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시간.
그저께 큰 행사를 마치고 좀 느긋한 마음으로
난 거실에서 소나무를 길~게 둘로 연결한 차탁에서
컴퓨터를 하고 있었고, 내 등 뒤 쇼파에서 텔레비젼을 보던 남편이
흰머리가 난 내 뒷꼭지를 보다가 한 올 홱~잡아챘다.
\"앗~따거~ 왜 뽑아요~~???!!\"
예고도 없이 갑자기 당하는 일이라
앙칼지게 화를 버럭 내며 뒤를 돌아보니
남편의 손에는 내 흰 머리카락이 들려 있고
표정이 서글퍼 보인다.
\"당신...벌써 흰머리 많이 생겼네....
새댁이가 벌써 이렇게 늙어버렸어?
내가 이렇게 만들었지?\"
그러면서 흰머리를 두 손으로 가만 잡고 있는 남편.
내리 뜬 두 눈이 쓸슬해 보이고 미안해 하는 남편 모습에
버럭 고함지른 내가 머쓱......
\"나도 이제 흰머리 날 나이잖아...
왜 그래요?
공연히 사람 서글퍼지게시리...
이리 줘요. 쓰레기통에 버리고 오게.\"
흰머리를 낚아채다싶이 해서 쓰레기통에 넣었다.
뭐 그런걸 가지고 공연히 감상에 젖지는....
그랬다.
요즘 부쩍 흰머리가 많이 보였다.
머리를 감고 욕실 거울 속에서 나를 보면
흰머리가 제법 희긋희끗 보이고 이제 막 올라오는
짧은 흰머리카락은 하늘로 곧추 서 있다.
아줌마~~
젊은 흉내 그만내시지요.
제가 요렇게 나기 시작했는데 언제까지나 새댁이라고...
이러면서 날 조롱이라도 하는 듯
빗질을 해도 짧은 흰머리카락은 자꾸만 나 잘났네~~하고 일어선다.
염색을 싫어하는 나는 연한 갈색으로 염색하면
흰머리가 많이 감춰진다고 해도
자연 상태로 그냥 고수하고 있다.
시력도 문제지만 그리 반백도 아니고 가끔 아주~~가끔
흰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보이는데 나잇살로 보고 이쁘게 봐 주는데
남편의 마음은 그게 아닌가 보다.
저녁에 침대에서 나란히 누워 책을 보다가도
내 머리카락을 검사한다.
이리저리 손가락으로 빗질을 하다가는
\"요깃다~~!!얍~!!\"
\"아..글쎄 놔 두라는데도 그래욧~!!
나이 들어 나는 값인데 왜 자꾸 뽑고 그래요??
아프기도 하지만 머리숱이 줄잖아..
안그래도 머리숱이 적어 속 상하는구만...
흰머리카락 하나 뽑을 때 마다
십만원씩 내고 뽑아 그럼...!!\"
\"흰머리 뽑아 주는 사람한테 십만원씩 주는게 아니고?
어느 나라 법이 그래? 순 억지네 이건...ㅎㅎㅎ\"
\"그러니까 뽑지 말라고요..돈 아까우면.ㅋㅋㅋ\"
남편은 아내가 흰머리카락을 이고 사는게 안스러운가 보다.
남편이랑 결혼한지도 벌써 25년째.
올해로 우리는 은혼식이 된다.
두려움 없이 사랑 하나 만으로 용감하게 시작했던 결혼생활.
가진게 없어도..배경이 부족해도...
우리는 앞날에 펼쳐질 가시밭 길도 무섭지 않았고
병마와의 싸움도 몰랐기에 거침없이 달렸다.
전력질주.......
우리가 가진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부으며 달려 온 25 년.
지금 우리가 느끼고 같이 호흡하며 공유하는
이 모든 것들로 부터의 축복과 감사가
어느 날 갑자기 우리 곁으로 안겨온 것 들이 아닌 걸 알기에
작은 풀벌레 한마리..밤 하늘의 작은 별똥별 하나....
동녘하늘로부터 솟아 오르는 햇살에도 반짝이는 먼지 한 알갱이....
서산에 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작은 꽃잎 하나에도....
우리는 감사했고 감격했다.
생과 사의 갈림길을 걸어도 봤기에
우리는 더 서로를 다독이며 살았고
많이 가진 자의 윤기나는 삶을 부러워하기 보다는
우리가 현재 가진 것으로 누릴 수 있는 것에 행복했다.
애들을 키우면서 세상 모든 것들로 부터
더 첨가할 수 없을 만큼의 축복이라 여겼다.
부정의 어두운 커텐은 걷어치우고
긍정의 밝고 환한 커텐만 화사하게 치며.
최소한 내가 내 딛는 발걸음이
어디로 향하는지는 분명히 알고 내 딛는 목표의식이 뚜렷하게.
남들이 가진 것..남들이 느끼는 가치..
큰 의미가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누구를 위해서 하든
그 일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길 바랬고
많은 사람이 유익한 일이길 바랬다.
지금 우리는....
흰머리카락 드문드문 생기고 있는 아내인 나와
아직 동안인 한살 연하 남편과
어린 나이에 결혼해서 사위랑 외국에 나가 있는 큰 딸.
유학을 꿈꾸며 아르바이트를 자청해서 휴학 중인 둘째 딸.
올해 고등학교 2 학년에 올라가는 입시를 준비하는 막내아들이
서로를 더 사랑해 주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작지만 큰 사랑을 실천하며 살기를 소망한다.
은혼식을 맞이하는 올 한해를 어떤 의미있는 일로 보낼까??
그 계획을 하는 상상만으로도 행복해 하며 산다.
형편이 어려우면 어려운데로 작은 계획을...
좀 나아지면 나아지는데로 좀 근사한 계획을 꿈꾸며
날마다가 그립고 아쉬운 시간이기를 희망하며 산다.
앞으로는 정말로 흰머리카락 한올씩 뽑을 때 마다
기필코 십만원씩 받았다가 나중에 가발이라도 뒤집어 써야겠다.
아니면 하이모~~라도 심을까?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