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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누이와 올케사이


BY 그대향기 2009-03-21

 

친정엄마의 생신을 축하해 드리고 온 지도 보름 정도 밖에 안 지났는데

친정 갈 일이 생겨 또 갔었다.

큰 딸이 외국에 나가면서 불과 다섯달 밖에 안 쓴 장롱이랑 침대를

경주에서 엄마를 모시고 사는 막내 올케네 갖다주러.

우리집에 방들이 많아서 빈 방에 덩그러니 보관 해 둔 애들의 가구는

아직 거의 새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외국에 나갈 계획이 있었더라면 그렇게 큰 돈을 들여 가구들을

구색 맞춰 다 사 주진 않았겠지만 결혼을 하고 일이 급하게 진행되면서

신혼살림들이 모두 우리집으로 배달 된 것이다.

드럼세탁기랑 벽걸이 티비는 시댁에서 쓰신다고 드렸지만

나머지 큰 덩치의 가구들을  우리집에 모두 갖다 둔 것.

 

애들이 외국에서 몇년을 살다 올지 모르는 일이라

가능하면 그릇들도 포장지를 풀지 않은 채로

포장이사 할 때 싸 둔 그데로 빈 방에 깔끔하게 뒀었다.

통풍도 좋고 채광도 좋은 방에.

옷이며 부엌살림..자질구레한 소품까지.

금방 신혼살림을 내 줄 것 처럼 빈 방에 뒀었다.

큰 딸이 보고싶으면 가끔 그 방에 들어가서

같이 시장을 다니며 골랐던 이불이며 그릇들 가구까지를

주..욱...한번 훑어보며, 만지작 거리며  그리움을 달랬었다.

 

그런데 그 가구들을 그냥 묵히자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금액으로 치자면 꽤 나가는 금액이지만 내가 살림을 바꿀 수도 있었고..

딸의 신혼살림을 보관하다가 애들이 돌아오면 그냥 차려 줄 요량으로

큰 방에 그냥 둔 살림들을 어느 날....

새 주인을 찾아 주고 싶었다.

내 살림을 욕심껏 바꾸고도 싶었지만 엄마 모시고 고생하는

막내 올케를 주고 싶었다.

결혼하고 한번도 이사를 안 한 올케는 아직도 짙은 밤색의 가구를 쓰고 있었다.

전에는 그게 하나도 이상하게 안 여겨졌었는데

딸의 가구들이 있고부터 은근히 너무 짙지 않나?....

집이 너무 칙칙하다.....

좀 더 밝은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이 더 많이 들던 어느 날.

급기야 국제전화로 딸한테 물어봤다.

 

\"너 나오면 엄마가 새걸로 사 줄께

 너네들 가구 막내외숙모 드리자...응?\"

부탁도 아니고 그냥 드리자..그랬더니

딸은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을 날린다.

\"그러세요.  우린 부자가 되어 나갈거니까...ㅎㅎㅎ

 엄마네 것도 새로 사 드릴께요~~

 필요하신 것 다 드리세요~~엄마가 알아서....\"

아주 자신만만하다.

\"그래라 그럼. 고맙다~`\"

고마웠다.

신혼살림인데도....

수입 명품 가구는 아니지만 그래도 꽤 하던 가군데...

처음 집을 장만하고 그 집에 넣었던 저네들 첫 살림인데...

 

남편한테 의논도 없이 딸하고만 그랬는데

남편도 흔쾌히 좋다고 그런다.

\"드리면 좋아하실거야..가구들 보니 오래된 것이던데...\"

그래서 친정 나들이를 했던거다.

문 여섯짝짜리 큰 장롱하고 포켓스프링침대며 삼구자리 최신형 가스렌지까지.

내 것을 바꿀까??.....도 생각했었던 탐나던 신혼살림들.

오빠한테 그 사실을 알리니 무척 반기는 눈치다.

올케는 노골적으로 좋아하고.

한 가정의  가구 바꾸기가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아예 집 도배까지 새로하고 기다리겠다고.

새 가구 들여가면 방이라도 깨끗해야 한다며 들 떠 있었다.

이사도 한번 안 하고 사는 집이다보니 도배 한지도 여러 해 되었다고.

 

올케는 우리가 사업에 내리막 길을 걷고 있을 때

카드를 내 주면서 한달 융자 한도내에서 그냥 쓰라고 했었다.

갚을 생각하지 말라고.

17~8 년 전 쯤에 그 돈은 참 큰 돈이었었다.

그 당시 우리에겐.

한달벌어 한달 카드빚 청산도 어려워 돌려막기를 하던 시절이었는데

말없이 카드를 주던 올케.

숨통이 조금 트였던 그 날의 고마움은 ....

부대근처에 살고 있을 때 주민등록증 뒷면의 주소란이  모자랄 정도로

이사를 자주 했었는데도 한번도 안 빠지고

포항으로 달려 와 이삿짐을 날라 주었던 올케.

우리 막내 아들은 아예 올케네 집에서 몸조리를 한달이나 해서 보내주던 고마운 올케.

지금은 우리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고 살림도 그럭저럭 살지만

지난 날의 그 고마움에 큰 보답은 못하고 산 것 같았는데

잘 됐다 싶은 마음에 그리 정하고 말았다.

 

막상 짐을 싣고 오빠네를 가 보니.

집 안의 살림을 있는 상태로 이 방 저 방 옮겨 다니며

도배를 하느라 두 부부가 아주 홀쭉해 져 계셨다.

