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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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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


BY 그대향기 2008-09-13

 

 

엄마.

그냥 가만히 부르기만 해도 가슴에 뜨거운 것이 훅...하고 올라오는 이름.

엄만 참 키도 작지만 손발도 꼭 전족한 중국여인처럼 자그만하고 예쁘다.

그 작고 앙증스럽기까지한 손발로 우리 다섯 남매들을 안 굶기고 안 벗게 하시려고

안 해본 고생 없으시다시피 갖은 고생을 다 하셨다.

부잣집에서 귀한 것 없이 부유하게 사시다가 외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남에게 빚 줬던 것 하나도 못 받고 어렵게 되었지만 부자는 망해도 삼년 먹을 건 있다고 하던가....

엄마가 우리 아버지하고 결혼 할 당시에 외할머니께서 이불이며 속고쟁이에 지전을 넣고

꿰매 주시더란다.

급할 때 요긴하게 쓰인다며....

아버지의 본가도 그럭저럭 살만한 재력은 있었던가 본데 아버지의 군 기피문제로

엄마는 아버지를 따라서 갓난뱅이를 안고 만주까지 도망을 가셨더란다.

만주피난길에 위로 두 오빠들을 잃는 어린 새댁은  돈이 있어도 병원에도 한번 못 데려가 보고

두 아들을 잃는 어이없는 슬픔에 이미 속 병이 생기셨단다.

어린나이(18 세에 결혼) 에 뭘 아냐며 우리 친 할머니는 구박하시고

아버지도 할머니 말은 거역 안하고 그냥 두는 바람에 알토란 같은 두 아들만 먼저 보냈단다.

 

만주까지 도망을 갔다가 비단 이불이며 지전 넣은 속고쟁이들을 때놈들한테 다 빼앗기고

달랑 빈 몸으로 돌아왔고 아버지는 일본까지 도망을 가셨다니...참.

나중엔 결국 보국댄가 뭔가하는 군인으로 가셨다던데 왜 그리 어리석은 일을....

어릴 때 경주의 우리집엔 봉창이 뚫린 방이 있었다.

안방을 건너서 뒤로 난 방인데 그 방의 창은 밖으로 열게 되어 있었다.

아버지의 개구멍.

안방에 계시다가 대문에서 아버지를 찾는 사람의 소리가 들리면 후다닥..봉창을 열고 줄행랑.

아버지의 비밀통로는 나중에 내 방이 된 그 방의 시원한 창이 되어 주긴 했지만

엄마의 고생은 말로는 다 할 수 없을 지경.

부잣집(외할아버지가 큰 상선을 갖고 나무 무역을 하셨다고 했다)에서 고생없이 커다가

시집 온 후로 경제력 없고 도망만 다니던 남편따라 안 가본 구석이 없고 안 해 본 고생이 없던 엄마.

 

결국에는 군에 가실껄 그 피난 다 다니시다가 청춘은 가고 남의 일 봐 주시다가 사고로

왼쪽 눈을 잃으시는 대형사고까지 겹쳐진 아버지는 거의 폐인.

기족들 입 살리는 일에는 무능력으로 일관하고 돈 받으면 다 술값 외상을 갚는데 탕진.

저녁 늦도록 아버지가 집에 안 돌아오시면 엄마는 어느어느 술집에 가서 아버지 찾아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죽도록 싫었지만 아버지를 찾아가면 술집 옆의 구멍가게에서 과자를 사 주셨기에 그 유혹엔 약했었다.

싸구려 안주와 막걸리가 발효된 그 냄새는 정말 역겨웠다.

아버지는 잃은게 눈이 아니라 아버지의 모든 삶이었다.

그 날도 엄마는 집안 일이나 좀 거들어 주고 나가지 말라고 했다는데 아버지는 기어히 가셨고

눈을 잃는 중상을 입었지만 한푼의 위자료도 치료비도 창구 못하게 하는 고집을 내 세우는 통에

엄마가 빈 방에 장사하는 사람들 재워주고 쌀이든 잡곡이든 과일을 받아 되팔아서

제법 큰 뭉칫돈을 이자 주고 있었던걸 다 없애는 기가차는 일을 하셨단다.

엄만 처음부터 대구 동산병원엘 가자고 했고 아버지는 \"여자가 뭘 안다꼬!!!\".....

일차 수술 실패, 또 큰 병원 갑시다 시끄럽다...이차수술도 실패. 지금이라도 갑시다. 시쓰럽다 안카나 !!!

삼차수술 땐 이미 시신경이 썩어버린 후라 안구를 뺄 수 밖에 없었단다.

아버지의 쓸데없는 고집 때문에 자신의 나머지 삶도 비참해 졌다.

연이은 수술의 실패로 돈은 돈데로 날아가고 극도로 예민해 진 아버지의 좌절과 표효.

나머지 한 쪽 눈의 섬뜩했던 눈빛.

세상을 향한 원망과 자신을 향한 번민과 자책.

그럴수록 더 엄마는 강해질 수 밖에 없는 강철여인.

남편을 믿은게 아니고 엄마는 자식들을 의지했고 엄마 자신을 믿었다.

그 의지했던 자식들이 과연 엄마의 희생에 보답은 하고 사는지...

 

아버지의 폭언과 술주정....

사춘기 때 정말 싫었다.

가족을 책임 안지는 아버지의 무능력과 엄마의 끝없는 희생.

엄마는 키가 나보다 머리 하나 정도는 없을 정도로 아담하시다.

그 키로 그 작은 덩치로 다섯남매 공부시키고 배 안 곯게 하려고 얼마나 악착같이 일하셨는지....

