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비스킷통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거기엔 좋아하는 것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것이 있잖아요? 그래서 먼저 좋아하는 것을 자꾸 먹어버리면 그 다음엔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것만 남게 되죠. 난 괴로운 일이 생기면 언제나 그렇게 생각해요. 지금 이걸 겪어두면 나중에 편해진다고, 인생은 비스킷통과 같다고…』는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일본작가가 1987년에 상하 2권으로 발표한 청춘 연애소설 <상실의 시대>에 나와있는 구절의 일부입니다.
젊은이들의 허무적인 삶과 그 속에서 가져야 하는 순애보적인 사랑을 내용으로 하고 있어 인생 전반을 관조하는 위대한 교훈은 있다고 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구절은 인생을 살아가는 또다른 시각을 갖게 하는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험난한 인생살이를 운명처럼 지고가야 하는 우리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고, 막상 험난함을 맞닥뜨렸을 때 한 발짝 벗어나 숨을 고를 수 있는 여유를 마련해 주는 것 같습니다. 심심함을 떨쳐내기 위해 가볍게 읽어버리곤 하는 소설이지만 그 속에서도 이런 인생을 관조하는 좋은 글귀가 보석처럼 들어 있습니다.
인간은 평등하다고 합니다. 절대존재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모두에게 공평한 인생을 주었다고 합니다. 원인을 만드는 기회에서의 평등인가, 피상적으로 드러난 결과로서의 평등인가에 대한 관점이 다를 수 있지만 보편타당한 관점은 기회로서의 평등을 말합니다. 누구나 같은 기회를 제공받는다는 것이지요. 같은 기회를 가지고 행복을 만드느냐 불행을 만드느냐는 개인들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는 관점이 그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를 뒷받침하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구절은 단순히 이러한 원인과 기회로서의 평등에 국한되어 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결과로서, 드러난 사실로서의 행.불행도 평등하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집니다. 누구나 같은 행복과 불행을 가지고 있다는 것으로 말이죠. 다만 언제 어느때 행복하고, 불행할 것인가에 차이가 있을 뿐 총량으로서의 행.불행의 질량은 같다는 의미로 받아 들여집니다. 인간은 평등하다는 명제를 떠받치는 근본 논리에 관계없이, 또한 현실적인 상황에 관계없이 우리가 어려움을 당했을 때 스스로를 위안하고 희망의 빛을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시각 같습니다.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지금의 불행은 일시적인 것이고, 얼마 지나지 않으면 담보되었던 행복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불행을 당했을 때 그 불행 보다 더 무서운 것은 좌절과 절망이라고 합니다. 더 이상 불행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는 생각, 항상 나는 이렇게 불행한 삶을 살아가야할 운명이 지워졌다는 체념이 그 불행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고통과 고민의 수렁 속으로 더 깊게 빠지게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행을 일시적이라고 생각하고 곧 유보된 행복이 다가올 것이라고 믿는 희망을 가지게 되면 그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확장된 피그말리온 효과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 비스킷통에서 불행을 맛보고 있으면 다음에는 행복의 비스킷을 맛 볼 확률이 점점 커진다는 생각이 실제 인생을 행복으로 만드는 것이죠.
인생은 고민의 연속입니다. 고민이 없는 날은 단 하루도 없는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고민 속에서 누구는 그것에서 벗어나 행복을 맛보고 누구는 그 고민의 포로가 되어 불행한 삶을 산다고 생각합니다. 누구에게나 고민이 평등한 것처럼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는 평등하다는 생각을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같은 고민에서도 누구는 해결될 것으로 생각하고, 또한 쉽게 해결하고, 누구는 그 고민을 부여안고 끙끙거리는 것처럼, 누구는 행복을 받아들이고 구가하는 반면 누구는 그 행복을 찾지 못하고 불행하게 운명 지워졌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이 명제가 참이나 거짓이냐의 논란에 휩싸이는 것처럼 인간에게 주어진 행.불행은 평등하다는 명제 역시 참과 거짓 사이의 다툼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개인들마다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다른 시각은 우리가 가진 고유의 자유의지에 기인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보려고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죠. 인간은 평등하다고 바라보고 사는 삶이 더 여유로운 것처럼 인간의 행.불행의 질량 역시 평등하다는 생각은 실제로 행복을 더 많이 가져다 주는 삶을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행복의 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린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닫혀진 문을 오랫동안 보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 열려 있는 문을 보지 못한다.』는 이 세상에서 가장 불평등하게 태어난 것으로 치부될 수 있는 헬렌 켈러가 남긴 말입니다. 행과 불행을 보고 느끼는 눈,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 있다는 얘기 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