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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구두


BY 그대향기 2009-01-16

 

 

바람이 예사 바람이 아니다.

볼을 스치는 바람이 볼이 따갑도록 시리다.

아주 예리한 바늘이나 거친 솔로 박박 문지르는 것 같이

볼을 스치는 바람이 몸을 웅크리게 하고 목을 자라목처럼

깊숙히 집어 넣고 다니게 만든다.

으으으으.....

입에서는 연신 신음처럼 낯선 소리가 흐르고

걷는다기 보다는 종종걸음으로 거의 뛰다시피

운동장을 가로지르고 2층을 오르는 계단을 두어개씩 건너 뛰게 한다.

매서운 겨울인게야.

진짜 겨울 같은 겨울.

봄 같은 겨울이 연일 계속되다가 겨우 며칠동안

겨울 맛을 내는데도 이리 호들갑이라니 참...

간사한 우리 몸뚱아리들은 겨우 며칠 좀 추워졌다고

둥~둥~옷을 껴 입고

양말이며 목도리까지 다 동원하면서 야단법석이다.

 

며칠 전.

토요일 오후에 할머니들과 목욕을 다녀오고

2층 집으로 올라오던 남편이 계단에서  넘어졌다.

앞서 올라 와 버린 나는 그 상황을 모르고

좀 전에 목욕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슈퍼에서 사 온

녹차 컵을 찾던 중에 박살이 난 것만 눈에 들어 와서

\"좀 전에 산 컵이 왜 깨졌지?

 바꾸러 가야하나? \"

남편의 일은 까맣게 모르고 한마디 했더니

\"그..컵..내가 아까 계단에 넘어지면서 깼나보네.

 뭐가 퍼...벅 하더라니....그게 깨졌구나.

그나저나 갈비뼈 안 부러졌나 몰라...

넘어질때 엄청 아프던데 지금도 아..악...\"

컵이고 뭐고 남편의 갈비뼈에 멍이 들었나 보는데

다행히 멍은 없고 외상도 없는데 많이 아프단다.

꼭 갈비뼈가 부러졌을 때의 통증이 있다니.

내일 병원에 가서 사진을 찍어 보자고 하고 왜 넘어졌는지 물었다.

그 이유가 참.....

지금 신고 다니던 구두 밑창이 너덜거리던 걸 수리 안하고 신고다니다가

마지막 계단 앞에서 너덜거리던 구두밑창이 계단에 걸리면서

그만 중심을 잃고 꽈당~~~

다 큰 어른이 서 있던 자세로 앞으로 바로 넘어졌으니

그 충격은 가히 짐작을 할 만....

거금주고 산 녹차 컵(국내 가마에서 구웠다고 돈도 많이 줬구만.ㅎㅎ)이

넘어지는 남편 갈비뼈 아래 있다가 완전히 박살이 나고 남편은 통증을 호소하니

그 컵이 뚜껑까지 박살이 날 정도로 심하게 넘어졌으니 얼마나 아팠을꼬.....

컵이야 다시 사면 된다지만 남편이 걱정인데 난 맘이 출렁이게 아팠다.

 

남편의 구두.

벌써 돈 주고 남편의 구두를 사 준지가 얼마나 오래 되었던가?

여름이면  장날 허드레 좌판에서 플라스틱 슬리퍼 두어 켤레면 끝나고

겨울에는 친정집 아는 분이 경찰이신데 정복에 신는 구두가 우리나라

유명 구두 메이커에서 만든 구두라며 자기가 신을 구두를 남편과 사이즈가

같다며 몇년을 주셔서 그걸 외출화 하면서 버텼다.

그 구두가 오래 신다보니 밑창의 본드가 떨어진 걸 수선한다..수선한다...

그러다가 자꾸 잊는 바람에 그날도 그 구두를 신고 다니다 그만.....

남편 구두를 사 주지 못할 정도로 험하게는 살지 않지만

남편이나 나나 둘 다 서로에게 들어가는 돈은 좀 허술하다.

특히나 애들이 커 나가면서는 더욱 그렇다.

적은 돈이 아니라 큰 돈이 들어가다 보니 부부에게 들어가는 돈은 줄이게 되었고

애들이 필요로 하는 돈을 우선시 하다보니 자연히 옷이나 기타 잡다한 생필품도

얻어다 입기도 하고 선물로 들어오는 것으로 충당하기도 한다.

 

남편은 외모나 자신을 꾸미는 일에는 참 무디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가 애들이 큰 맘 먹고 좋은 넥타이나

와이셔츠를 선물로 해 드려도 이 옷이 어떤 브랜든지

얼마나 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막일을 하면서도 입다간 나한테 잔소리를 자주 듣는다.

일복은 일 할 때만 입으면 좋으련만 양복 정장을 입고 있다가도

갑자기 수리할 일이 있으면 그 옷을 그냥 입고 일을 하는 사람이라

어떨 땐 드라이도 안 해 주고 싶을 정도로 험하게 취급한다.

수련장 일이 늘 고상하지만은 않다.

때론 막일도 해야 하고 또 어떨 땐 생수를 받으러 산에도 가야하고

높은 곳에서 불꺼진 전구를 갈아야 하기도 하는 일인다역의 일이다.

물론 군청이나 관공서 출입도 잦고 손님을 맞을 일도 잦다보니

늘 집에는 일복과 정장이 준비돼 있어야 한다.

