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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할머니를 찾아


BY 그대향기 2010-05-26

 

 

매주 토요일은 할머니들하고 부곡에 목욕하러 가는 날이다.

호텔의 사장이 할머니들을 특별히 배려하셔서 어린이 할인 가격으로

호텔의 시설 좋은 큰 목욕탕을 가는 날이라 기분이 좋다.

탕이 좁아서 답답하지도 않고 대형 사우나까지 여러개 있어서 목욕가는 날은

마치 소풍이라도 가는 것처럼 기분이 좋으시다.

 

그날도 기분 좋게 목욕소풍을 갔다.

등을 좀 밀어드리는 건 있지만 개인위생들이 철저하셔서

혼자서 자신들의 몸을 잘 닦으신다.

미끄러지지지 않으시나 관심두고 잡아  드리기만 하면

탕 안에도 잘 들어가시고 사우나까지 느긋하게 즐기신다.

 

지난 번 고향이 이북인 87세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고향이  같은 이북이신 또 다른 할머니의 건강이 극도로 나빠지셨다.

서로 언니동생하면서 의지하시고 그렇게 사시다가

한분이 먼저 가시니 상실감이 크셨던지 기력이 하루가 다르게 나빠지셨다.

잡숫던 식사량도 애기처럼 작아졌고 눈까지 퉁퉁 부어오르고

손발이 차갑게 식어가시면서 걸음조차 힘들어 하셨다.

 

서울에 아들이 하나 있긴해도 사업하느라 외국출장이 잦고

며느리하고는 사이가 별로이신 듯 했다.

총명하시고 계산 정확하고 말에나 행동에나 분명하셨던 분인데

하루가 다르게 허리가 굽어지고 걷는 걸음에 숨이 차 하셨다.

며느리하고 사이가 그렇다보니 일찌감치 이 곳에서 다른 할머니들하고 생활하셨는데

건강이 많이 나빠지셨다는 연락에 아들이 모시러왔었고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여러가지 종합검사를 다 해 두고 다시 내려오셨다.

 

약처방을 해 왔는데 어마어마하게 여러가지 약이 한줌이나 됐다.

그 약을 잡숫기 시작하면서 정신도 흐릿해지셨고 총기까지 희미해 지기 시작하셨다.

간도 나빠서 간기능약까지 정말 여러가지를 드셨는데 힘들어 하셨다.

목욕탕에 들어가기 전에 탈의실에서 지켜보는데 옷의 단추를 잘 풀지 못하셨다.

얼른 풀어드리고 내 옷을 벗는데 또 마냥 앉아 계시길레 건너다 보니

벗은 옷을 어디에 넣어야할지를 몰라 하셨다.

일주일에 한번씩이나 반복하는 일인데도 넋을 놓고 계셨다.

\"이거..어떻게 해야하는지 잊어버렸네....ㅎㅎㅎ\"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심장이  터질듯이 가슴이 아파왔다.

 

허망하게 웃고 계시는데 눈물이 나려고 했다.

주판알이 없어도 전자 계산기가 없어도 암산을 줄줄줄..하시던 분인데...

양장이며 한복바느질까지 꼼꼼하게 얼마나 잘 하시던 분인데...

옷을 넣어 드리고 목욕바구니를 내가 들고 한손은 할머니를 부축해서 탕 안으로 들어갔다.

비누칠을 해 드리고 헹굼까지 다 해 드린 다음 큰  목욕탕안에 잠시 계시라 해 두고

나부터 샤샤샥~~초특급으로 씻고 등 밀어 드릴 다른 할머니들 찾아서 밀어 드리고는

내 자리로 돌아 오는데 허.....걱.......

그 할머니가 없어졌다.

 

당황스런 눈으로  혹시나 물에 빠지셨나 해서 탕 속을 들여다 보니

목욕바구니도 같이 안 보였다.

아까 내가 비누칠을 해 드리고 등을 밀어드린 다음 내 몸을 씻는 동안

힘없이 잠깐 앉아 계시는 모습을 봤는데 그 사이 목욕을 마치고 나가신걸까?

때미는 것이고 뭐고 몸에 묻은 비눗물만 대강 헹구고 목욕을 끝낸 후 탈의실로 나와서

빨가벗은 알몸 아줌마서부터 할머니들?까지 흔들리는 시선으로 모조리 다 훑어나가는데

저쪽 구석에 새우처럼 동그랗게 등이 굽은 할머니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뭔가를 자꾸 만지작거리면서 앉아계셨다.

 

찾았다는 안도감도 잠시.

순간 더럭 겁이 났다.

급성으로 치매가 오셨던지 시곗줄을 못 채우시고 입술까지 쑥 내 미시고 열중하고 계셨다.

정신을 놓은 모습이 저러하거나 비슷하지싶은 폼으로.

비틀어지고 또 비틀어지는데도 계속반복하시고 입술은 오리주둥이처럼 앞으로 쑤~욱~나와있고

내가 놀라서 옆에 가 앉아도 멀뚱한 시선으로 올려다만 보셨다.

내가 놀란건 묻어 두고 당황하지 않으시게 안심시켜드린 다음

\"시계가 안 채워져요? 아직 몸에 물기가 있어서 그런가보네요.

제가 해 드릴께요. 옷도 입으시고 저랑 차에 가 있자구요

저도 다 했어요.ㅎㅎㅎㅎㅎ\"

 

아무렇지도 않은 척 옷을 입혀 드리고 손잡고 탕을 빠져 나오는데

멀지 않은 날에 또 다른 이별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눈 앞이 흐려졌다.

이 할머니는 소리없이 조용히 내 일을 도와주셨고

우리 가족의 재단사이시며 전문수선사이셨는데....

넓은 운동장의 손톱만한 잡초까지도 용서없이 다 뽑아 내시던 부지런쟁이셨으며

자신의 몸에는 근건절약이 철저했어도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사랑에는

남모르는 큰 금액도 흔쾌히 내 놓으시던 숨은 독지가셨다.

깐깐한 성격으로 남하고 쉽게 동화되는 성격은 아니셨지만

나나 우리 가족들한테는 끔찍하게 잘 하셨는데 난 아무것도 해 드릴 수가 없다니....

 

북한에 생존해 있다는 남편분도 만나보지 못하시고 생을 마감하시려는 그 마음이 오죽하시랴?

할머니의 남은 생애 동안 내가 해 드릴 수 있는 모든 도움은 아낌없이 해 드리겠지만

가시고나면 친정엄마만큼이나  큰 빈자리가 생길 것 같다.

우리 부부를 딸과 사위처럼 이뻐해 주시고 우리 애들을 순주손녀처럼 챙기셨는데......

어제부터 할머니가 유난히 좋아하시는 사태곰거리를 해 드렸는데 아주 맛나게 잘 드신다.

뽀얗게 잘 우러났고 고기도 도가니도 잘 익었다.

덜 더워지기 전에 맛있게 잘 드시고 기운을 좀 차려주시길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