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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거리두기


BY 세번다 2025-07-19

새벽녘, 번개가 하늘을 가르고 천둥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계속해서 번쩍이는 하늘 아래, 요란한 소리에 잠을 설치고 난 뒤, 창밖엔 거세게 내리는 비 소리에 더 잠을 청할수가 없었다.
서울은 그래도 덜했지만, 뉴스 속 광주와 충남의 피해는 참담했다.
요즘은 국지성 호우라는 이름으로, 하늘이 제멋대로 휘젓는듯 하는일이 잦다.
이제는 일기예보가 하루의 안전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시대다.

얼마전 내가 겪은 여의도에 내렸던 폭우, 불과 두 시간 사이에 지하차도가 통제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 광경을 보며 다시 한 번 다짐했다.
비가 많이 오면, 특히 운전 중에는 지하차도를 피해야 한다는 당연하지만 절실한 교훈.
2년 전 오송의 지하차도사고도, 어쩌면 '설마'라는 마음이 부른 참사였을 것이다.

시간당 30mm의 비면 큰 우산을 써도 겨우 발을 옮길 수 있다.
70mm 이상이면 우산도 무용지물, 호우경보의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
하지만 이제는 다행히도, 비가 와도 대부분 집 안에서 지낼 수 있는 생활이다
출퇴근의 의무가 있던 시절에 비하면 사정은 나아졌지만, 그 시절 겪었던 불편과 긴장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있다.

비 이야기로 시작된 생각은 어느새 마음속 오래된  후회가 떠오른다

요즘은 시댁이든 친정이든, 전화 한 통 하는 일도 쉽지 않다.
감정의 거리두기를 하다보니 그리 되었다

그래도 그 복날이 뭔지 초복을 맞아 시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렸다.
다행히 전화 매너는 좋으신 분이지만, 늘 마음 한구석은 무겁다.
경제적인 뒷받침이 충분했다면, 조금은 덜 복잡했을지도 모를 관계 이다.

시어머니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막내딸이 책임감을 지고  잘하면 좋을터인데 이제는 내가 관여할 형편도 아니여서 그저 가만이 지켜보는 중이다.
부모의 재산은 제일 마지마까지 효도를 잘할 자식에게 주던지 아님 끝까지 지키고 본인이 지휘하면서 사는것이 최선이다

왜 재산은 챙겨갈 생각하면서 효도는 엔분의 일도 아닌 자신보다 윗형제들이 알아서 더 잘해주길 바랄까

어릴때부터 받기만 한 자식은 그생각을 못하게 되는것인가보다

더군다나 동복형제도 아닌데도 재산문제는 핏줄논리로 가면서 의무와 부양은 그게 아니여서 ㅎㅎ

하지만 시가는 남편의 문제지 내문제는 아니라고 난 이미 마음을 비었다

하지만 친정은 핏줄이라서 그런가 아직도 잘 안된다.
남동생은 그나마 큰일엔 나서주고 올케도 잘하고 있지만 나의 바람은 제일 예뻐하고 엄마를 설득할수 있는 남동생이  엄마를 잘 설득해서, 당신 인생을 당신답게 살도록 도와주었으면 했던 바람을 아직도 못버리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그 기대도 내려놓을려고 한다

아니 내려놓아야 한다.
여동생은, 이제 완전한 포기다.
사람이 나이 들수록 더 좁아지는 그릇 앞에선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서는 안된다는것을 느끼는 중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내가 가장 걱정하는일 저러다 엄마가 완전 밥도 못하고 기력을 못할정도 되면 두분다  요양원에 보내야 할 날이 오더라도, 나는 빠지겠다고. 생각한다

요양원 보내기싫은 자식이 들어와서 살으라고할것이다

남동생은 감정적으로 죽어도 요양원은 못보낸다고 그러고 있다

ㅎㅎ

그런데 만일 그러면 들어와서 자신의 누나도 보살펴주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다고 여기는것인지 그냥 답답할 뿐이다

난엄마 말되로 출가외인의 자리에서 그저 밀려난 듯, 시키는 대로 살겠다고. 다짐 또 다짐 중이다
나는, 이만하면 정말 할 만큼 했다고,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뇐다.