버릴 짐 정리며 오래 묵은 살림 정리에.

도배사를 불러 했다지만 뒷치닥거리가 더 힘들었다고 고개를 내 저었다.

엄마 방 ..조카방 ..안방에 거실까지...

있는 짐을 옮겨 놓으며 한 도배는 거의  이사 두번의 수준.

들어내고 들이고를 몇번이나 반복하다보니 어휴...

아주 살이 쏘옥..빠져들 계셨다.

환~~하게 도배를 한 안방에 신혼살림을 들여 놓으니

그 전의 짙은 나무색 가구 때 하고는 분위기가 완전 다르네~`ㅎㅎㅎ

꼭 아파트 광고 사진 같다란 내 말에 흐뭇한 미소를 흘리신다.

오빠나 올케 두분 다 너무 좋아들 하신다.

새 가구를 들여 놓고보니 내가 더 기분이 좋아졌다.

오랜 빚이 갚아진 느낌이었다.

은혜를 준 사람은 잊었는가 몰라도 난 내내 가슴에 담아 두고 있었다.

 

가끔 올케가 철 없이 친정엄마를 서운하게 했어도

친정엄마를 내 치지 않은 것만 고마워라..여기며 참았고

오빠의 의견을 무시하고 가정경제를 힘들게 할 지경으로 금융사고를 쳤어도

오빠를 달래며 이혼 할 일이 아니라면 그냥 용서하고 지나가시라 조언했었다.

한번쯤은 실수할 수도 있지 않느냐며....

열심히 맞벌이하면서 집안을 잘 챙기고 애들 잘 건사하는

올케가 한두번 실수했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그 조정의 시간들이 두 부부에게는 참 어렵고 힘든 과정이었다.

올케는 급기야 우리집으로 피신을 오고.

다른 곳으로 피신하느니 나중에 오빠한테 흉 안 잡힐 우리집으로 오라고.

두 부부 사이에서 나이 어린 여동생이 이혼을 막느라 나도 참...ㅎㅎ

한 며칠간을 우리집에서 피신해 있으면서 내 일도 도우며

시간을 보내면서도 늘 불안해 했었다.

저질러 놓은 일이 하도 엄청나.....

그래도 단 한마디도 안 물어 봤다.

오빠한테는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나중에 다 해결나고 올케는 왜 그 때 안 물어봤냐고 그랬다.

오빠한테 당하는 것도 두려울건데 시누이한테까지 당한다면

얼마나 비참하겠느냐며 안 물어 봤다고.....

올케가 그 부분에서는 정말로 고마워하고 있단다.

뭐 그런 일로.ㅎㅎㅎㅎㅎ

뭘 안다고 그 난리를 가로막고 나섰을까?

날마다 전화로 양쪽을 달래고 다독거리고.

어쩌면 그 이유가 친정엄마가 겪으실 고통이 더 큰 이유가 아니었을까?

엄마 모르게 오빠 부부를 화해 시키느라 나도 어려운 전화를 많이 했었다.

 

결국은 잘 정리되고 조금의 앙금이야 남았겠지만

지금은 이혼하지 않았고 조강지처로 남았다.

시누이와 올케지만 막내올케가 우리 집에 시집 오고

단 한번도 섭섭한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나도 남의 집 며느리로 있으면서 시누이가 그러면 화 날 것 같아서

하고픈 말이 좀 있었지만 참았고 그랬던 것이 25 년 째 좋은 올케 시누이로 지낸다.

그 위의 다른 세 올케들 하고도 별 다른 터러블도 없다.

어차피 각자의 살림들인데 시누이가 왈가왈부 한다고 나아질 것도 아닌 것을

공연히 가족들의 결속력만 떨어뜨리지 뭐하러....

 

오랜 빚을 청산하고 나니 날을 듯이 홀가분하다.

내가 올케한테 입은 은혜나 올케가 지난 날 나한테 입은 고마움을

서로 잊지 않고 산다면 우린 분명 사이 좋은 시누이와 올케로 남을 것 같다.

난 사람들 하고의 관계가 불편하면 너무 속이 상하더라.

내가 먼저 손 내 밀걸....

내가 먼저 용서한다 말 할걸...

내 마음의 미움들을 내가 먼저 털어버릴걸...

올케도 분명 흠 잡힐 일 있지만 나도 올케 보기에 흠 잡힐 시누이가 아닐까?

부족함을 긁어내기보다는 사랑으로 감싸 안고

나도 안기며 그렇게 살다보면 자매같은 시누이와 올케가 되지 않을까?

같은 여자들끼리 편가르기는 좀 그렇다.

시댁과 친정.

나도 시누이가 둘이나 있지만 한번도 부딪히지 않고 지금껏 살고있다.

시댁 부모님들 십수년 모시다 보니 오히려 시누이들이 나를 더 좋아한다.

세 아이들 키우면서 자기네들 부모님 모셔드렸다고 칭찬하는 우리집 시누이 둘.

지금은 그 시부모님들 부산으로 이사를 가셨지만.....

친정부모님 모셔주는 올케는 무조건 사랑을 드리고 싶어.ㅎㅎㅎㅎ

 

신혼방을 25 년만에 다시 차린 오빠 부부.

고맙다고...

고맙단 인사를 몇번이나 하시고 좋아라 하셨다.

그래요.

이렇게 서로에게 있는 것을 나누며 살자구요.

그게 물질적인 것이든 정신적인 것이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