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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갛게 지샌 밤


BY 카라 2010-08-15

 

그동안 아이들 열병 치레로 신경이 쇠약해진 나는 결국 지독한 눈병을 얻어 이틀에 한번씩 안과를 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한쪽눈이 욱씬거리고 쑤시더니 급기야 다음날 벌겋게 충혈이 되었고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과 눈주위 통증이 시작되었다. 문제는 이 통증이 눈에만 머무르지 않고 몸살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틀에 한번씩 주사를 맞고 매일 약을 먹으면서도 좀처럼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야가 흐려지니 짜증만 나고 무더위에 지쳐 몸은 점점 무기력해져 간다.

의사말로는 무지 독한 바이러스라서 회복되기에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오늘 아침에 드디어 왼쪽눈까지 감염이 되어 두 눈이 모두 벌겋게 되어 빨간 눈 귀신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어찌나 붓는지 마치 출산 직후의 부운 얼굴처럼 처참하기만 하다.

한두시간이라도 낮잠을 자거나 눈을 감고 있으면 눈의 통증이 조금 줄어들어 견딜만 해지는데 문제는 밤이다.

불면의 밤이 시작되고 말았다.

이렇게 피곤한데 어떻게 잠이 오지 않을 수 있을까?

두 시간을 뒤척이다 침대에서 나와 거실 소파에서 잠을 청해보노라니 갑자기 벼락 천둥소리와 함께 창문이 깨질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진다. 게다가 빗소리는 어찌나 큰지 가득이나 불면증으로 괴로운 밤을 더욱더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

잠이 오지 않으면 책이라도 읽지, 글이라도 쓰지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겨를조차 없다. 그건 몸상태가 정상적일 때 해당되는 것이다.

게다가 뭔가를 끄적거리려 해도 언제 아이들이 빈자리를 느끼고 엄마를 찾으며 자다 깨서 울지도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기 그지 없다.

좀 전에도 아들과 딸래미가 차례로 우는 바람에 다독거리다가 나왔다.

나는 지금 쉬고 싶고 자고 싶다. 그런데 죽어라 해도 잠이 오지 않는다.

나의 경우 너무 피곤하거나 고민이 있을 때 잠을 자지 못한다. 그리고 갑자기 여행을 해서 환경이 바뀌면 잠을 못 잔다. 오랫동안 혼자 자는 습관에 길들여져 있어선지 옆에 누가 누워 있어도 잠을 못잔다. 그 때문에 신혼 초에는 상당히 힘을 들었다.

이제는 무던한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도 이처럼 잠을 못자는 것은 아마도 지금 내 몸이 정상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지금 내가 괴로운 것은 잠이 오지 않는 사실 자체가 아닌 것 같다.

깨어있는 지금 그런대로 활동할 만 하다. 두시간 이상 눈을 감고 있었더니 눈도 좀 덜아프다

내가 힘든 것은 다가올 내일 하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가득이나 피곤한데 빨간 눈으로 지친 몸으로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해야 하는 하루가

오늘처럼 뻔히 보일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정말 고통스러운 것은 고통 그 자체가 아닐지도 모른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냥 내일 지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지금은 편하게 밤을 보내자. 설마 내일 아침까지 잠이 안 오지는 않겠지.

빗방울이 창문을 거세게 두드리더니 이제 그쳤나 보다.

입추라서 그런지 가을을 재촉하는 풀벌레 소리가 나를 위로한다.

눈이 회복될 때쯤이면 이 무더위도 한풀 꺽이겠지

갱년기에 접어들 때의 불면증은 또 하나의 고비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 날의 불면증은 사랑에 대한 열병과 미래에 대한 고민으로 차라리 달콤하기라도 했을터인데 그때의 불면증은 과연 어떤 형태로 찾아오게 될까?

어떤 불면증이라도 오늘처럼 괴로워하며 시간을 보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못하다간 눈병에 걸리지 않아도 매일 빨간 눈으로 하루를 보내야 할지 모르니까.

하지만 그보다는....

아직은 채워 넣어야 할 것들이 많은 소중한 시간이다.

깊고 편안한 단잠을 자지 못했다 하여

우리의 짧은 인생은 불면의 밤도 하나로 허투루 보낼 시간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건강만 허락한다면 스탠드에 불을 켜고 글을 쓰고 책을 읽고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길게만 느껴졌던 이 밤도 서서히 새벽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