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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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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져라...뒤져.


BY 길가는 나그네 2008-10-05

한번 씩 두통이 일어나면 며칠을 꼼짝하지 못할 때가

빈번해졌다.

두통과 동반되는 어지럼증과 구토 증상까지

맥을 못 추겠다.

주변에서 난리다.

병원에 가자고...

함께 가주겠다고...

하지만 정작 함께 사는 남편만은 천하태평이다.

오히려 술 먹고 들어와서 자극하기 일쑤다.

늦은 밤, 2~3시간씩 온갖 말로 신경을 건드리는

일들이 다반사다.

그런 남편을 상대로 나 역시 포악을 떨 때가

종종 있다.

그리곤 한번씩 구토를 느끼며 화장실로 달려간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차라리 뒤져버려라, 콱 뒤져버려...”

세상에서 내가 제일 두렵다는 남편이 내게 한 말이다.

 

그런 사람과 나는 함께 살고 있다. 천치마냥.

돈을 아주 안 가져 주는 것도 아니고 내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다.

알콜중독자라고 할 수도 없다.

정당한 이혼사유가 없다.

합의 이혼도 안 해주겠단다.

남편이 돈을 주던 안 주던 나는 변함없이 16년의

가정생활을 꾸려왔다.

아이들도 혼자 키웠다.

15살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까지 여자목욕탕을 다녔고

그 후부터 한동안 집에서 내가 닦여야 했다.

어느 땐 때밀이 값까지 손에 쥐어서 혼자보내기도 했다.

심 봉사 젖동냥 다니듯 남동생들과 만날 때면 기회처럼

아들의 몸을 맞기기도 하였다.

 

작년엔 내가 일을 해보겠다며 취업에 도전했었다.

초등 3학년이던 딸아이가 하루 평균 10번씩은 전화를 해대서

울기 일쑤였고 아들이 크고 작은 사고로 병원을 찾을 일이 빈번했다.

한번은 아들이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해서 일주일을 있던 적도 있었다.

직장에서 퇴근하기 무섭게 딸아이 먹을 밥을 챙겨놓고

입원한 아들 곁에서 밤을 새야했다.

아침에 다시 딸아이 밥 챙기고 등교준비까지 시켜놓고

출근을 했지만 남편은 한번도 혼자 있는 딸 위해서

일찍 귀가하지 않았고 병원에 있는 아들을 챙긴 적도 없었다.

아이들을 잘 키우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늘 곁에서 돌봐주던 엄마의

부재를 아이러니 하게도 아이들이 견디지 못했다.

아들의 성적은 점점 바닥으로 떨어졌고 내 눈을 속이는

일들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딸은 정서적으로 불안해 보인다는 얘기까지 들었다.

나는 직장 생활(동사무소의 행정 도우미)을 채 1년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 둬야만 했다. 그만 두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잡아 주는 분들에게 죄송했고 한 달 가까이 간간이 연락해서 다시 나와

주라는 부탁까지 받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1년간 아이들 일에 전전긍긍하는 나를 지켜보던 주임과 계장님께서

‘어쩌면 그렇게 바람 잘 날 없어요...’라며 안쓰러워 하셨다.

가정사로 직장 일을 소홀히 다룬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 일이 아니어도 돕고 나섰다. 인정도 받았다.

민간인이 관공서 전산업무를 보는 것도 그곳에선 내가 처음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일하며 인정받는 것에 자신감도 생겼었다.

나도 아직은 쓸모가 있구나...

하지만... 장애물이 너무도 많았다.

나의 지구력이 부족했던 탓일까...

어쨌든 나는 짧은 직장생활을 접고 다시 집에 들어앉고 말았다.

아들을 다시 책상에 앉히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로 했다.

많이 싸웠다. 그리고 내버려 두기도 했다.

마음을 비우기가 쉽지 않음을 그때 다시 나는 뼈저리게 느꼈다.

다른 집 아이들은 맞벌이 부모 밑에서도 잘들 자란다는데

우리 애들은 유별나다.

어쨌든 아들은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어제부터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는데 결과에 자신하는 녀석의

반짝이는 눈에 나는 다시 희망과 믿음을 가져본다.

 

많은 자살을 시도했었다. 나는...

그런데도 이리 살아있다.

매스컴을 통해 본 자살자들의 성공(?)이 오히려 희한할 정도로

내 명은 길게도 아직 붙어있다.

자살을 기도하지 않아도 크고 작은 병으로 병원

신세를 수없이 질 정도로 빌빌 거리면서도 나는 여적 살아있다.

나의 긴(?) 명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그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38해 밖에 살지 않았지만 이곳저곳 누덕누덕 꿰매고 곳곳에

보수공사까지 받았고 그럼에도 이상 있는 부분이 잔재하고

남들은 한번도 시도하지 못했을 무서운 자살 기도를

수없이 했음에도 살아 있는 것을 감안했을 때... 분명 명이

길다고 단정 지을 수밖에 없다.)

내가 죽지 못하고 사는 것에는 그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간단한 답이야 내 아이들 지키는 일이겠지...

아이들을 생각하면 살아야 함을 알겠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자살을 꿈꾸기는 했지만 기도하진 않았다.

하지만 삶에 미련은 여전히 없다.

난 아이들을 끔찍하게 생각한다고

말할 자격도 없을 것이다.

 

몸의 이상을 느끼지만 병원을 찾지 않고 진통제로

견디고 있다.

스트레스가 요인으로 큰 병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저기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병이 있거나 없거나 나는 그냥 이렇게 견딜 생각이다.

내일을 간절히 기다리는 말기 환자들이

이런 나를 본다면 욕할지도 모른다.

환자들이 아니더라도 흉볼 사람 많을 것이다.

주변 친구들부터도 난리니까...

그냥 하루하루 내 몫만 다하고 싶다.

죽으려고 기를 쓰지도 않을 것이고

내 몸 살리자고 애쓰지도 않을 것이다.

어리석은 나는 그것만이 남편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복수라고 생각한다.

남겨지는 아이들과 가족들 친구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뒤져라...라고 말한 남편이

자신의 말대로 내가 뒤지고 나면 훨훨 춤추고 다닐 수도 있다.

누군가는 이런 걱정을 했다.

내가 죽고 나면 나의 죽음을 누가 알리느냐고...

하긴 내 남편이란 사람은 내가 썩어서

물이 흘러도 모두에게 쉬쉬하고 말 사람이다.

그런 인간에게 복수하겠다며 나를 놔버린

내가 나도 한심스럽지만 그럼에도 나는

나를 어쩌지를 못한다.

남겨질 아이들의 상처......

그것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