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꾸물꾸물하고 한 두어시간후에 꼭 비가 올 것 같으면
한 어머니는 꺼먼 비닐봉지에 칫솔, 치약, 두툼한 옷 두벌에 당신이 쓰려던 속기저귀까지
둘둘 말아 싸서 지팡이를 짚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신다.
\" 저기말여..울집이 세도리인디 첫차가 언제 오는가?\"
\" 아직 잘 모르겄는 디유..\"
서서 기다리지 마시고 파란프라스틱 간이의자를 갖고온다.
올 때까지 앉아서 기다리시라고.
치매병동에서 간병을 자원봉사를 하다가 아예 직원이 된 나는
어느정도 치매 걸리신 어머니들과의 눈높이를 맞추는 법을 알았다.
여자이름이 꼭 아들처럼 지어서 혹시 딸을 내리 낳다가 이젠 그만 낳으라고 아들을 바래서
정작 당신이름은 사내처럼 불리는 이름을 가진 또 다른 어머니는 자신이 덮은 이불을 둘둘말아
이고 나오신다.
\' 울애덜이 엊저녁에 자러 온다고 했는 디 이불 또 하나 줘?\"
\" 아들이 온데유? 딸이 온데유?\"
\" 둘 다 올 겨! 그렁께 이불 하나 더 줘?\"
당신 침대에도 이미 이불이 세채나 켜켜히 쌓여 있는데도 유난히 이불탐이 많으시다.
\" 엄니? 그럼 그 이불은 왜 이고 있어유? 내가 물었더니
\" 워떤 썩을년이 내이불을 자꾸만 훔쳐 갈려구 그래싸서?\"
위 대화는 비가 올지 말지하는 흐린날에 꼭 나누는 대화다. 몇 번째인지 모르지만 나는 늘 같은 질문을 하고 같은 대답을 듣는다. 나중에 막차 갔어? 이러시면 나는 예...막차가 떠났어유..
후에 알았지만 그 어머니는 꼭 막차를 타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들만 기억한단다.
아침에도 막차가 언제와? 점심에도 버스가 지나갔남? 저녁엔 엘리베이터가 막차인줄 알고 바튼을 잡고 타려는 행동을 하신다.
기저귀만 차면 쥐어뜯어 그걸 먹고 삼키지 못해 입안이 하얀 목화꽃처럼 온통 하얀 할머니와 나는 한 참 쳐다보았다. 사람이 꽃이라고 하더니 이렇게 늙고 오래된 꽃도 있구나..
손가락을 넣으면 앙 다물고 놔두지 않아 다른 선생님들도 무척 애를 먹어 문제아 할머니라고 별명이 붙었는 데, 성함이 너무 귀하다.
\" 황 금이\"
\" 어머니! 물을 먹어야 그걸 삼킬 수 있어요?
목화가 목화꽃을 피을 때 수분을 빨아 올리듯이 나는 그렇게 빨대를 꽃은 물통을 드리니 황금이 할머니는 당신 손으로 먹엇던 기저귀솜을 모두 끄내신다.
\" 아 해보세요? 어디 다 잡수셨어요? 하나도 없네? 헤헤\"
내가 웃으니 따라서 발그레하게 눈빛이 동그래지는 데.
어쩌다가 이렇게 오래토록 살다가 나와 마주한 시간까지 도착했을까.
이토록 선한 눈매를 가지고 험난한 세월을 비비고 살았을 아주 오래된 고목나무처럼
또렷하게 내 눈안에 비춰지는 데.
\" 누가 내 밥을 다아 쳐먹었어? 지덜 밥그릇이나 비울 것이지 뭐 잘났다구 남의 밥은 훔쳐 먹냐구?\"
때만 되면 용케도 당신이 직접 밥을 하러 간다구 보행기를 밀고 간호사실에 주저 앉아 군불을 때워라 .
더운물 데워라. 집 나간 여편네 찾지말고 바람난 서방 기달리지 마라등등..
잘 들으면 말이 될 것 같은디..다시 새겨 들으면 그려 혹시 그게 맞는 말인지 몰라 한 적도 간혹 있었다.
오늘은 안개가 하얗게 다른 날보다 더 환하게 진하게 끼었다.
그런 날은 아무도 짐을 싸거나 막차가 언제가냐고 묻는 할머니도 잇몸만 남아 움푹하게 패여 웃는 할머니도 늦게까지 늦잠을 주무신다. 마치 꿈 속에서 안개낀 고향땅을 실컷 보고 막차로 돌아오는 아들을 만나고 이불을 두툼하게 덮어 뜨듯한 세상을 꿈꾸시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