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무르익을대로 무르익어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던 지난 토요일.
아침9시부터 저녁 9시까지 12시간 동안 엄마와 데이트를 즐겼다.
일찍 결혼한 엄마와 첫 딸인 나는 같은 고등학교 22기 차이인 선후배 사이이자 때론 자매처럼
때론 친구처럼 그렇게 사이좋은 모녀지간이었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나는 엄마의 지극한 보살핌을 받았다.
빈혈이 심해서 항상 입술에 핏기가 없었고 아토피 피부염까지 있었으니 얼마나 애가 탔을까..
계절마다 몸에 좋다는 건 구해서 다려 먹이시고 유명한 온천이나 병원을 찾아 산넘고 물건너 다녔었다.
멀미까지 하던 나는 차만 타면 엄마 무릎신세를 졌고 집에 도착할때 즈음이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토하기 일쑤였으니 그때마다 얼마나 난처했을까.
아이를 낳아보니 부모 마음을 안다고...그때는 그 고마움을 몰랐었다.
내 아이를 키우면서 그 때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새록새록 느끼는 중이다.
소녀적인 감성이 풍부했던 엄마는 영화를 무척 좋아하셨다.
아버지가 직업상 해외근무가 잦았었기에 엄마의 데이트 상대는 대부분 나였던 것같다.
처음으로 극장에서 영화를 본 것도 엄마와 함께였다.
그리고 그 이후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재미있는 영화가 나오면 항상 엄마랑 함께 영화를 보러 갔었고
당연히 극장은 엄마와 함께 가는 곳인 줄 알았다.
하지만 차츰 친구랑 다니는 걸 더 좋아하고 연애라는 걸 하면서 부터 더 이상 엄마랑 극장엘
가지 않게되었다.
그런데.....어느 날 문득......
엄마의 고마움이 왈칵 느껴지면서 그동안 내가 너무 무심한 딸이었구나 깨닫게 되었다.
엄마의 한없는 사랑을 받을 줄만 알았지 내 가족 챙기기에 바빠서 안부전화 한 통 제대로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명절 전후로 식사대접 한 번 한 걸로 내 임무 다했다고 생각하던 나....
내 아이한테 가지는 정성의 1/10 아니 1/100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나 반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엄마의 생일 이나 부모님 결혼 기념일...방학이나 명절즈음 재밌는 영화가 나오면
함께 보러가거나 두 분이 보시라고 예매해 드리곤 했다.
그런데 요즘 엄마가 외출을 싫어하신다.
엄마의 나이드신 모습이 싫으신가 보다.
엄마랑 같이 나가면 딸보다 엄마가 더 이쁘다는 소릴 듣고 속상해하시던 엄마였는데...
일부러 시간내서 극장 가자고 안해도 된다고 그냥 집에 있는게 더 편하다고 그러셨는데
지난주 지나가는 말처럼 \"이끼\"가 재밌겠더라 그러신다.
마침 아이 방학이라 같이 영화라도 볼 생각이었는데 잘됐다싶어 함께 조조영화를 보러 갔다.
아쉽게도 이끼는 19금이라 인셉션으로 대신하고 점심을 먹고 아이는 친구를 만나 놀겠다기에
먼저 보내고 본격적으로 엄마와 둘이 데이트를 했다.
시원한 백화점에서 아이쇼핑도 하고 투썸에서 아이스크림에 에스프레소를 부어먹는 아포가토도 맛보고...
화장품 매장에서 마스크팩도 사고...
오후에 상영하는 영화 한 편 더 보기로 하고 남은 시간 동안 맛있는 것도 먹고 수다도 떨면서 시간을 보냈다.
딱히 더먹고싶은 건 없는데 갈증은 나던 터라 마침 메뉴에 비어세트가 있길래 생맥주 한잔씩 했더니
술 못먹는 엄마는 그 한 잔에 알딸딸해서 기분이 좋다고 그러신다.
3시간을 기다려 결국 이끼를 보고 8시 넘게 극장을 나서 속을 달랠겸 전북죽 한그릇씩 먹고 헤어졌다.
그렇게 12시간을 엄마와 함께 보내고 몇 일 뒤 엄마가 전화를 해오셨다.
그 날 너무 좋았다고....
두고두고 생각난다고....
그 아이스크림(아포가토)도 생각나고....시원한 맥주도 생각나고....
하루에 영화 두 편 본 것도 그 날 처음이라고....
엄마의 목소리가 즐겁다.
모처럼 엄마를 즐겁게 한 것같아 내 마음도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