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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한강


BY 카라 2010-05-03

어른이 되어 처음 서울에 왔을 때 가장 먼저 놀란 것은 사람들의 무리였다.

길을 지날 때 횡단보도를 건널 때 전철을 탔을 때

개미떼처럼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걷는다는 사실에 놀랐고

좁디 좁은 공간에 타인의 몸들이 주는 불쾌한 느낌을 견디며 숨을 멈추고

목적지까지 가야 한다는 사실에 놀랐다.

특히 신도림역에서의 치열한 몸싸움은 서울이라는 낯선도시를 무서운 괴물처럼

느끼기에 충분했다.

시골에서 갓 상경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자란곳은 그래도 제 2의 도시 부산이었다.

하지만 서울이란 도시는 서울을 제외한 모든 지역을 ‘촌’ 내지 ‘시골’이라고 이름지었다.

직장을 향하는 새벽의 전철 안,

서 있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의자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편안하기는 커녕

하나같이 눈을 감고 있었고 피곤하고 지쳐보였다.

어두운 터널을 한참 지나자 갑자기 밝은 세상이 들어왔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밝은 햇살과 함께 파란 하늘 아래 잔잔한 강물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었다.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었던 것은 바로 한강이었다.

마치 사막 한가운데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것처럼 한강이 내 가슴 속에 들어왔다.

내가 서울에서 계속 살게 된다면 언젠가는 나도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 꼭 살아보리라

사람들이 비가 오는 창밖 풍경이나 강물을 보면서 편안함을 느끼는 것은

태어나기 전 자궁속에서의 양수안의 느낌을 무의식적으로 그리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너무 오래 바라보면 우울증에 걸릴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어쨌든 내 꿈은 그리하였으나 서울에서의 한강변 아파트는

로또 당첨이 아니면 서민이라면 꿈도 못꾸는 곳임을 너무나 잘알고 있었다.


한국에 한강이 있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이 흘러서 내게도 유럽여행이라는 행복한 기회가 왔는데, 그때 가서 본

영국의 템즈강이나 파리의 세느강도 한강의 아름다움에 비할바가 못된다.

한강 주변을 흐르는 수많은 하천 중의 하나에 불과해 보이는 그런 작은 강들이

유명해진 건 아마도 도시의 유명세와 관광 효과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강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즐기기 때문이다.

강물 주변엔 늘 사람들이 모여있고 노래를 부르고 차를 마시고 사랑을 나눈다.

우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지만, 뭔가 아쉽고 허전한 것이 있었다.

그때 당시의 한강주변은 매점,화장실이 낙후되었고 한강까지 정류장에서 너무멀어서

정말 맘먹고 가지 않으면 안되었다.

유람선이란 것이 남녀의 데이트 코스에 불과했고, 배라는 것도 떡시루처럼 사람만 많이

실었지 도무지 멋이 없었다. 사랑에 빠져 정신없이 서로의 몸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커플들만 눈에 들어올 뿐이었다.

쉽게 말하면 남녀노소 누구나 한강을 즐길 수 있도록 되어있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낭만이 없다는 사실이다.

난 왜 이렇게 아름답고 소중한 자원을 제대로 활용할 줄 모르나 싶어 답답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전부터 서울시에서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한강 주변에 시민들을 위한 놀이공간과 공원을 많이 만들었다.

다리위에 한강경치를 즐길 수 있는 카페도 만들었고 대중교통으로 더 쉽게 갈수 있도록 해 놓았단다. 지금이라도 그런 노력들이 이루어진 게 너무 다행이다 싶었다.

차를 타고 가면서 왜 우리가 연애할 땐 저게 없었을까 너무 아쉽다며 남편과 이야기

하기도 했다.

사실,우리도 한강에서 데이트를 많이 한 커플이었다. 서울에 있는 온갖 한강지구는

다 찾아다녔던 것 같다.

주로 자판기 커피를 들고 한강변 주위를 많이 걸었는데 남들이 그렇게 많이한다는

키스도 찐한 스킨쉽도 한 적이 없다.

달밤에 놀이터에서 나 잡아봐라 놀이를 했던 기억은 난다.

솔직히 그때 난 남편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지 못했기에 잡히면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도망갔다. 잡히면 그때의 어색함과 민망함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에..

남편은 번번히 나의 이런 닫힌 마음에 상처를 받곤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남편과 즐겁고 멋진 연애를 해보지 못한 것이 조금 후회가 되기도 한다.

결혼하고 바로 쌍둥이를 낳을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으니까...

남편과 유람선은 한번도 탄 적 없지만, 야근으로 늦은 귀가를 함께 해주러 왔던 어느날,

한강 유람선 탄 느낌을 준다며 강변 북로를 따라 달렸다.

마치 한가유람선을 타고 지나가는 것처럼 아름다운 야경을 보면서 강변북로를 달리다가 

다리를 지나 다시 올림픽대로로 돌아오는 길은 유람선을 탄 느낌 그대로였다.

서울시내에서 그것도 야밤에 우리가 함께 볼 수 있는 가장 멋진 자연...

물론 한강 주변의 도시의 불빛들과 함께 이루어진 풍경이지만, 같이 만든 조화여서 멋지다.

불빛 하나 인간 하나 없는 강물은 어둡고 쓸쓸하기 그지 없을테니.


어쨌든 즐거운 마음으로 한강을 지나가다 내 눈에 목격되었던 것은 한강변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아파트들의 모습이다.

한강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우후죽순처럼 우뚝 솟은 건물들과

재산권 확보를 위해 걸어 놓은 무시무시한 구호의 현수막들은 내 맘을 무겁게 했다.

한강을 보면서 살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가진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하여 서울시가

서울 한강변에 그토록 많은 아파트를 지었구나.

한강변 주변에 낡은 빌라 건물에 쓰여진 빨간색 페인트 글씨는 섬찟하기만 하다

‘한강물이 혈수가 되도 내 집은 사수한다’

한강변 개발이 어떤 사람들에겐 집을 빼앗긴 채 내쫒기는 형국이 되기도 하겠지만

절박함이 도를 넘어선 표현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건설회사의 잘못된 설계로 한강을 아파트 주민들만이 독점할 수 있게 완전히 막아버린

모양새 역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정말 다시 개발하고 싶어질 정도로...

앞으로도 서울 곳곳이 개발에 따른 몸살을 앓을 것임은 말할 것도 없다.


우리집이란 걸 생애 처음 장만했을 때 한강이 가깝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한강이 보이진 않지만 뛰어서(?) 5분안에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망설임을 두지 않았다. 언젠가는 빌라들이 밀집한 조용한 이 동네도 개발붐이 일면 시끌벅적하겠지만,

아직은 요원하므로 향후 10년간은 조용히 애들 키우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특권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10억짜리 아파트들을 물려주기 보다는

모두가 즐길수 있는 100조짜리 아름다운 한강의 모습을 물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가 처음 서울에서 본 한강과 우리의 아이들이 미래에 볼 한강은 분명 다른 모습이겠지.

아름다운 한강이 내게 그랬던 것처럼

부디 앞으로도 힘들고 지친 하루를 보낸 서울 사람들에게 편안하고 아늑한 마음의 휴식처가 되어주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