엄마는 내가 막내인게 늘 안타깝다고 했다.

맏이거나 중간에라도 낳았더라면 오빠들이 속 썩일 때 내가 대신 야단이라도 좀 쳐 주길 바랬는데

엄마는 참 외롭게 힘든 삶을 이끌고 오셨다.

그런 중에서도 엄마의 악착은 땅을 사 모으게 했고 제법 중간의 생활을 하게 했지만

귀 얇은 둘째오빠의 허황된 하루 꿈으로 다 날아간 금싸라기 땅. 땅. 땅.

하천에 재방뚝 쌓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

소나무껍질 벗겨서 부엌에 불을 떼는 일이 얼마나 힘든가...

하천부지에 호박을 심어 그 비탈진 뚝에서 호박을 안아 올리고 리어카에 실어 시장에 내다 팔던 엄마.

그러구러 사 모은 땅을 하루아침에 훌러덩~~

엄마는 속이 없다 아예.

위로 잃은 두 아들 때문에 타들어 갔고

아버지의 잃은 눈 때문에 겪은 아픔과 고생으로 타 들어갔고

날아간 땅 때문에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가슴마져 다 타 버렸다.

 

엄마는, 엄마는 늘 내가 보고싶다고 했다.

가난했어도 밝게 웃고 공부도 곧잘 해 줬고 학생회장도 두번이나 하고

운동도 잘해서 무슨무슨 대회에 나가 상도 잘 타 줘서 엄마가 우쭐했고

웅변대회가 있는 날에는 맨 앞자리에 새카맣게 거을린 작은 얼굴로 날 자랑스런 눈으로 봐 주시던 엄마.

그 엄마가 날 기다려도 난 자주 가질 못한다.

내 새끼들, 내 남편 살리느라 날 낳아주고 끔찍히도 사랑해 주신 엄마를 기다리게만 한다.

엄마는 엄마가 한 고생이 진저리가 나도록 싫다시며 난 곱게 키우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무심함으로 무산되는

처참함을 보았어도 늘 나는 강하게 키우고 싶어하셨다.

그래서인지 난 아주 강하다.

여자이기 전에 난 엄마의 딸로 강한 정신력을 이어 받았다.

엄마의 강한 생명력과 지칠 줄 모르는 인내심, 그리고 나를 지키는 열정.

엄마는 낭만도 많고 꽃을 아주 많이 사랑하신다.

어릴 때 가난했어도 우물가에나 수돗가에는 늘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어디서 구해다 심으셨는지 크고 작은 꽃들이 참 많았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일까?

나도 꽃이 무조건 좋다.

꽃만 보면 안 먹어도 배가 든~든 하다.

 

엄마는 올해 여든 다섯.

아버지 가신지는 스물 세 해.

아버지 땜에 고생도 참 많이 하셨지만 아버지가 가시고 많이도 우셨다.

마지막 숨을 고르시면서도 미안하단 말 한마디 안 하시던 아버지.

자존심만 목숨처럼 지키시다 가신 아버지.

내가 객지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 손수 편지도 자주 보내주시던 아버지.

왜 그리도 엄마한테 못할 일을 시키시고도 미안했다는 그 한마디도 못하시고 가셨을까?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차마 못다한 한마디일까?

 

엄마는 내가 경주에 간다고 전화라도 하면 하루 온 종일을 골목길에서 날 기다리신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래서 아예 전화도 안 하고 불시에 들이 닥친다.

안그러면 시장도 먼데 관절염 있는 다리를 절뚝거리시며 장을 봐 오시고 반찬 준비하느라 너무 분주하시다.

그런 엄마를 알기에 이젠 그냥 아무 말 없이  가서 \"엄마~~\" 뒤에서 부르면

\"이게 누고..이게 누구고?    니가 어인일고? 자고 가나?...\"

엄마는 나만 가면 자고 가냐고 묻는다.

보고팠던 딸을 곁에서 만지며 목소리 듣고 자고 싶어서 들어서면 제일먼저 자고 가나......묻는다.

엄마....

낼 모레 가서 자고 올께.

엄마 옆에서 손 꼬옥 잡고 자고 올께.

엄마의 자랑이었던 하나 딸내미 사랑많이 받고 잘 살아.

알지??

이서방 좋은거는 전국이 다 알아.ㅎㅎㅎ

용돈도 난 적게 넣자고 해도 이서방이 자꾸 많이 넣어.

얼마나 더 드릴거냐며.....

엄만 그 돈으로 병원에 다 갖다바치고....

그래도 딸이 용돈 제일 자주 많이 준다고 자랑~자랑하고 다니신다며?

그러지마셔...

같이 모시는 올케 삐져요.ㅎㅎㅎ

그 올케 성질은 팩팩거려도 착한 구석도 많잖아.

요즘 별 다른 사람 없어.

그만하면 잘 하는 거래~`

나도 엄마땜에 올케한테 하고 싶은 말 태산 같아도 꾹~~꾹 ~다 참느라 힘들어.

엄마가 볼모잖아.ㅎㅎㅎ

우리 가면 또 고방에서(창고) 오만가지 다 내 놓을거지?

며칠만 기다리셔~~

곧 가요.

엄마.

오래 건강하게만 잘 계셔.

큰 외손녀 우리 딸 먼 나라가서 돈 많이 벌면 엄마 근사한 거 뭐 해 드릴께.

달이 점점 차 오르네~~

오늘 밤도 잘 주무시고..엄마 .

난 엄마가 키 작고 세련 안된 할매라도 많이 사랑해.

세상에서 젤로 자랑스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