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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출소 했다.


BY *콜라* 2010-03-25

 

남편이 출소 했다.

 

두부 대신 갈비 먹고 입가심으로 월남국수, 디저트로 맥주 두 병을 마셔도

들뜬 마음이 가라 앉질 않아 아파트 사우나에서 150cc의 땀을 빼고서야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피의혐의는 특정경제책임가중, 캐나다연방이민법에 묶여

캐나다 직장 감옥에 갇힌 지 4년 만에 부활절 특사로 출소 했다.   

 

우연히도 구속된 날도 2006년 예수님의 탄신일인 1224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남편의 출소를 축하하는 송별 모임이 삼겹살 집 \'석기시대\'에서 열렸다.

일곱 명이 새벽 2까지 콜라 7병과 맥주 5병을 마셨단다.

 

졸업 논문도 완성하기 전 성질 급한 마누라 마음대로

물쓰 듯 그의 이력서를 여기 저기 뿌려서 인터뷰 날짜 잡아 등 떠밀면 

아직 원어민과 경쟁할 어휘력에 자신 없다며 버틸 때도 눈 딱 감아버렸다. 

 

나가서

돈 벌어오지 말고

사람 벌어오라고

 

그것이 유창한 어휘로 변하고 능력으로 변하고 훗날  돈으로 변해 

그가 원하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가져다 줄 것이기에

외국에서는 자원봉사라도 공짜가 아니며

교민사회가 아닌 주류사회 진입해야 하는 이유를 깨닫는 시간이  

빠르면 빠를수록 고생 끝, 행복 시작이라며 모른 채 했다.   

 

성인되어 외국나와 적응하기까지 죽을 것 처럼 힘들어도, 안 죽고 사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니까

빨리 적응하는 것만이 환율 높은 나라 유학 와서 1센트에 발발 떨며 살아야 했던유학생 시절 보상받는 길이며, 본전 뽑는 길이며, 국력신장, 외환보유고 확충에 이바지 하는 길이며…….

달래고 협박하고 부탁해서 감옥으로 보낸 것이 어느새 4년이 훌쩍 지났다.

 

첫 출근하고 돌아 온 저녁부터

자신의 설 자리는 한국 교단이라며 휴직 중인 자리로 돌아가겠노라 선언하는 그를

기회가 주어졌을 때 영주권을 취득하자고 달래느라 나 힘들다는 투정 한 번 못했었다.  

 

노후복지와 교육제도, 사회보장이 확실한 캐나다 시민권을 받으려고, 한국에서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도 돈 바치고 시간 바쳐도 빈손으로 쫓겨 간 사람도 많다는데

돈 한 푼들이지 않고 시간만 가면 절로 취득 되는 기회를 버리지 말자고

경제적인 유익과 천혜의 자연환경, 차별 없는 사회적 의식구조, 소신껏 가르칠 수 있는 교육정책 등, 우리가 무상 취득할 수 있는 모든 이점을 총동원해 어렵게 허락을 받아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 일반학과를 다니다가 전과를 했던 만큼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그에게 있어서

한국 교사보다 높은 연봉과 처우, 업무 성취감 같은 건 별개의 문제였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는 지옥 같은 마음으로 출근하는 그에게

직장은 교도소요 하루 하루가 고문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의 족쇄를 풀어 줄 수 없었던 이유는 교육자로서도 분명 지금 나의 선택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의 마음을 희생시킨 지 6개월 만에 내가 예상한 그대로의 경로를 통해 우리가 원했던 모든 것을 얻었고,그에게 자유를 찾아 탈출해도 좋다고 선언했지만 이번엔 스스로 교도소 생활을 고집했다.

 

교사는 회사원과 다르다며 맡은 학기가 끝날 때 사직하는 거라고 거꾸로 버티더니, 그만 두려는 순간 승진발령나서 미루어지고, 그만 두려면 또 사정이 생겨 이번 학기에 와서 겨우 사직서를 제출했다.

 

사직서 내고 기다리던 한 달, 내가 더 길고 지루했다.

연애와 결혼 도합 14년? 15년? 각자 직장에 다니거나, 그가 공부하고 내가 일을 하거나... 우린 늘 이산가족이었고 늘 바빴다.  

 

실직자가 넘쳐나는 요즘, 스스로 직장을 걸어 나오는 우릴 미친 짓 한다고 욕할지라도, , 시간, 나이 ..... 아무 생각 하지 않고 둘이 동시에 딱 3개월만 쉬기로 했다.

 

욕심많은 마누라에게 떠밀려 한국에서 또 캐나다에서 열심히 일하며 공부했고, 나도 고3 아들 둔 엄마처럼 긴장하며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살았으니

쉴 자격 충분히 있다고 .... 우린 서로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안아줬다.

 

어제 마지막 근무를 마치고 돌아 온 그가 말했다.

 

\"나 출소했어....\"

\"그래... 수고했어.....\"

 

 

만세다 만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