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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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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모델


BY 카라 2010-07-30

어제 오후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모 엔터테인먼트사인데 혹시 딸아이를 어린이 모델 할 생각이 없느냐고 한다.

무슨 뜻인가 했더니 우연히 딸아이 돌무렵 사진을 봤는데 자기 회사 실장님이 맘에 들어하신다며 최근 사진을 보고 괜찮으면 모델 계약을 체결하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혹시 모델을 빙자한 사기가 아닐까 해서 의심했는데 알려준 홈페이지를 보니 정말 어린이 모델을 관리하는 기획사였다.

활동하는 분야는 광고,잡지,방송프로.너무나 다양해서 정말 하고자 한다면 엄마,아빠보다도 훨씬 더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들으니 당혹스럽기도 해서 남편과 일단 상의해보겠다고 했다.

처음에는 아이가 예쁘니까 이런 전화도 하는 것이겠지 싶어서 기분이 좋았지만 생각해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아이의 성격 때문이다.

집에서는 수다쟁이에 호기심 천국에 까불기의 달인,코미디언이 따로 없지만 밖에만 나가면 말문을 닫아버리고 낯선 이들에 대한 경계심이 강해서 낯선 사람들이 아는 체를 하면 내 치맛자락 속에 숨기 바쁘다.

사진을 찍을 때도 아빠가 아니면 자연스럽고 천진난만한 표정은 꿈을 꿀수도 없다.

작년 두돌 사진 찍으러 스튜디오에 갔을 때도 아이의 웃는 표정을 포착하지 못해서 수백장을 찍고도 건져낸 사진은 불과 몇 장 뿐이었다.

그리고, 소속사와 계약을 하면 무조건 아이에게 이것을 하라고 강요해야 한다.

정말 끼가 많아서 자기가 하고 싶어서 하는 아이라면 모를까 그것을 강요하고 애가 울고불고 하는 상황이 눈앞에 뻔히 보이는데 이것은 도저히 못할 짓이다.

차라리 아들이라면 어떻게 조금의 가능성도 있겠지만...

애들 아빠는 끼가 많은 편이다. 무뚝뚝한 것 같아도 유머감각도 있고 리더쉽도 뛰어나고 또 남 앞에서 그런 재능을 보여주는 것을 꺼려하지 않는다. 화실에서 함께 지내면서 그림을 그리면서 만났기에 우린 서로 숨겨진 끼(?)가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선천적으로는 무척 내성적인 편이다. 딸아이가 운동신경은 아빠를 닮았어도 이렇게 수줍음이 많은 것은 아마도 내 유전자를 더 많이 물려받았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끼와 재능은 둘째치고라도 나는 아이는 가장 아이스럽게 자유롭게 놀면서 키우는 것이 가장 행복하게 하는 길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미래에 얼마나 많은 짐들이 아이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할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가르치고 강요하고 억압하는 현실.

그런데 벌써부터 이 어린 아이에게 그런 것을 강요해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혹시나 애들 아빠가 이렇게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없다면서 한번 해보라고 등을 떠밀면 어떻하나 그게 걱정스러웠다.

이야기하지 말고 나 혼자만 알고 거절해버릴까?

하지만...그래도...이에 대한 애들 아빠의 생각도 사실 궁금했다.

어쩌면 숨겨진 끼(?)가 우리 딸에게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너무 소극적이고 내성적이라서 딸아이에게도 은근히 그러길 바라는 마음 아니냐고 하면 어쩌나...

조금은 용기를 내어 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나...정녕 애들 아빠는 사랑스런 나의 남편이고 아빠였다.

그런 것에 대한 동경과 아쉬움은 남겠지만, 딸아이는 성격상 안 될 거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머릿속에 딸아이가 예쁜 옷을 입고 방실방실 웃으면서 방송에 나오고

사진촬영하는 모습을 상상(?)만 하는 행복한 표정으로 이에 대한 마음을 일단락 접었다.

어린이의 하루와 어른의 하루는 똑같이 24시간이라도 완전히 다르다.

나는 누군가에게 예쁜 어린이가 되기보다는 아이 스스로가 이 세상의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깨닫는 시간을 많이 가지길 바라고 행복하길 바란다.

그리고 언젠가 제가 스스로 그 길을 원할 때 부모는 도와주는 역할을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예쁜 아이보다 더 소중한 것은 예쁜 마음이다.

어른들의 나쁜 짓(?)으로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동심을 잃고 어둠속에서 상처받고 울고 있을까?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자행하고 있는 억압과 강요는 또 무엇이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