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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와 남자(연재2)-여자의 불행, 남자의 불행


BY 사랑의 빛 2010-08-06

여자의 불행, 남자의 불행

 

  

그대는 행복을 찾아서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대는 바로 그 기대하는 행복에 의해서 점점 더 혼돈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대는 쉬바와 깔리가 가지고 있는 힘 안에서 계속 혼미함을 겪고 있습니다. 그대가 그 혼미함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불행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쉬바는 자기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자꾸만 바람처럼 불어 갑니다. 그러나 남자는 불행합니다. 그의 바람 안으로 행복이 들어와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남자는 여자를 만납니다. 그리고 발견합니다. 깔리의 그 신비한 빨판 안에 존재하는 행복을. 쉬바는 깔리의 빨판 안에 존재하는 편안함 속에서 머무르려고 합니다. 그러면서 스스로 바람의 힘을 잃어버립니다. 남자는 그것을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 속에서 시들어 갑니다.

       

 깔리는 자기의 빨판과 같은 능력을 행사하기 위해 자꾸만 어느 벽인가에 들러붙으려고 합니다. 여자에게 들러붙을 벽을 제거해 버린다면, 그녀는 몹시 불안해할 것입니다. 그녀 스스로 자신의 온전함을 자각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자석이 쇠붙이 없이는 스스로의 자력을 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다가 여자는 남자를 만납니다. 그리하여 자기의 행복을 쌓을 마당을 발견하게 됩니다. 깔리는 자신의 빨판을 쉬바의 세계에 밀착시킴으로써, 그 빨판 속의 탄력으로, 마치 요람을 탄 것 같은 행복을 꿈꾸게 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이라 여기는 세계를 자꾸만 견고하게 붙잡아 쥐려고 합니다. 그러나 쉬바가 머무는 것은 잠시뿐, 쉬바는 곧 또다시 바람과 같이 빠져나갑니다. 그 때 빨판의 탄력이 풀리면서 요람 속의 행복은 불안정하게 됩니다.

그대가 여자라면 누구나 쉬바를 원하게 될 것이고, 그대가 남자라면 누구든 깔리를 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대가 원하는 깔리와 쉬바를 찾아서 ‘가졌다’라고 하는 그 편안함을 누리게 되면, 그대는 실재하지도 않는 행복이라는 세계를 착각 속에 구축하게 됩니다. 그렇게 구축된 행복 안에서는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남자가 벽을 허물어뜨렸다고 해서, 허물었다는 그 사실을 자기의 모습인 양 믿고 있는 것은 착각입니다. 그것은 실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여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자가 어느 유리창 한 구석에 달라붙어 있다고 해서, 유리창 전체가 다 자기의 세계인 양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결국 한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구축해내는 행복을 자기의 행복이라고 여기게 되면서부터, 그들은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0년 전, 어느 외딴 섬나라에 한 성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성자가 깨닫기 전에 그를 끔찍이 사랑하던 두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가 깨달음을 얻고 나서 예전에 자기를 위해서 헌신해 주었던 두 여인에게 사랑의 에너지를 나눠주려고 할 때, 그 성자는 몹시 곤란한 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그 두 여인이 갖고 싶은 것, 그녀가 추구하는 행복, 그에게서 얻고자 하는 사랑을 베풀어준다면 그 베풀어준 만큼 그들은 진정한 행복의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반대로, 그녀들에게 베풀어줌을 끊어버린다면, 그녀들은 스스로의 갈등 속으로 파묻혀 버릴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중에 한 여자는 그 성자의 사랑으로 해서 어떤 포근하고 행복한 편안함을 느끼면서 그것을 계속해서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 여자는 행복을 느끼면서도 그녀가 성자에게 가서 달라붙으려고 하면, 흘러가는 바람은 있지만 잡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끼면서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불행했으며, 그랬기 때문에 그 불행의 원인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틀림없이 딱 달라붙을 것 같은데 막상 그에게 달라붙으려고 자기의 빨판을 밀착시키면 이상하게 달라붙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스스로 미칠 듯이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어느 날 정신이 번쩍 들면서 바로 이와 같이 반복하고 있는 자기의 윤회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결국 그 성자는 두 여인 모두에게 불행을 가르쳐 준 꼴이 되었습니다.

