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연말을 어떻게 보냈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날 지경이다.
몇 주 전에 감기몸살을 좀 하긴 했어도
금방 약 먹고 잡도리를 잘 했기에 다 나은 줄로만 알았었다.
그러고 난 후에 김장을 했고 성탄준비다 다른행사다 뭐다 해서
추운데 좀 쫒아다녔기로서니 이렇게 몸이 감당을 못하다니...
20년이 가깝게 한겨울에도 새벽부터 동동거리며 수백명의 수련생들을
때 맞춰 밥 해 주던 철녀주방장이었는데
정작 수련회는 시작도 못했는데 이 무슨~~
적응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황당하고 자존심 확~상하고
스타일 마구 구겨지는 지저분한 몰골이다.
기침은 저 배 밑바닥까지 다 긁어 올릴듯이 쿨룩거리고
열은 이마에 냄비를 올려 라면이라도 끓일만치 펄펄 끓고
낮술이 덜 깬 여편네처럼 얼굴은 촌병 걸린 것 처럼 벌겋고
온 몸 뼈 마디마디마다 다 분리 되는것처럼 흐느적거리고
일년 삼백예순다섯날 밥 맛 없다는 말이 뭔지도 모르던 내 입에
밥알이 꺼칠거렸고 모래알보다 더 굵은 자갈돌 씹는 맛이었다.
그래도 앓아 누울 처지가 못 되었기에
시간 맞춰 할머니들 식사는 준비해 드렸고
그런 다음 집으로 올라 와 쇼파에 그대로 몸을 날려 퍼지기를 대여섯날.
생리 때 말고는 토요일 목욕을 안 빠졌던 내가
할머니들 등도 못 밀어드리고 목욕까지 빠졌다.
병원에도 안 가고 약국에서 약만 지어다 먹으면서
해묵은 도라지와 생강 넣고 달인 배즙이니 칡즙을 따뜻하게 데워서 먹으면서
지초체력을 믿으면서 악착같이 이겨보려니 참...
미련스러운건지 현명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쩌구저쩌구하다보니 감기는 다 달아난 모양이다.
밤만되면 기침은 기승을 부려 안방을 쿨렁쿨렁 울렸고
기침을 하면 가래가 목에 들러 붙어서 기침조차 시원찮았던 것도
시원스럽게 뜷렸고 콧물도 다 말랐다.
가는 해 오는 해를 무리없이 보내고 맞자니
새해맞이 몸살을 심하게 하면서 하자네 글쎄....
안그랬다면 가까운 화왕산으로 해돋이를 가려던 것도 엉망이되고 말았다.
날만 맑으면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지만
새해 새 아침에 맞이하는 해는 남다른 멋일것 같아서
수능을 마친 막내가 집에 있어서 같이 가려고 했는데 여간 아쉬운게 아니다.
정동진의 명품 해돋이는 아니더라도 화왕산 해돋이도 해돋이니
꼭 가려고 했었는데 비몽사몽간에 빌빌대기나 했으니.....
난 아프면 내 아픔이 내가 낯설다.
내가 아프면 당연하다는 모습이 아니라 영 기분이 이상하다.
늘 씩씩해야했고 늘 팔팔하게 뛰어다녀야 하는데
기운이 쭉...빠지고 기침이나 콜록거리고 하는 모습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내 몸에 들어 앉은 기분이다.
잠시잠깐 번짓수를 잘못 찾아든.....
이젠 내 몸도 조금씩 보채기를 하나보다.
좀 돌 봐 달라고...
좀 봐 가면서 일하라고...
좀 사~알~살 부려먹으라고...
그럴만도 하지.
내 몸뚱이가 무슨 무쇠덩이라고 그렇게 막 부렸으니.
주인을 잘못 만난 내 몸뚱이들이 고생이 많다.ㅋㅋㅋ
이번 주 화요일부터 있을 겨울수련회에는 무리없이 회복이 되었으니 참 다행이다.
쉰이 될 때까지 편한 백성은 별로 안 해 봤으니 그럴만도 하지만
앞으로도 꽤 ㅡ많은 시간동안은 혹사를 좀 해야겠는데 어쩌지?
최소한 십년만.
더 좋은 일이 있으면 앞 당겨서 오년.
딱 십년 동안만 심하더라도 좀 참아주기를 바란다.
둘째의 복학과 막내의 대학입학이 있는 올해부터서
딱 십년만 남편과 같이 힘을 합해서 일하고
그 후로는 나도 자유부인이 될란다.
그 때는 마당 있는 남향집에서 작은 정원이나 가꾸고
남편 손 잡고 낮은 산이나 오르면서 그렇게 살란다.
그때쯤에는 시집 간 딸아이들이 외손녀나 외손주 데려오겠지?
오동통한 작은 손목에 꽃반지나 꽃팔찌를 만들어 주면서
진짜 할머니가 되어 보는거야.
그때까지는 아프지도 말아야 하고 그 때에도 아프지는 말아야지.
부지런히 먹고 부지런히 운동해서 건강한 젊은 할머니가 되는거야.
나이들어 병 들면 자식들한테 구박덩어리가 된다던 어떤 분의 이야기가
귓전을 크게 울리는 신년벽두.
에세이방 여러님들도 건강하시고
토끼해에 좋은 일들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가정에 주인은 남편들 같지요?
천만에요~
가정의 주인은 아내들입니다.
아내들이 건강해야 온 집안이 다 만사형통한답니다.
건강하시고 즐겁게 많이 웃으시는 올 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