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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심리학에 길을 묻다>연재18 - 남자와 여자 men & women


BY 사랑의 빛 2010-07-09

남자와 여자 men & women

 

 

 

남자와 여자가 싸우면 과연 누가 이길까요? 남자? 천만에. 반드시 여자가 이깁니다. 주먹으로 눌러놨다고 해서 결코 이긴 게 아닙니다. 시장에서 싸우면 남자가 먼저 도망갑니다. 그것은 정말이지 체면 때문이 아닙니다. 악착같고 끈질긴 그 힘에 있어 남자는 여자의 상대가 안 되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도 어떤 의기가 있는 몇몇 남자를 제외하고는, 부부싸움에서 여자를 이기는 남자를 본다는 것은 무척 드문 일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그토록 여자를 강하게 만드는 것일까요? 그것은 여자 속에 숨겨진 남성 에너지가 분출하기 때문입니다.

 

주역에서는 여자를 으로 나타냅니다. 겉은 음(--)이지만, 속은 양(=)이 두 개입니다. 곁의 음(--)만 사라지면 강력한 양 에너지(=)가 분출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유순하던 여자라도 오기가 발동해서 음 에너지가 벗겨져 나가면, 막강한 남성으로 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싸우거나 춤추거나 욕하거나 흉볼 때, 여자의 양 에너지가 쏟아지기 시작하면 아무도 못 말립니다. 도저히 걷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 때 어설픈 남자는 접근도 할 수 없습니다.

 

여자가 한번 부끄러움(여성)을 잃어버리면 못 하는 게 없습니다. 30대를 넘기면서 여성 에너지를 잃어버린 여자는 가장 남성적입니다. 그 때는 여자에게 염치나 체면 같은 것은 더 이상 없습니다. 벌거벗은 여자들만이 모일 수 있는 목욕탕에서의 그 무차별적인 음담패설, 거기에는 그 어떤 여성적인 것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여자 속의 남성인 ‘아니무스animus’만 날뛰는 여자는 이토록 추해집니다.

반면 너무 여성적이어서 자기 문을 닫고 안으로만 기어 들어가 있는 여자는 ‘아니무스’를 숨 막히게 함으로써 엉뚱한 발작을 일으키게 됩니다. 탁 막혀 버린 여성 에너지 앞에서 남자는 숨 막히게 됩니다. 그녀는 그 어떤 사랑도 베풀지 않고 항상 고독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 속의 남성인 ‘아니무스’와 조화된 여자는 비로소 음덕을 베풀게 됩니다. 음덕이란, ‘아니무스’와 조화된 여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향기와도 같아서, 그 향기는 마치 어머니와도 같이 모든 남자를 움직일 수 있는 위대한 힘이기도 합니다.

여성 에너지만으로 고착되어 ‘아니무스’를 질식시켜 버리지 않은 여자, 또한 여성 에너지가 고갈되어 남성으로 굳어버리지 않은 여자는 아름답습니다. 그런 여자는 덕이 있어서 남자의 사랑을 이끌어냅니다. 스스로 싱그러운 에너지 속에서 유연한 탄력성을 갖게 되고, 남에게 생기와 활력을 주는 여자가 됩니다.

 

한편, 남자들은 또 어떤가요? 남자들에게 딱 맞는 이상형의 여성이란 없습니다. 자기 마음에 맞는 여자는 이 지구 끝까지 가서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설사 찾았다 하더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그리던 ‘여자’가 아니라는 것이 점점 드러나게 되고, 그에게 남는 것은 실망과 허탈뿐입니다. 그것은 그가 그려온 이성은 바깥이 아닌 바로 그 자신 속에 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남자 속에 내재한 여성, 그것이 곧 ‘아니마anima\'입니다.

남자에게는 어머니야말로 ‘아니마’에 가까웠을 것입니다. 남자가 이성을 알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의 아름다움을 가장 가깝게 간직한 여자를 얼마나 찾았던가요.

그러나 남자의 ‘진정하고 영원한 이상의 아내’는 남자 자신 속에 있습니다. 그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 남자의 ‘여자 찾기’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최후의 순간까지도.

