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방귀를 꼈어~~~~~ “
“니가 꼈잖아.~~~~~~~~ “
“소문 안 낼테니까 대신 니가 설거지 해~~~”
“가위 바위 보로 해~~~~~”
“아우~~~ 언니는 동생한테 한 번도 안 지구 아앙~~~~~~~~~~~”
밥을 먹어도 까르르르르~~~~
샤워를 하면서도 꺄르르르르~~~~~~
설거지를 해도 꺄르르르르~~~~~~~~~~
학교를 가면서도 엘레비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꺄르르르르~~~~~~~
집으로 돌아 오는 길에도 1층 현관에서부터 꺄르르르르~~~
텔레비전을 시청해도 무슨 내용인지 머리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다.
굴러가는 낙엽만 봐도 우습다는 열 일곱, 스물 하나, 스물 세 살이긴 하지만
조용한 아파트를 뒤흔들만큼 요란한 아이들의 웃음 소리에
청력이 떨어질 지경이다.
지난 해 9월부터 대학원을 조기졸업하고 온 시댁 조카와
친구의 대학생, 고등학생 딸.
내가 친정엄마 간호를 하는 동안 필리피노 홈스테이에서 지낸 아이조차
주말에 오면 가기 싫어하더니 아예 들어 와서 눌러 앉은 것이 네 달째다.
연애시절부터 “둘이 행복하자’는 딩크족 1세대에 해당하는 우리 부부에게
형님과 친구가 딸을 보낸다고 할 때
약간은 귀찮은 느낌과 어떨까..... 하는 기대와 두려움이 반반이었다.
네 달이 지난 지금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좋은 엄마는 될 수 없지만
좋은 친구는 되어 줄 수 있다는 것 …….
얼마 전 냉장고 문짝에 작은 메모판 하나를 걸었다.
먹고 싶은 메뉴를 한 가지씩 적어두면
요리를 만들어 준 다음 X표를 치고, 아이들은 그 옆에 하트를 그려
고맙다는 인사와 만족감을 표시 한다.
부모 떨어져서 외국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은 배고픔이 배고픔이 아니라 ‘외로움’이기 때문이다.
입맛이라도 채워주면 포만감 속에서 허기진 마음의 안정을 찾는 게 아이들이다.
하이 톤으로 웃어대며 도무지 시무룩할 틈이 없는 아이들은
그래서인지 먹고 싶은 것도 무지 많다.
아귀찜,매운탕, 감자탕, 두루치기, 족발, 고추잡채, 빈대떡, 가지나물, 호박볶음, 콩비지……
남편은 ‘너하고 피 한방울 안 섞였는데 어떻게 지 엄마를 안 닮고 너를 닮았니?”
라고 할 정도로 입맛도 완전 나와 똑 같은 토종녀들이다.
.
지난주, 7박9일 일정으로 셋이 뭉쳐 미국동부와 캐나다 동부 패키지 여행을 다녀온 후
웃음소리에 수다가 더 늘어나 밤만 되면 나는 ‘완장’ 없는 단속반이다.
평소 처음 보는 사람들과도 미소로 인사를 나누는 이 나라사람들이지만
벌금 고지서도 태연히 들이미는 사람들이다.
결코 죄가 될 수 없는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죄가 되는 문화를 무시하고 살려면
무쟈 뻔뻔하던가 벌금을 낼 넉넉한 자금을 준비 하던가 둘 중 한가지다.
물론 종국에는 내 돈 내고 살면서도 쫒겨 나는 신세가 될 수도 있고….
그래서 나도 욕하면서 배운 게 벌금제도다. 현금 앞에서 남녀노소 장사가 없다.
이래도 벌금, 저래도 벌금, 이 벌금제도가 생각보다 효과가 아주 크다.
통금시간, 설거지, 스터디그룹 결석할 때.... 등등.
큰 사고가 없는 평온함이 장점인 도시이지만, 밤이면 마약과 마리화나를 피우는 사람들이
간혹 있어서 절대 밤
그런데 때때로 나는 이 통금시간 때문에 아이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작은엄마!! 30분만!! 딱 30분!!”
