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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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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되다.


BY 그대향기 2011-07-24

 

 

 

 

 

스무날도 넘게 이어지던 지리한 장마는

폭우를 몰고왔고 물난리도 안겨줬다.

가깝고도 먼 이웃에서 들려오던 크고 작은 비 피해 소식을 접할 때 마다

다행이다..다행이다..참 다행이다....

그러면서 내 직장 내의 비 피해가 적은게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었다.

인근 민가들 보다 저지대인 너른 마당에 온 동네의 흙탕물이 한꺼번에 내려 와 범람했다.

온 동네 가정 쓰레기들이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조각배들처럼 마당을 둥~둥~떠 다녔다.

그러다 비가 잦아들고 물이 빠지고 나면 볼품없이 허접한 쓰레기더미가

마당 가장자리를 점령하고....

그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더니 장마가 그쳤다.

시골길을 아스팔트 포장을 하면서 우리 집 마당이 깊어졌다.

길이 비포장 일 때는 우리 집 마당이 높았었다.

세련 된 아스팔트 포장길이 되면서 우리 집이 낮아졌다.

비만 많이 오면 마당이 깜짝 호수로 변한다.

 

그 덕분에 낮은 곳에서 한창 이쁘게 피고지던 송엽국이 다 녹아버리고 말았다.

아깝다.

채송화보다 더 오래오래 가을까지 피고지며 화단가를 곱게 물들여주던 꽃인데....

다단계 형식으로 만들어진 높은 꽃밭에는 아직도 송엽국이나 벌개미취가 제철을 맞아

이쁘게 피어있지만 키가 웃 자란 백합이 간들간들...

꼭 가을 코스모스처럼 애처롭다.

함박꽃 그늘에서 어째어째 햇살을 좀 더 보겠다고 키만 키웠나 보다.

이리저리 그 긴 목을 흐느적거리면서도 새하얀 송이를 활짝 피우고 있다.

그 근처에만 지나쳐도 진한 그 향기에 절로 미소를 짓게 된다.

지난 봄에 두 박스나 옮겨 심었더니 잘 자라줬다.

산나리도 키가 사람보다 더 높이 자라있다.

애기 범부채도 회리바람 모양의 배배 꼬인 다문 꽃잎이 벌어지면서 고운 모습으로

이 여름을 시원하게 수 놓는다.

청보라색과 새하얀 수련도 앞 다투어 피고진다.

하루에 두 세 송이씩.

너무 화려하지도 않고 산만하지도 않게 두 세 송이씩만 피어준다.

흔해서 덜 귀애여길까 봐 은근히 조심하나보다.

 

아무리 긴 장마 끝에도 이불 말릴 햇살은 비춘다고 했던가?

숨 막히도록 습한 공기가 사람을 물러지게 만들 즈음.

이른 아침부터 매미가 지치지도 않고 3단 고음으로 울어대던 어느 날

말갛고 습하지도 않은 햇살이 나왔다.

그냥 날마다 예사롭게 햇살이 비추는게 아니라 이건 오신거다.

너무나 귀하고 반가운 햇살이....

평소에 공기 좋고 하늘 높고 푸르기로 유명한 한국이었지만

한 달이 가깝도록 장마가 길어지다 보니 그 예사롭던 햇살이 그리움이 될 줄이야....

살아가는 절실한 순간들이 될 줄이야...

연애하는 남자를 이리도 간절하게 기다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안 보면 보고싶고 헤어지면 또 기다려지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긴 장마철에  햇살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뭐든지 녹아지게 만들고

뭐든지 곰팡이가 슬게 만들던 장마.

사랑하는 남편이 근처에만 와도 멀찌감치 물러 나 앉게 되었다.

아마 사람도 움지이지 않고 한 자리에 오래 붙박혀 있었더라면

곰팡이가 슬든지 녹아져 버렸을 것 같다.

 

한 줄기 햇살이 말갛던 그 어느 날

햇살이 반가워

햇살이 아까워

쌀풀을 되직하게 쒀 여름 모시이불이며 아사면 이불 여름 옷가지 몇을 풀 먹여 널었다.

까슬까슬

이불에는 어쩌면 나무 장작개비 소리까지 날 정도로 빠당빠당한 풀을 먹였다.

바람도 제법 불어줬다.

너풀너풀 날리던 이불이며 옷들이

금방 커다란 통 이불에 통 옷이 되고 만다.

툭툭툭....

덜 마른 이불이랑 옷가지들을 대충 두들겨 손질해서 다시 널었다.

저녁에 손질한 이불이며 옷을 받은 남편이 반색을 했다.

시원하고 몸에도 안 달라붙고 대접받는 느낌이라며 좋아했다.

 

그래......

내 몸 잠깐 자외선에 노출되면 되는데

여름 이불이랑 옷은 풀을 먹여 줄 걸 그랬다.

행사준비로 바쁘고 고단해서...

행사 중이라서...

밥풀이 없어서...

날씨가 덜 맑아서....

핑곗거리도 참 다양했구나 싶다.

서랍장을 정리하다가 풀 먹일 옷들을 모두 모았다.

구정 뜨개실로 짠 런닝셔츠도 찾아냈다.

행사를 마치고 남은 밥을 푹푹 끓여서 짜주머니에 넣고 주물러 냉장고에 뒀다.

날 맑은 날 언제든 후다닥 풀 먹이면 되도록.

침대 요까지도 된 풀물을 먹여 깔았는데 참 좋다.

거실 돗자리도 삼베로 된 소재라 풀을 먹였다.

잠시 잠깐 쉬는 시간에 삼베 요 위에 누우면 까칠한 감촉에 행복하기까지 하다.

등이 가려울 때 누워서 이리저리 꾸불텅꾸불텅...

요 위를 지렁이처럼 꿈틀대며 기어오르면 너무너무 시원하다.

효자손도 서러울 정도로 무색하다.ㅋㅋㅋㅋㅋ

 

이 여름을 도망도 못가고 750 명씩 연 달아 서너주간을 꽉 차게 수련회 가동을 해야 한다면

최대한 시원하게~

최대한 덜 짜증스럽게~

그리고 최대한 즐기는 마음으로 달리는 거야.

늘 한결같지만 다른 모습으로 내 곁에 오는 소중한 순간들 인 걸....

함께라서 행복한 순간들 인 걸....

이 여름도 두 번은 없을 시간들인데.

20대의 몸매에 늙지도 않는다는 지난 여름의 그 손님이

올해도  몇년 째 같이 또 하는 새하얀 거짓말에

뻥이요~~~~

쌀튀밥 같은 폭발적인 웃음으로 답해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