         

남자는 이쪽 벽을 허물고, 그리고 또 저쪽 벽을 허물고 나면 ‘나는 두 번 허물었다.’라는 자기 세계를 가지게 됩니다. 남자의 세계는 실체가 없습니다. 남자는 자기의 세계가 본래 없다는 것을 자각하기가 쉽습니다. 남자가 가지고 있는 허상을 깨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여자의 세계를 깨뜨린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유리창에 밀착되어 그 안으로 용해해 버린 것 같은 여자의 세계를 깨뜨린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입니다. 여자는 유리창에 붙으면 유리창이 되고, 나무에 붙으면 나무가 됩니다. 자기 세계가 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여자는 대상과 하나가 되어 버립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안정과 편안함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그 안에는 또 다른 외로움이 꿈틀거리며 일어나게 됩니다. 여자에게 있어서 달라붙어 있는 그 대상이 곧 자기라고 믿는 허상을 자각시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 하면 여자들은 허상을 자각하게 됨으로써 느끼게 되는 내면의 크나큰 외로움을 스스로 무척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 가운데, 총처럼 탁 쏘면 고무로 된 빨판이 벽에 가서 딱 달라붙는 그런 것이 있습니다. 그 조그만 고무는 빨판처럼 오목하게 생겨서 어떤 평면에 달라붙는 순간 그 안에 진공과 같은 쫀득쫀득한 힘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이 커다란 유리창에 달라붙었다고 할 때, 객관적으로 볼 때는 그것은 다만 유리창에 붙어 있는 것 외에는 별다를 것이 없는 작은 고무일 뿐입니다.

    

그러나 여자가 가지고 있는 생명 에너지의 주 기능인 고무 빨판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곧 유리라고 믿어 버립니다. 여자아이가 차에 타면, 차에 ‘앉았다’라고 하는 편안한 느낌을 먼저 갖듯이, 여자는 유리창에 달라붙는 순간, ‘달라붙었다’라고 하는 그 느낌의 세계로 말미암아 유리창과 그대로 동화되어 하나가 되어 버립니다. 그녀는 유리창이 곧 자기인 줄 압니다. 그리고 생각합니다.

‘난 참 행복합니다. 나는 이렇게 커다란 유리창을 전부 다 차지했다구요.’

여자는 스스로 행복이 확실해졌다고 느끼는 순간, 그 대상을 자기의 소유로 여기게 됩니다. 대상은 여자의 행복이 존재할 수 있는 부속품으로 되어 버립니다.

여자는 또 거꾸로 자기의 소유인 그 대상이 사라져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을 갖습니다. 그러면서 그 행복의 반대편에는 외로움이라는 것이 자리를 잡습니다. 깔리의 빨판이 만족하는 순간, 쉬바의 에너지는 바람처럼 빨판 안의 그 진공 속을 휘몰아갑니다. 그리고 고무판의 능력을 약화시켜 버립니다. 여자가 안주할 수 있는 그 행복의 세계를 결국 남성의 쉬바적 에너지가 무산시켜 버립니다.

결국 여자는 남자로 인해서 불행해집니다. 그 때 여자들은 말합니다. “남자들은 모두 늑대야!”라고.

           

맨 처음에 남녀가 만나 결혼을 할 때는 서로가 행복하기 위해서 합니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하고 나면 행복하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귀찮음을 느끼게 될 때가 분명히 옵니다. 여자는 결혼이라는 세계 안에 가만히 안주해 있으면 행복을 느낍니다.

그러나 남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남자는 서서히 바람이 됩니다. 그 바람의 에너지는 빨판 안으로 들어가서 빨판이 달라붙을 수 있는 힘을 자꾸 미약하게 만듭니다. 그러면 그럴수록 여자는 더북 빨판을 오므립니다. 그러나 남자는 더 이상 유리창으로 존재하지 않고 바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면 여자는 자기의 깔리의 능력을 행사할 자리를 잃어버리게 되면서 심한 고통을 받습니다. 여자는 히스테리를 일으킵니다. 오므리고 오므려서 계속 달라붙어 있으려고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안타까움이 스스로에게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남자가 맨 처음에 결혼할 때는 남자 나름의 쉬바적 행복을 위해서 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나는 이 여자를 무너뜨렸다.”라고.

그리고 여자가 만들어 놓은 행복 안으로 들어갑니다. 여자가 그에게 달라붙어서 만들어주는 그 진공과 같은 세계에서 달콤한 안정과 편안함을 맛봅니다.

그러나 그 달콤한 세계는 점점 잊혀지고 무의식적이 되고 타성이 붙게 되면서, 자기에게 달라붙은 그 고무판에 대해 싫증이란 현상이 서서히 일어납니다. 남자는 또다시 자기 안에 근본적으로 갖고 있는 쉬바적 에너지를 행사하기 위해 슬슬 대기가 이동하듯이 이동합니다. 한쪽이 이동하면 한쪽은 당기고 하면서 서로는 서로에게 갈등을 일으킵니다. 그러다가 얼마가 더 지나서, 밀치고 당기고 해 봐야 내 마음대로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면 자신의 쉬바와 깔리의 힘의 행사를 서서히 포기하면서 한 세상 그럭저럭 같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