24시간 재택 근무다 보니 집에서 손님도 맞고

사무실에서도 손님을 맞고 그러다 급하면 트랙터도 몰고 운동장에 석분 작업도 하고....

카멜레온 같은 남편의 다양한 일상.

금방 번듯한 양복차림이었다가 조금 후엔 또 일복차림의  모습.

하루에도 몇번씩 옷을 갈아 입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도 마찬가지.

주방일만 하는게 아니라 주방에 일이 좀 한가하면

남편을 따라 산에 약수도 받으러 가고

공사 일에 뒷일도 해 주고 마당에 향나무 전지도 도우는

전천후 해병대 아내의 자리를 단단히 해야 한다.

낫 들고 잡초도 베야 하고 빗자루 들고 도로 앞에 트랙터가 지나간 길 흙도 쓸고...

우리집 일은 끝이 없다.

날만 밝으면 일이 천지간에 널려 있다.

알아서 우선시 해야 할 일과 뒤에 해야 할 일을 구분해서

하루 일과를 정해 두고는 자신이 스스로 해야만 하는

자유가 있으면서도 구속이 따르는 그런 일이다.

 

남편의 구두가 그 지경인게 순간 내 맘을 아프게 했다.

말은 좀 희미하게 했지만 그래....남편 구두를 사는거야.

애들 것만 자꾸 걱정하고 정작 이 가정의 가장의 신발이 이 모양이라니.

남편 생일이 나 바로 뒷날이라 아직 좀 남았지만

미리 즐거움을 주는거야.

여기저기 잔돈푼을 모아 뒀던 지갑을 들고

둘째가 서울가기 전에 아빠 구두를 사러 갔다.

자기 신발을 사러 가는 줄 알면 또 안 태워 줄 것 같아서

서점에 급하게 구할 책이 있다고 속이곤 읍내에 갔다.

허...걱.....

구두 가격이 상상초월.

허드레 장날 구두랑은 천지만큼이나 멀어져 있는 가격대.

매장 아가씨한테 세일가격으로 해 달라고 애교작전을 해 봐도 웃기만 하고

실속은 안 차려 주네 야속하게시리...ㅎㅎㅎ

이리저리 둘러봐도 세일은 안 해 줄 것 같고 지갑을 열고

천원짜리로 한참을 세서 지불하니 매장아가씨가 웃는다.

\"웬 잔돈을 이렇게나 많이 주셔요???..ㅎㅎㅎ\"

\"아~`이 돈요....남편 생일 선물 하려고 일년을 모았거든요.

천원씩..이천원씩....이걸로 주면 구두 안 줄거예요?ㅎㅎㅎㅎ\"

둘째는 웃고만 서 있고 이번엔 방 얻고 수수료 주는 일을 혼자서 하다보니

죄송스럽게도 엄마아빠 선물을 못하게 됐다며 첫 월급타면 확실히 한다네...

두고 볼 일이야.

천원짜리로 한참을 세서 지불하고 매장에서 가장 눈에 확~`들어오는 구두를 사고

남편 지갑도 하나 같이 샀다.

오래 전에 선물로 들어 온 벨트랑 바꾼 지갑이 다 헤져서 옆구리가

민망하게 터진 걸 그냥 두고 보자니 분명 안 바꿀 남편이라

이 참에 지갑까지 세트로 바꿔주고 싶었다.

많은 돈은 못 들어 있지만 어디가서 돈을 지불 할 일이 생기더라도

다 헤진 지갑에서 돈이 나온다면 좀 그렇다.

전에 것은 고동색이었으니 이번엔 까만색으로 샀다.

빳빳한 천원짜리 지폐 한장을 서비스로 넣어서 이쁘게 포장 해 주었다.

새까만 구두에다가 새까만 지갑.

남편만을 위한 가죽 구두와 지갑을 사 들고 오는 걸음이 그렇게나 홀가분 할 줄이야.

 

우리의 생활이 욕심부리고 살면 늘 부족한 삶이고

욕심그릇을 비우고 아니 줄이고 살면 언제나 넉넉한 생활이다.

자신을 위한 허영이나 겉치레는 그 어떤 것도 마다하는 남편이나

남이 고기 먹을 때 최소한 생선이라도 먹고 산다면

충분히 감사할 삶이라며 자위하며 사는 아내가 되는 한

우리의 삶은 올 한해도 충분히 여유로울 것 같은  아름다운 예감에 젖는다.

비록 빳빳한 수표를 들고 매장에 가지 못하더라도

남편의 생일 선물을 살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게 가난한

아내지만 행복을 담아 들고 올 수 있었다.

 

한가지 억울한 사실은

오늘 그 매장 앞을 지나는데 아흐...

난 몰라......

오늘부터 20% 세일 들어 갔지 뭐야.....

며칠만 더 있다가 살 걸.....

그랬으면 최소한 몇만원은 아끼는 건데.....

아고 아까워라....

속이 쓰리게 아까워라.ㅎㅎㅎㅎ

뭐 그래도 며칠 더 먼저 행복했으면 그걸로 만족하자.

그래도 아까운건 아깝다.

그 아가씨 담에 가면 야단 좀 치고 와야지.

며칠 기다리시다 사라고 좀 그래 주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