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꽤나 산 모양이다. 앞머리 한 쪽에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이 보이고,
노안으로 돋보기를 써야 제대로 볼 수 있게 된지가 몇 년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억울하다고 하소연할 생각은 없다.
억울하다보기는 좀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고, 때론 살짝 서글픈 느낌이
들기도 한 게 전부다.
헌데 며칠 전부터는 새로운 느낌이 하나 더 추가됐다. 안경 값이 아깝다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썼다 벗었다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돋보기가 거추장스러웠다. 그래서 노안이라는 진단을 받았던 그 해, 큰 맘
먹고 몇 십만 원짜리 다초점 렌즈 안경을 장만하여 몇 년 째 써오고 있는
중이다.
헌데 이놈의 안경이 수명을 다해 가는 모양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 눈이
점차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는 게 맞다. 안경을 써도 글씨가 꾸물꾸물하여
선명하게 보이질 않는다. 그런데도 선뜻 안경집으로 향하지 못하고 있다.
그 놈의 몇 십만 원을 그냥 버리려니 아깝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서다.
안경을 새로 맞춰야한다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온 것이 오래인데도 내
발걸음은 안경점을 거부한다. 꾸물꾸물한 안경으로 세상을 보는 게 영
신통치 않은데도 그놈의 비싼 렌즈 생각에 선뜻 나서지지가 않는다.
아깝다는 생각을 하자 수명을 늘리는 쪽으로 머리가 돌아간다.
궁여지책으로 며칠 전부터는 손가락으로 눈 주위에 살짝살짝 자극을 주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마사지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내 눈이 반응을 해왔다. 처음 자극을 줄 때의 통증이 사라지면서
눈에 드리워졌던 희뿌연 막이 걷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얼른 안경을 집어
들고 썼더니 글자들이 제법 선명하게 잡혔다.
세상에! 내 눈도 내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요런 걸
그동안 애꿎은 나이 탓을 하며 돈이 아깝다는 이유로 내 눈을 혹사시켜
왔다니! 내 무지가, 내 게으름이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인다.
갑자기 사방에서 조물주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내가 폼으로 손이라는 걸 만든 줄 아남? 자유롭게 해줬으면 그 대가를
해야지, 안 그런가?’
나는 고개를 끄덕여 수긍한다. 그러면서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잡다한
것들을 위해서 내 두 손을 아낌없이 사용하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