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작가

이슈토론
노쇼 차단을 위해 식당에서 예약금을 받 는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너_03
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조회 : 1,907

양주댁을 보내며.


BY lala47 2011-10-18

어제는 구로동 병원 예약날이었다.

가는 길에 문자를 받았다.

\"오늘 새벽에 양주댁이 떠났어.\"

가슴이 덜컥 소리를 내었다.

보고싶으니 한번 오라고 조르던 전화를 받고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내가 큰 잘못을 한것이다.

 

삼년 전 갈 곳이 없던 힘든 시절에 나를 머물게 해주었던 장애인..

그녀가 나를 머물게 했던 이유는 나도 중증 근무력증을 앓고 있기때문이라고 했다.

같은 근육병이라는 말에 친근감을 가졌었지만 내가 너무나 멀쩡해서 실망을 했다는 말을 한 기억이 있다.

나는 가끔 내 약을 그녀에게 주기도 했었다.

그 곳에서 나는 새로운 세상을 보았다.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구나..

하느님은 내게 더이상 엄살 떨지 말라고 말하시는것 같았다.

근이양성으로 앉은뱅이가 되어버린 양주댁은 같은 병을 앓고 있는 동생 걱정을 많이 했다.

그 동생보다 오래 살아야 한다는 그녀의 말은 누나 없는 세상을 장애를 안고 살아갈 동생이

안스럽다는 말이기도 했다.

 

그녀의 거친 말에  상처를 받곤 했지만 지나고 보니 그녀 나름대로 힘든 시간을 버티는 방법일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저앉은 자신의 처지에 대한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수십년을 바깥 세상과 단절 되어 사는 처지는 얼마나 마음이 지옥 같았을지 상상만으로는 알수 없다.

유쾌한 웃음을 잃지 않기까지 그녀 나름대로 피나는 노력이 있었겠지....

비관하지마. 그건 우리 운명이야..

동생에게 그렇게 전화를 하곤 했다.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자는 말이다.

 

장애를 앓고 있는 동생보다 건강한 동생이 더 장애인 같다고 말했다.

정신적 장애가 육체적 장애를 앞선다는 말이다.

그 동생이 자살을 한 후 일주일만에 양주댁은 뒤따라 갔다.

사지가 멀쩡한 남자가  장애인 누나와 장애인 동생을 두고 자살을 하다니..

그녀의 충격은 더이상 살아갈 힘을 빼앗아 갔다.

 

동생을 혼자 보내기가 안타까웠던게다.

근이양성의 진전으로 몸을 거의 못쓰게 되어버린 후에 어느 간병인도 그를 부축할수가 없게 되었다고 한다.

요양원으로 옮긴 후에 병명은 간암 말기라고 하니 뜻밖의 병명이었다.

아무도 상상하지 못한 병명이었다.

 

병원 진료가 끝난 후에  구로동역에서 일호선을 타고 양주로 향했다.

나의 근무력증은 비상약이 필요했다.

약 복용 후에 주의사항을 의사에게 들었다.

한보따리 약이 핸드빽에 가득한것을 보면서 나도 나의 한계를 느꼈다.

나도 언제 갈지 모르겠구나..

그런 생각이 찾아 들었다.

어께 치료를 하면서 근무력증이 난점이 되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나도 어느 정도는 각오는 해야 했다.

 

오랫만에 와보는 양주의 풍경은 지난 날을 기억하게 했다.

암담했던 시간들..

이혼을 하기까지 그곳에서 머물렀었다.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낸  양주를 잊을 수가 없었다.

눈이 쌓인 마당에서 울기도 많이 했던 기억들....

그 시간을 생각하면 현재의 시간에 불평을 하면 안된다.

 

양주 장례식장은 썰렁했다.

친구들의 울음소리가 가끔 들렸지만 장애인 동생의 어두운 얼굴과 근육병 장애인들의

휠체어 조문을 보면서 그들의 세상을 들여다 본다.

\"내 이야기 글로 쓰지마.\"
그녀가 내게 하던 말이 생각났다.

 

모두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 사람들을 바라보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어쩌면 우리 모두가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장애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가 그 사람들보다 낫다고 말할수는 없다.

모두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각자 행복을 찾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양주댁..필자씨..

이제 장애가 없는 세상에서 두 발로 딛고 일어서서 마음껏 걸어다니며 환히 웃기를 바랍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