“안돼!”
“그럼 20분이라도,,, 아잉~~~ 20분이라도요. 스터디 끝나면 벌써 7신대 잉~~~”
보통은 이렇게 무벌금 통금 시간을 늦추려고
시도를 하기 마련인데 얼마 전 막내 유나가 통금 1시간20분이나 지나도록 전화가 없었다
“은영아! 유나 소식 없어?”
“아, 유나 오늘 두 시간 늦는다던데요?”
“단 돈 1불에도 벌벌 떠는 녀석이 두 시간이면 벌금이 20불인데 어쩐일이야?”
“ㅋㅋㅋㅋ 오늘 유나 초대한 오빠가 벌금 대신 준다고 했대요. ”
이런, 벌금을 정한 건, 돈이 목적이 아니라 애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돈으로
밤에 늦지 않도록 하려던 것인데 그런 꼼수가 등장할 줄이야…..
“지송합니다.” 기어드는 목소리로 문을 빼꼼히 열고 11시에 들어 온 유나.
벌금! 벌금! 외치는 언니들 앞에 당당하게 벌금을 내 놓았다.
“유나야, 왜 전화도 안 해! 많이 걱정했어.”
“어! 작은엄마, 그래서 벌금 냈어요.”
“그래? 그럼, 내일은 은영이랑 향숙이는 외박을 해”
“오잉? 왜요?”
“벌금 내면 되잖아. 그럼 안들어 와도 되고 전화 안 해도 되고 너네 벌금통도 채워지고~”
뒤늦게 내 말귀를 알아 들은 아이들이 식탁을 두드리며 까르르르 넘어간다.
“아우~~ 그런 좋은 방법이 있는 걸 모르구, 작은 엄마가 아이디어를 주셨어!! 야후~~”
설거지도 월화, 목금, 수토, 일요일엔 모두 같이….요일 별 당번이 정해져 있고
나는 요리사라 열외가 되었다.
공부하는 아이들에겐 아침 영양이 기억력과 하루의 에너지원을 좌우하므로
신선한 야채와 탄수화물과 비타민, 지방까지 골고루 섭취할 수 있는
거한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게 나의 임무.
저녁엔 스터디그룹 활동과 도서관에 가서 지내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이라
떡볶이를 먹어도 아침에 먹고, 삼겹살을 먹어도 아침에 먹는다.
한국 집에서도 지각을 하더라도 아침밥은 먹고 간다는 녀석들은
아침에 아무리 거하게 차려도 흡입하듯 먹어 치우니 정말 이런 다행이 없다.
그러나 한창 몸매와 외모에 신경 쓸 나이인 만큼, 저녁에는 당근을 갈아서 포도씨유
한 방울을 섞어 소화흡수율을 높이고, 야채샐러드, 과일, 무지방 플레인 요쿠르트에
호두와 건포도 잣, 해바라기씨앗을 섞은 것 등으로 가볍게 먹인다.
수면시 위장이 적절히 비어 있어야 자생력이 생겨 다음날 컨디션이 좋은 법이다.
아침이면 그날 발표 할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식탁 앞에서 먼저 연습을 한다.
남편이 발음과 문장을 수정해 주고, 나는 자신감 있는 목소리와 제스추어를 교정해 주면
\'다녀오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안녕, 바이 바이..... \'
무슨 대단한 이별이라도 하는 사람들마냥 5분간은 인사를 해야 비로소 끝이 난다.
이렇게 복닥거리며 지내는 요즘이 마냥 즐겁기만 한 나는
1년이 된 조카가 10월, 친구 딸이 2월….
아이들이 떠나고 난 뒤의 집안을 떠올리면
슬픔 혹은 두려움같은 것이 \'훅\' 가슴을 훑고 지나가는 걸 느낀다.
그 쓸씀함은, 아마도 아이들이 처음 우리 집으로 오던 날
‘귀찮지 않을까’, ‘잘 해 줄 수 있을까’ 스스로 확신이 없었던 그것과 비교할 수 없겠지......
정精, 그것은 아픔과 같은 말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