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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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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엄마


BY 그림이 2008-09-14

엄마, 엄마,

 

암수술을 받은 후 운동하는 것을 일상생활에서 빼놓지를 마르라는 의사선생님의 권고를 받고 거의 매일 가벼운 걷기 운동을 한다. 평소에 운동을 잘 하지 않던 나는 생명과 관계 된다는 경고를 받고는 처음엔 억지로 지금은 생활의 일부라 생각하고 열심히 다닌다.

 

운동 장소는 담벼락을 같이한 y대학교정이다. 야산이 대학 울타리 안에 있어 산에 가기도 하고 대학교정을 거닐기도 한다. 4~50분 정도 운동량을 정해 걷는 시간은 기도하고 자연과 대화하는 명상의 시간이다. 산 입구에는 연못이 있어 연꽃과 먹이를 찾아 바쁘게 자맥질하는 청둥오리와도 대화 한다. 다람쥐보다 청설모가 자리를 차지한 야산에는 익지도 않은 푸릇한 도토리를 갉아먹은 껍데기와 실가지가 길에 떨어져 있다. 시간을 때우기 위한 나는 때로는 일정한 넓이에 껍질들을 세어 보기도 한다. 운동장소로는 요샛말로 쨩이다.

 

아들의 직장이 대학교정 안에 있기에 거의 대부분을 아들의 직장을 지나간다. 간혹 직원들이 베란다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담소하는 모습도 보인다. 그 큰 건물 안에 아들이 근무하는 방은 어딘지 모르지만 자연히 건물 쪽을 쳐다보게 된다. 오늘도 묵주를 굴리면서 학교를 향해 발길을 옮겼다. 9월의 볕이 따갑긴 하지만 가을의 문턱인 듯 바람이 일렁거려 생각이 깊어질 때 어디선가 엄마, 엄마, 고함 소리가 들린다. 예사로이 들었다. 더 큰 소리로 어무이 힐끗 쳐다보았다. 베란다에서 직원 서넛과 같이한 아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손을 흔들었다. 옆에 있는 직원들도 웃으면서 같이 손을 흔들어 준다.

 

알 수 없는 눈물이 확 쏟아진다. 엄마를 부르기 위해 옆에 동료도 생각지 않고 그 큰 소리로 엄마를 찾는 내 아들, 지나간 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지금 쯤이다. 큰 아들이 다섯 살 작은 아들이 세 살, 추석을 쇠러간 돌봐주던 아이가 돌아오지 않았다. 할 수없이 밥상에 밥과 간식만 두고 출근했다. 새들어 사는 사람도 공장에 나가 이웃에 부탁은 했지만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염려하던 대로 퇴근을 하니 작은 아이가 머리에 붕대를 하고 있었다. 돌을 던진 아이 어머니가 병원을 다녀와 아이를 업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시킨 것도 아니고 괜찮다고 했지만 서러워서 혼자 밤새도록 울었다. 남편 근무지는 울릉도라 혼자 이런저런 서러움에 울던 일이 이 시간에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학교 입학 후는 아예 저들끼리 스스로 해결하도록 버려둔 내 아들들이다. 직장엔 충실했지만 엄마로서는 빵점 이었다. 집에서나 직장에서 항상 일만 해온 엄마, 아이들을 데리고 추억이 될 만한 나드리를 한 적도 별로 없다.

 

언젠가 아들들을 불러 얘기 한 적이 있다. 나는 다른 엄마처럼 내가 너들을 어떻게 키웠는데 그런 소리 할 자격은 없다. 너희들이 알아서 컸으니까? 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 엄마, 엄마가 고생 한 거 저희들이 다 알아요. 보고 컸잖아요. 지난 봄 큰 아들 박사 수여식 그때도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박사모를 씌워 사진을 찍자는 나는 한사코 반대했다. 대학 때 부터 장학금, 강사, 아들이 노력한 댓가지 부모가 크게 밀어 준 게 없기 때문이다. 먼저 결혼한 작은 아이는 직장을 다니면서 석사과정을 했다. 빠듯한 봉급에 며느리도 공부방을 하면서 힘을 많이 실어주었다. 스스로 일어난 아이들 그런 아들이 엄마를 목이 터져라 불러댄다.

 

 

행복한 눈물이다. 어떠한 치유방법이 이 보다 더 클까? 사람의 한평생도 너무 잠깐이다. 일주일 먹을 량을 약 케에스에 담으면서 세월이 흐르면 당겨져야 할 삶의 마감을 약에 힘을 빌려 널려 달라는 몸부림이다. 예전에 동료들과 짧게 굵게 살고 싶다고 했던 욕망은 가늘고 길게 살기로 둔갑하고 있다. 장기 복용하여야 하는 항암약과 운동이 생명의 연장 줄이라 생각하니 하느님을 믿는 내가 부끄러워진다.

 

다섯 살짜리 손녀는 수술 후 집에만 오면 누워있는 나의 배를 열어 본다. 할머니 왜 배를 째서 이렇게 피가 묻었느냐고 할머니가 음식을 골고루 먹지 않아 암이 생겼다. 너도 골고루 먹으라고 하니 밥상에 앉아 죽만 먹는 나를 할머니 골고루 잡수세요. 해 한바탕 웃었다.

 

세 살적 내 아들 일을 기억하면서 5살짜리 손녀와 논다. 아비에게 못 다한 정을 손녀에게 주고 싶다. 어린이집을 다녀온 후 손녀는 전화를 건다. 며느리가 할머니가 편찮으신데 가지 말라는 소리도 아랑곳 않는다. 할머니가 보고 싶어요. 할머니 현관 문 앞에서 기다리세요. 라고 하고는 백 미터 거리를 둔 앞 동에서 쫓아오는 모습이 나비같이 나풀거린다. 현관 번호판에 손이 닿지 않는 손녀가 기다리지 않게 얼른 에레베이트를 타고 내려간다. 아들아! 얼른 나아서 너에게 못 다한 정을 너의 딸에게 해 주마 그리고 너 가 엄마를 부르는 이 목소리는 나의 가슴에 영원히 간직할게 고맙다 아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