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긴 어디?
캐나다 밴쿠버.
겨울철엔 몇 달 내내 비가 내린다.
어떤 이는 겨울비 때문에 우울증에 걸려 지긋지긋하다고 하지만
나는 비 저 혼자 내리게 두고, 우리끼리 즐겁게 살자고 외친다.
이곳에도 짝퉁 한국 찜질방이 딱 한 곳이 있다.
냉탕없이 판잣집 구석 방 크기의 소금방과 황토방 두 개가 시설의 전부라 해도
한국처럼 손님이 많을 리 없는 이 나라에서 행여 폐업하지 않을까 하여
손님들이 주인 눈치보며 가는 소중한(?) 곳이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그날도 근처 사시는 집사님을 꼬셔 찜질방으로 향했다.
흐으~
뜨끈한 방에 등판 앞판 지지며 몸속의 수분을 어지간히 버렸을 무렵
휴게실에 딸린 한식당으로 가서, 김밥에 미역국을 시켜 집사님과 마주 앉았다.
외국서 살다보면 늘 허기가 진다.
한국말이 고프고, 그리운 이들과 아웅다웅 살던 추억이 고프고
단풍 나무 붉은 기운만 봐도 설악산과 오대산이 고프고,
때로는 김밥 한 줄에도 목이 메인다.
이민 선배들이 그랬다. 이민 초기엔 시간이 약인 줄 알고 살아가지만
시간이 지날 수록 더 깊어 지는 이 허기가
마음의 영양실조로 인한 외로움이란 걸 알 즈음이면
십 수년이 흘러간 뒤라 했던가.
찜질방에서의 미역국...
세상에 이보다 더 환상적인 궁합이 있을까.
미식의 대열에 끼지 못하지만 소박한 들꽃처럼 튀지 않고
무난한 맛으로 한국인 누구에게나 사랑 받는 미역국.
하지만 폭 끓이지 않으면 세상에 이보다 맛 없는 국이 또 없다.
후딱 한 숟갈 떠서 후루룩~ 빨아 들이 듯 입안에 넣고 흐음...... 음미하는 순간
흡!
설 끓은 국물에 소금 간만 한 듯 98% 부족한 맛.
옛부터 산모에게 미역국만 들이대는 이유가 피를 맑게 하는 등의 영양적인 것 외
술술 넘어 가기 때문이기도 했는데 ..
내 기대를 이렇게 박살 내는 주인 아줌마가 밉다.
집으로 돌아 와 큼직한 다라이 하나 가득 미역을 불려
곰솥에 참기름 부어 다그다글 볶은 다음
모시조개 넣고 조선간장 넣어 푹 끓였더니 국물이 뽀얗게 우러났다.
양푼에 가득 퍼 담아 콧물 땀물 범벅이 되도록 먹고 나니 세상에 부러울 게 없다.
\'혼자 먹어도 이렇게 맛있는 미역국을, 그렇게 맛없이 끓이는 비법 한번 들어봅시다!\'
찜질방에 전화를 걸고 싶어 진다.
그날 저녁 퇴근하고 온 남편.
\"뭔 일? 생전 안 먹던 멱국을 다끓였쪄?\"
\"응~ 복수혈전 했어\"
\"누구한테?\"
\"찜방 주인한테\"
\"찜방 주인하고 쌈 했어?\"
\"웅.\"
\"왜?! 머땜에 .......\"
\"멱국 땜에..\"
\"쪼금 줬어?\"
\"아니.. 그보다 더 나빴어. 어쩌믄 그렇게 맛 없는 멱국을 팔 수가 있을까?\"
\"홋, 기냥 나왔어? 니 성질에.... 흐흐 .. 그 주인 오늘 운 텄다. ..\"
후루룩 후루룩 맛나게 미역국 해 치우는 그를 바라보며
흐뭇, 뿌듯, 자부심 가득 한 눈빛을 보냈다.
역시... 난 한 요리 하는 겨. 남편 사랑은 여자 요리 솜씨 아니겠으? 흐~
다음날 아침, 아직 곰솥 절반도 먹지 못한 미역국 데워서 둘이 또 마주 앉아
자기 한 그릇, 나 한 그릇 ..
그날 저녁 퇴근 후 다시
자기 한 그릇, 나 한 그릇
담날 아침 또 자기 한 그릇, 나 한 그릇...
2박3일째 미역국만 해 치운 저녁.
식탁 위에 올려 둔 미역국은 우리의 입질을 기다리며 솔솔 김이 나고 있는데
세수하고 나오며 엉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멱국을 째려보던 그.
\"나 젖나올려고 해...\"
\"어디서?\"
\"젖이 젖에서 나오지 어디서 나와?\"
헛. 외국서 오래 살다보니 이제 영어도 안되고 한국말도 헷갈리나 해서 다시 물었다.
\"뭐라고 했어??\"
\"젖 나올거 같다고......\"
\"왜??\"
\"산모도 아닌데 며칠째 미역국 먹었더니 나 젖 나올거 같다고 ...\"
푸~ 푸~ 하핫
이거 알아요?
미역국 많이 먹은 남자는 여자들 생리하듯 하얀 피를 많이 흘린다는 거?
믿거나 말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