외삼촌에게도 부탁해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조심스러운 거리감뿐이었다.
그 마음을 이해한다. 

삼촌도 누나 설득이 쉽지 않고 그리고 관여안하고 싶었을것이다

그래서  삼촌에게 ‘미안합니다’라는 말과 함께, 너무 신경쓰지 마시라고 안부전화하면서 마음을 접었다


나이 들면 뇌가 굳는다는 말을 요즘 자주 듣는다.
정말 그렇다. 생각의 유연성이 사라지고, 타인의 손길이 오히려 부담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난 출가외인이라도 내치면서  왜 집 고칠 일에는 남편을 찾는 걸까.
나는 출가외인이라 오지 말라면서, 사위는 더 남인데 왜 고생시키는가.
얼마 전에도 남편은 뭔가를 고쳐주고 와서 허리아프다고 계속 병원을 지금도 들락거리는중이다

아무래도 허리 협착증이 온모양이다

맨날 목안좋다고 수시로 정형외과가고 한의원가고 물리치료 받고 하는 사람인데

여름이면 장이 안좋아서 찬물 절대 안마시고 음식도 얼마나 가려먹는지 내가 뭘해주는것이 스트레스 받을 정도다.
이제는 그 아프다는 소리조차 듣기 싫다.
위로받고 싶어서 하는 말이겠지만, 정작 내 마음엔 여유가 없다.
나도 즐거워서 지내는것은 아니다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해서 살고자 하는 삶일뿐읻


요즘 자주 드는 후회 하나.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결혼은 안 했을 거란 생각이다.
‘노처녀는 불효’라는 말에 밀려 한 결혼이었고, 그로 인해 감당해야 했던 많은 것들이 아직도 진행중인것이다

왜 아버지는 딸을 수녀로 만들고 싶었음 나보고 가라고 하지 왜 첫딸은 결혼해서 잘살게 하고 싶고

둘째딸은 등떠밀어 수녀원으로 보냈을까

결혼생활보다 더힘든것이 수도자의 생활인데 정말 그릇이 안되는애를 그렇게몰랐을까

결국 여동생 저리 만든것도 부모의 책임이 절반은 있다

이후 직장생활하고 할때 내보내서 독립적으로 살게 했어야 했는데 같이 살것이면 생활비 제대로 받고  책임감을 지어주었음 아마도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그래서 내가 힘들어지더라도 분가시키라고 종용도했었지만 엄마는 결혼안해서 나가서 살면 다 나쁜 남자만 만나는것으로 생각을 한것이다

자신이 죽을때 데려갈 자식도 아니건만 왜그리 어리석었을까

아마도 자신이 죽음 남동생이 누나 책임져줄것으로 여겼나보다

병원에서 그부탁을 올케한테 하는것을 내가 들어서 경악을 했었다

올케하고는견원지간보다 더한 사이인데 자격지심에 본인이 잘못하는것은 모르고 손위 올케 무시한다고그리 싫어하는것이다

노부모랑 같이살면서 설거지 해주고 심부름했다고 용돈 받길 원했던 여동생

정말 십원자리하나 생활비 안내고 부모 생일에도 작은 케잌 사는것이 선물의 다였다

그렇게해서 나보다 더 좋은집 가지고 있고 통장에 돈도 빵빵하지만 그 삶이 행복하지도않을것이다

하기는 돈이 아예 없음 더 안좋기는 하겠다


오늘도 거라두기 하는것 말했다고 또 삼천포로 빠졌다
이제 아컴에 이런 푸념조차 한마디도 안할때가 진짜 마음의 거리두기 성공일것이다
엄마의 삶 여동생의 삶 관여할 생각말고 그저 내가 해줄 도울일만 있음 도와주고하는것이 되야 하는데
마음의 거리두기 하려니 마음이 가야 일할맘도 나서고 안부도 묻고싶은 마음이 드는것이니 복잡한 상황이기는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