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는 여늬 엄마들과 참 많이 달랐다.
털털에 칠칠이인 나와는 너무 분위기 부터가 달랐다.
어느 누가 보아도 몸태가 정갈하여 세련되기까지하여
그 많은 옷들은 어디서 다 사들인건지 알수가 없었다.
엄마가 보글 보글 끊여주시는 된장찌게를 얻어먹어본 기억이 오래 되었다.
아니 언젠가부터는 엄마의 음식이 맞지 않아
해주려해도 슬쩍 피하는 관계가 되고 말았다.
아주 오래전부터 남에집 친정 엄마들처럼 딸에게 무엇인가를 은근슬쩍
해 주신적도 없다.
어느 여름이었던가 엄마를 모시고 아이들을 데리고 해수욕장을 간 적이 있었다.
우리 엄마께선 태양 볕이 무서워 얼굴을 반쯤은 수건으로 덮으셨다.
그리고 그 위에 모자를 쓰시고 또 그 위에 때깔 고운 양산까지 쓰셨다.
어찌나 속이 터지던지 수건을 확 걷어치우고 싶어
아니 그놈에 모자를 훌러덩 벗겨버리고 싶은 것을 꾹꾹 참았다.
늙은이가 바닷물속에 들어가면 추색하다하여 물 근처도 가지 않으셨다.
유난히 더위를 타는 우리 남편도 나무밑에 앉아 물속에 들어가질 않았다.
하는수없이 입으로 튜브 네개를 다 불었다.
그리고 애들하고 얼마간 놀다가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했다.
딸 셋을 씻겨려하니 욕실이 복잡했다.
그런데 마침 한가한 샤워실이 있었다.
우와! 그곳에 엄마와 함께 아이들을 몽땅 가두어 놓고 샤워를 시켰다.
그런데 우리 친정 엄니는 내가 애들 셋 다 씻기고 나까지 씻고
후질러 놓은 수영복이며 기타 등등 빨래를 다 했는데 그때까지도 샤워가 안 끝났다.
씻고 또 씻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양반이 가죽까지 벗기시려나.
순간 짜증이 났다.
그런데 아뿔사 그 한가해서 처들어간 샤워실이 남탕이었다는 사실.
이상하게도 밖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오고 노크 소리가 들려왔었는데
씩씩 당당하게 아줌마가 애들 셋을 데리고 들어가 나오질 않으니 .....
..........
그렇게 우리 엄마는 보통 엄마와 많이 달랐다.
나는 늘 엄마가 이해하기 힘들었으며
속이 터지고 많이 뿔딱지가 난채 중년을 보냈다.
그런데 그 속터지고 뿔딱지가 나던 엄마가 언제부터인가 이루 말할수 없이
가슴아프고 속살이 떨리게 소중하게 느껴지니 내가 늙은것일까.
된장 찌게를 아니 끊여줘도 좋다.
오래 오래 썬크림 덕지 덕지 바르고 겹겹이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고
쎈캡으로 꾹 꾹 눌어쓰고 햇볕을 가리어도 좋다.
그냥 더도 덜도 말고 그냥 이대로만 계셨으면 좋겠다.
왜!
엄마니까
엄마는 무엇이든 다 용서하고 이해할수 있으니까.
그리고 늦게서야 알았지만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촛불처럼 타들어가는 심정이로
이 딸을 지켜왔다는 사실을 알았기때문이다.
다만 서로의 감성이 달라서 표현 방법이 달랐을 뿐이고
전달과정과 받아들이는 심정이 달랐을 뿐이다.
그래도 다행인것은 돌아가시기전에 그걸 알았다는 것이다.
돌아가신후에 후회하지 않도록 남은 생을 챙겨드려야 겠다.
엄마 !
맨날 당신은 돌아가실때 돌봐주는 사람이 하나 없을텐데 하면서 걱정을 하시는데
엄마 내가 있어요.
그렇게 엄마 내 박질르지 않아요.
올케한테 엄마 맏기지 않아요.
그러니 마음 놓고 남은 여생 더 즐겁고 예쁘게 사세요.
엄마 사랑해요.
한번도 엄마 안아주지 못했는데
앞으로 많이 많이 안아줄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