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 형님 넷에 시누님 사이에서
수다떨고 음식 간 보는 것이 전공인 5형제 집안의 막내 며느리.
설겆이조차 차례 돌아오지 않을 때가 많아 복이 터진 뇬이다.
어릴 때부터 맏며느리가 되어 동서들 거느리며 형님 노릇하며 살겠노라 호언장담했었는데
거꾸로 막내 며느리가 되어 누릴 복이란 복은 다 누리며 살고 있음을 부인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나는 맏며느리가 부러울 때가 있다.
그것은 참으로 치명적인 아픔이기도 하다.
남편은 바로 윗 형과 10년 터울의 아버님 연세 55세에 낳은 늦둥이니
이후 아버님 삶의 목표가 손주 같은 아들의 결혼인 건 당연지사.
우리가 연애시절 이미 80세 넘어 뇌졸증으로 거동이 불편하셨던 아버님은
막내 아들 장가들여야 하는 절대절명의 책임감 때문에
돌아기시지도 못하고 계신다고 할 만큼
누구든 첫 선 보는 여자와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고 하셨단다.
연애시절, 툭하면 \'선봐서 아버님이 가라면 가야 한다\'고
내 애간장을 녹이던 그 아들....
홧김에 \"니네 집은 어떻게 사나 보자... \"호기심으로 따라 간 내게
한달 안에 결혼하라고 재촉하셔서 당황하게 만드시던 아버님은
결혼 후, 명절에 가만히 내게 오셔서
어눌해진 발음이지만 따뜻한 음성으로
\'친정 가야지\' 하셔서 형님들 부러움과 시샘을 받게 하셨다.
잘 해드릴 만한 철도 덜 났고 돈도 없었던 우리는
주말마다 서울서 강원도를 한 주도 거르지 않고 다니며
얼굴 도장 찍는 게 가장 저렴한(?) 선물이었기에
놀러다니기 바쁘던 \'놀귀\'가 여행을 딱 끊고 경춘가도를 오가며
일요일엔 온 가족이 같은 교회, 같은 자리에 모여 앉아 예배 드리기를 만 4년....
4월의 마지막 날 아버님의 비보를 접했다.
맏며느리였다면 한 25년, 운 좋으면 30년은 함께 살 수 있었을텐데.....
막내며느리와 겨우 만4년을 살아주시곤 그렇게 가셨다.
혹여 이번 주가 마지막이 되면 어쩌나...
올해 생신이 마지막이면 어쩌나........
음식준비하다가도 눈물이 핑 돌던 날을 잘 견뎌 주셨는데
가족들의 만류도 뿌리치고 옥수수 좋아하는 자식들 먹일 생각에
수족의 반이 마비된 불편한 몸을 끌고 옥수수 밭으로 나갔다가 넘어진 게 마지막이 되셨다.
토요일이면 이른 아침부터 창밖을 바라보며 막내 아들 내외를 기다리고도
정작 도착하면 보일 듯 말 듯 엷은 미소 한 번 지으시는 게 전부였던 아버님.
우리 결혼식을 마지막으로 일체의 외출을 하지 않으셨기에
두툼한 외투 한 벌 사드리지 않았던 게 두고 두고 한스럽다.
결혼 하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
아버님 생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병원에 입원을 하셨었다.
연로한데다 폐렴이 심해져 일시적으로 대소변 받아내야 하던 그때
가족들 중 유일하게 시간이 자유로웠던 내가 자연스럽게 병실을 지키게 되었다.
갓 시집 온 막내며느리에게 부담주기 미안해서
물도 자주 드시지 않으려고 하시는 아버님께 간곡히 말씀드렸다.
“아버님. 저도 자식이에요. 아버님께서 편안하셔야 아주버님들 직장 일 마음놓고 하시니까
저랑 있는 거 괜찮다고 아버님이 말씀해 주세요.”
워낙 말씀 없으신데다 불편해 지신 뒤로 더욱 말씀이 없어지신 아버님께서는
대답 대신 환하게 웃으시더니 이후 몸을 맡겨 주셨다.
병실에서 하루 종일 둘이서 지내며 아버님 좋아하는 찬송가를
목소리가 꺽꺽댈 때까지 불러드리면
‘음.. 감동적이야...\'
마음 표현하시던 그 분이 떠나신 지 벌써 오랜 시간이 흘렀다.
돌아가시고 나면 아무리 효자라해도 후회만 남는 법.
그랬다.
나름대로 한다고 했건만 돌아가시고 나니 후회와 안타까움이
남아 있는 나를 아프고 힘들게 했다.
혹시 시부모님과 껄꺼로운 사람이 있다면 오늘......
내쪽에서 용서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지금 해 드리면 어떨까.
‘빈다’는 것의 참 의미는 무조건적이어야 함을 전제하는 것.
부모와 자식 사이에 더 잘하고, 더 못한 계산이 없어야 하고
자식이 부모 앞에 머리를 엎드린다고 자존심 상할 일도 아니며
그 자식의 손을 잡아 주고 싶지 않은 부모가 세상에 있을까.
아니면 내 마음이 전해질 때까지 하는 데 까지 하며 기다려 보는 것은 또 어떨까.
정히 용기가 나지 않을 때, 오래 오래 켜켜이 쌓아 둔 묵은 화가 풀리지 않을 때
엎드린 자식의 뒷 통수를 치지 않을까 도저히 신뢰가 회복되지 않을 때
용서 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훗일에 확신이 서지 않을 때......
이런 저런 이유로 망설이고 있다면
내가 부모에게 한 그만큼 내 자식에게 되돌려 받는다고 생각해보면
명답이 떠오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