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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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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넘의 시엄마, 이 넘의 며느리....


BY *콜라* 2010-06-30

밥을 먹으면서도 과일을 반찬 처럼 먹는 나때문에

혼자  마트에 가도 과일 사오는 일을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 남편이

어제는 제철 만난 복숭아를 사왔다.

 

수줍은 열 아홉 소녀마냥

양쪽이 발그레한 빛깔이 도는 복숭아 박스를 뜯는 내 손에서

급히 박스를 빼앗더니 일회용 장갑을 낀다.

 

냉장고에 복숭아 넣을건데 무슨 장갑까지 끼고 그래. 내가 할게

 

습관처럼 나오는 내가 할께

이 말은 남편이 싫어하는 나의 어휘 가운데 1위다.  

 

안 해야지 조심하지만  

남편이 하는 일이 못 미더워서, 또 힘들까봐 하기 시작한 이 말이

이젠 습관처럼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욕 먹으면서도 절대 고쳐지질 않아서

요즘은 말이 나오기 직전 아차하며 입을 다무는 때가 많은데

거꾸로 남편이 뭘 하다가 내가 쳐다보면

그래 니가 해 이런다.

 

냉장고에 복숭아 넣는데 장갑을 끼고 그러니까

차라리 내가 할게 하는 거라는 내 말에

 

, 춘천 엄마한테 물어 봐라. 복숭아 옻 오르면 얼마나 가려운지 한다.

 

복숭아가 뭔 옻이야. 그냥 털이지

엄마한테 물어봐~ 물어 봐~

 

엄마한테 물어보면 확실하게 내 말이 틀렸다는 걸 확인 시켜 줄 거라는 확신이 담겨 있다.

엄마는 복숭아 밭에서 오래 일하셔서 옻 오른다고 맨 손으로, 못 만지게 그러셨다.

 

바로 춘천 엄니께 전화를 걸었다.

사실은 며칠 동안 전화를 드리지 않아서 궁금하던 차에

생각났을 때 하지 않으면 또 시간을 놓칠 거 같아서 한 거였는데

그가 보기엔 복숭아 옻에 대해 물어보려는 것이라 오해 했을 수도 있었다. 

 

엄니~~~~~~~ !!

막내야~ 너그들 전화 할까봐 내가 오후 세시쯤 되면

화장실도 안간다~ 다들 잘 지내? 너그 친구라면서 가시오가피 보냈던 사람이

또 마늘 장아찌를 보내줘서 내가 먹긴 잘한다만, 미안해서 어짜냐.

기냥 있어도 되는 지 모르겠다.

백내장 수술한 눈은 잘 되어가지고 눈물도 안 나고 …….

 

먼저 엄니가 며칠 사이에 일어난 일들을 날짜 별, 시간대로 한 10분 나열하고

내가 다시 가게, 교회, 학교 …… 테마로 한 10분 보고하고

시누형님, 네 동서 형님, 20명의 조카들까지 순서대로 근황 챙기고

오늘 전화하고 내알 또 해도 이런 수순을 거쳐

본론으로 들어가는 우리의 대화는 전반전이 약 30, 후반전이 20

기본이 그렇다.

 

다행히 요즘은 선불국제전화제도가 있어서 전화비 걱정은 하지 않해도 될만큼 싸다.

참 좋은 세상이다.

 

오늘은 안부전화라 별 이슈가 없어서 

둘째 형님네 텃밭의 상추 소식까지 물어보다가

복숭아 생각이 났다.

 

엄니! 복숭아 그거 옻 아니고 털 땜에 간지러운 거죠?

하모~ 옻은 옻나무에서 오르는 거지, 은행 잘못 까도 오르고~

근데 저 사람이 자꾸만 엄니가 복숭아에서 옻 오른다고 했다고 우겨요.

아니 은~~제 내가 복숭아에서 옻 오른다고 했냐! 옻은 옻 나무에서 생기는 게지~

맞죠 엄니~ ~ 내 말이 맞지 응~ 저 사람이 자꾸 우기잖어~

에이~ 선생이 그것도 몰르냐. 암데나 찍어다 붙이지 말라고 혀~

그러니까. 아까도 어떤 사람이 땡감 사진 찍은 거 인터넷에 올렸는데 사과라고 우기고,

어제 슈퍼에서도 이면수를 동태라고 우기고, 주차할 때 문 앞에 대라면

저기 구석탱이에 대는 바람에 무겁게 낑낑대게 만들고, 맨날 암 것도 아닌 일도 끝까지 우겨요.

그러게 말이다. 니 시아버지하고 똑 같다 똑 같애. 털 뽑은 자리에 그 털 끼워야 하는

사람이라, 속옷 가게 하면서 손님들한테 물건 떼어 온 장기 보여주면서 그 가격에 팔고

해만 지면 애들 기다린다고 집에 들어가자고 보따리 싸고, 장사가 이익 남기는 게 뭔 죄냐.

좀이라도 남기고 팔면 사기나 치는 것처럼 어쩔 줄 몰라 하고 그래서 망했잖냐…….

ㅋㅋㅋㅋ

 

케케묵은 일들까지 끄집어 내어 한참을 엄니와 맞장구 치면서 떠들다가

\'우리 막내 메누리 사랑한다\' 엄니의 마지막 멘트를 들으며 \'미 투요 엄니\'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전화하기 전에 남편과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조차 까맣게 잊어버리고

복숭아 하나를 쓱쓱 깎는데

그가 중얼거렸다.

 

이넘의 시 엄마는 이넘의 며느리하고 죽이 맞아서……

다른 집들은 아들 편 든다는데..

ㅋㅋ

 

그래서

시방, 이넘의 아들이, 엄마를 욕하는 겨?

아님, 우리가 싸우길 바라는 겨?

 

아우~  고소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