도구들이 주렁주렁
매달린다.
헌데 도구들이 너무 낯이 익다. 볼륨파마 할 때 썼던 도구들이라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간다. 그뿐이다. 캐묻지 않고 그를 믿는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나같은 사람 때문에 생겨났으리라.
30여분 만에 미용사는 중화제를 바르자며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1시간 혹은 1시간 30분 정도를 지루하게 버티게 한 후 발라줬던 그 동안의
미용실과는 뭔가 달랐다.
주렁주렁 매달렸던 도구들이 떼어내지고 살짝 구불구불한 머리가 거울 속에서
다가온다. 최악은 아니라고 나는 혼자 고개를 끄덕여본다.
“괜찮은가요?” 미용사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내일 머리를 감아봐야 알겠지만 지금은 그런대로 괜찮은 거 같네요.”
“다행이다.”
맘에 안 들면 돈을 주지 않겠다는 내 말에 나름 긴장하고 있었다는 건가?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웃는다.
마음이 놓였는지 그는 머리를 드라이기로 마무리하면서 머리다루는 법을 주섬주섬
늘어놓는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을 들어준다. 그의 손에서 만들어진
머리모양보다도 구불구불하지 않은 파마머리가 눈에 들어온다.
미용실을 나와서 집으로 오며 나는 생각한다. ‘벙 띄워놓은 앞머리만 빼면 괜찮아.’
집에 와서 거울을 보며 달라진 내 이미지에 미소를 지어본다. 그리고 벙 띄워놓은
머리를 풀어놓는다.
머리뿌리가 죽어서 왔다는 말에 대한 해석의 결과였다. 벙 띄우고 싶은데 머리가
말을 듣지 않아 미용실을 찾았다는 의미로 해석을 한 모양이다. 난 그저 머리뿌리가
살짝 튕겨져 오르는 그런 느낌만 주고 싶었을 뿐인데, 유한마담같은 머리를
해달라는 의미로 받아들인 모양이라고, 그리고 모든 미용사들이 똑같은 해석을
한다는 것에 생각이 미친다. 사람은 다른데도 하나같이 같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세상은 참 재미있다. 그래서 난 또 한 번 웃는다.
‘빈 티 나도 난 젊어 보이는 게 좋아.’ 난 거울 속의 나를 보면서 중얼거린다.
‘내일 아침 머리를 감고도 이런 형태였으면 좋겠네.’
난 혼자 중얼거리는 것에 익숙하다. 혼자 살아온 세월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하기를 입에 달아줬다. 그걸 고쳐보려는 노력을 해본 적도 없다.
아침에 머리를 감는다. 그리고 거울 앞에 가서 머리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살핀다.
차츰 눈살이 일그러진다.
“망할 놈, 볼륨파마잖아. 어쩐지 도구도 마는 모양새도 낯익다 했더니 시간만 짧게
단축한 거였어. 구불구불한 게 ⅓만 나온 볼륨파마를 해 놓다니. 괘씸한 놈.”
갑자기 돈이 아까워졌다. 4만원이나 줬는데. 만원이라면 내 아깝다 생각하지
않으련만. 맘에도 안 드는 머리에 4만원을 들였다는 생각을 하니 여지없이 아깝다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온다.
그래도 어쩌겠나.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갔으니 이미 화살은 날아갔는데. ‘
그래도 머리뿌리는 살아났잖아.’하고 스스로를 달랜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그 괘씸한 놈의 배짱이 맘에 든다. 내가 절대 하지 말라는
볼륨파마를 해 놓으면서 시간으로 내 마음을 움직일 생각을 한 그 놈이 보통은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