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예상치 못한 것들의 도래로 당황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 때문이라고만 치부하기엔 너무나 힘겨운 당황(?)함을 안기는 경우 말이죠. 그 중의 하나가 누구- 사랑해선 안될 누구를 사랑하게 되어 버린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사랑할 것이라고는 꿈에서조차 상상하지 못했는데 어느날 문득 그가 내가슴 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곤 흠칫 놀라게 됩니다. 이미 그에 대한 감정이 일렁거림을 넘어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몰아치고 있음을 깨닫곤 당황하게 됩니다. 이래선 안된다는 이성은 박판(薄板)과 같은 표피의 바로 아래에서 감정이 피부 밖으로 뛰쳐나가 행동화되는 것을 억누르고 있을 따름입니다. 내 이성의 압력은 그다지 크지 못합니다. 자칫 조금이라도 약해지면 내 감정은 몸 밖으로 탈출을 시도합니다. 약한 이성으로 감정의 마그마를 눌러야 한다는 강박(强迫)이 힘겨운 피로를 안깁니다. 그 힘겨운 피로를 잠시나마 잊어보려 술을 찾게 되지만 술이 주는 긴장의 해이가 오히려 내 감정을 폭발하게 하지는 않을까 더한 불안감이 엄습해 옵니다. 감정이 이성을 배신할 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배신처럼 씁쓸한 여운과 치유하기 힘든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도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믿었던 다른 사람으로 받게 되는 배신 말이죠.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가졌던 믿음이 꺾여버리는 배신보다 더 씁쓸하고 견디기 힘든 배신은 내 안에서 느끼는 내 감정과 내 이성 사이의 배신인 것 같습니다.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경우, 사랑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이성이라면 어쩔 수 없는 사랑으로 빠뜨리는 것은 감정입니다. 보통은 이성이 감정보다 한 차원 높은 덕목으로 치부되어 왔습니다. 이성의 현명함으로 감정의 우매함을 다스려야 할 것으로 배워 왔습니다. 이 배움대로라면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감정이 이성을 배신하는 것입니다. 감정이 이성에게 씁쓸한 여운과 치유하기 힘든 후유증을 남겨야 되는거죠.
하지만 실제적으론 감정이 이성을 배신한 것 같지 않습니다. 이성에 대한 감정의 배신이 씁쓸한 여운과 치유하기 힘든 후유증을 남기는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이성이 제 역할을 다 해 감정의 분출을 완벽하게 억눌렀다면 여운이, 후유증이 없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씁쓸한 여운과 후유증은 이성의 차원이기 보다는 감정의 차원이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감정이 억눌려졌을 때 오히려 생채기는 깊이 패입니다.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애써 외면하거나 잊어버리라는 이성이 오히려 견딜 수 없이 시린 슬픔과 안타까움을 안겨다 줍니다. 활기를 잃은 감정은 나를 아프게 하고, 아픈 나는 일상을 파괴합니다. 그리고 파괴된 일상에서 나를 추스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신의 관점에서 나를 제자리로 돌려 세우려했던 이성은 아무런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무너지는 나를 바라볼 따름입니다. 이성 스스로 하지 못한 역할을 시간에게 떠넘기면서…
무엇이 무엇을 배신했기 때문에 내가 무너지는걸까요? 사랑해서는 안된다는 이성이 진정한 ‘나’인지, 본디 감정의 동물인 인간 본성에 순응하는 사랑이 진정한 ‘나’인지 판단이 안됩니다. 어떤 나를 따라야 후회가 없는 것인지, 어느 땐가 갖게될 후회의 대상은 또 무엇인지, 어떤 내가 진정한 나인지 모르겠습니다. 진정한 ‘나’를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감정이 이성을 배신하는 것인지, 이성에 배신을 당하는 것인지 단정짓기 쉽지 않습니다. 무엇이 무엇을 배신하지 말아야 진정한 나를 유지하는 것인지 역시 모르겠습니다. 감정과 이성이 늘 같은 생각을 하고 보폭을 맞춘다면 이런 일이 없을테지만 그러기를 바랄 수는 없습니다. 늘 감정은 이성의 차꼬를 벗어나려고 하니까요. 감정은 이성보다 늘 앞서가려고 하니까요.
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에게 내 감정을 들켜버릴까 노심초사하는 이면에, 다른 사람이 혹시나 눈치챌까 경계해야하는 긴장 속에, 내 감정과 이성의 지난(至難)한 싸움을 인내해야하는 삼중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어느 순간은 감정에 따르는 것은 무책임하고 비난 받아야하는 몰염치한 행동이라는 이성의 만류가 타당한 듯 보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엔 이성의 강권(强勸)으로 감정을 억누르기엔 뼈속 깊이 전달되는 통증 보다 더한 아픔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것이 진정한 나를 위한 것인지, 어느 것이 진정한 나를 배신하지 않는 것인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아무도 가르쳐 줄 수 없는, 그 누구에게도 물어 볼 수 없는, 그래서 좁히기 어려운 감정과 이성 사이의 간극(間隙)…………사랑해선 안될 사람을 사랑하는 것, 가능하다면 정말 정말 피하고 싶은 너무나 힘겨운 경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