 

남자의 신체 속엔 여성의 신체적 특징이 그대로 들어 있다는 것을 생물학자들은 알고 있습니다. 신체적 특징에서뿐만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남자는 자신 안에 여성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자가 바람을 피웠을 때 여자는 그것을 수용하기도 하나, 인색하고 야비한 남자는 가장 지독한 질투를 합니다. 그 때 여자의 질투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남자는 당장 바람피운 여자를 죽이려고까지 합니다. 그 야비하고 인색함, 내 것밖에 모르는 남자의 질투, 그것은 당신의 ‘아니마’가 저지르는 짓입니다.

남자들은 보통 넓고 관대한 척하지만, 남성적인 꺼풀이 조금만 벗겨지면 가장 쩨쩨하고 인색합니다. 여자는 그 때 남자에게서 남성이 아니라 가장 지독한 여성을 봅니다.

 

남자들이 남성적으로 날뛰다 양성적 힘을 다 써버리면 남자는 가장 나약하고 불쌍한 여자로 전락합니다. 60을 넘긴 남자들 가운데 방을 쓸고 닦고 음식을 끓이는 등 온갖 여자 일을 도맡아 하는 궁상맞은 여자 아닌 여자가 얼마나 많은가요. 남성적인 힘은 소진되고 여성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남자들은 자신 속에 결코 자신 속의 여성만 남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남자들에게 자신 속의 여성만 남게 될 때 남자들은 가장 한심하고 가련해집니다. 남자는 꽃밭을 감싸는 굵고 튼튼한 울타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자신에게 남성만 남게 해서도 안 됩니다. 남자에게 남성만 남게 될 때 남자는 난폭해지고 삭막해지고 모든 것을 파괴하려 들고, 마침내는 스스로도 지쳐 쓰러지게 됩니다. 남자는 자신 안에 내재된 여성과의 조화 속에서만이 나날이 무성해지는 나무처럼 자랄 수 있는 것입니다.

남에게 기쁨을 주고 스스로 성공하는 남자에게서 우리는 두 에너지의 조화를 봅니다. 그것은 마치 음과 양의 두 극단이 하나의 원 안에서 조화를 이루는 태극과도 같은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자신 안의 ‘아니무스’와 ‘아니마’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그것은 ‘나(에고)’의 욕망을 희생하는 것입니다.

여자냐 남자냐에 따라 우리 자신 속의 ‘나’의 작용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여자는 음성적으로 작용하고, 남자는 양성적으로 작용합니다. 때문에 우리가 ‘나’의 작용을 잘 관조하면서 인내해 가다 보면, 자신 속에 있는 반대적인 속성, 즉 여자는 양성적인 면, 남자는 음성적인 면이 드러나면서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우리 마음속의 ‘나(에고)’의 작용을 관조하면서 인내하다 보면 무의식이 의식과 서서히 통합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각자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던 ‘아니무스’와 ‘아니마’가 드러나게 됩니다. 진정한 개성, 전체성이 꽃피어나는 것입니다.

개성(individuality)이라는 말은 ‘dividual(나눌 수 있는)’에 ‘in’이 붙어서 된 ‘individual(나눌 수 없는)’의 명사형입니다. 그것은 곧 ‘더 이상 분리될 수 없는 하나’라는 뜻입니다.

 

생명(사랑)과 하나 된 사람은 자신 안의 여성과 남성을 찾았기 때문에 그에게는 더 이상 사랑의 갈증이 없습니다. 자신 안의 사랑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남자면서 동시에 여자입니다. 양성을 겸비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여성처럼 부드럽고, 때로는 남성처럼 거칩니다. 화를 낼 때는 불같이 화를 내고, 얌전할 때는 또 한없이 얌전합니다. 때로는 눈물도 흘리고, 때로는 무섭기도 합니다. 그에게는 특정한 이미지가 없습니다. 그는 상황에 따라 변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는 결국 사랑(생명)을 터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궁극적으로 그 길만이 우리가 진정한 행복으로 갈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 연재 끝. <사랑학연구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