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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심에 감동하며


BY 박 진 2007-09-18

동심에 감동하며

박영애

“선생님, 선생님보다 논술 더 잘하는 사람 있어요?”

호기심이 많아 평소에도 질문이 많은 채연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으응 논술?”

갑작스런 질문에 선뜻 마땅한 답을 찾지 못하고 얼버무리는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아이. 빨리 대답을 해야 된다는 의무감은 앞서는데 머리 속은 무척 느리게 돌아가고 있다. 나의 대답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는 아이를 향해

“선생님보다 논술 잘하는 사람 많지.”

하고 말하니 아이는 의외라는 듯 되물어 왔다.

“정말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다. 채연이의 얼굴에는 낭패감이 역력했다. 자신을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이 이 분야에서 최고일 것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나보다. 아이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나를 믿어주고 있던 아이의 마음을 알기에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들의 이런 마음이 나를 늘 즐겁게 한다.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떠보고 계산하지 않는다.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표정과 말에 베어 나온다. 그런 순수한 마음이 좋아 아이들을 가르친 지도 어느덧 7년이 넘었다.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이다.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쌓일 때도 되었지만 나는 늘 부족한 선생님인 것 같아 조바심이 난다.

아이들과 만나는 시간이면 참으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게 된다. 어린 아이들의 말이지만 나는 그 아이들의 말을 어른들의 말과 다름없이 진지하게 들어주고 물음에 대답해준다. 아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얻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얻게 된다. 사실 가르친다고 하지만 그들의 순수하고 창의적인 생각에서 배울 점도 많다.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어른들의 머리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그 무엇인가를 아이들은 가지고 있다. 수업 중에 만나게 되는 아이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접할 때면 마음속으로 ‘맞아, 바로 저거야!’ 하며 신선한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지난 가을 쯤으로 기억된다. 동시 지도를 하는 시간이어서 아이들에게 허수아비, 가을, 친구 등의 글제를 주어 글을 쓰게 했다. 그중 유난히 책읽기를 좋아하는 동욱이가 ‘허수아비’라는 글제를 가지고 동시를 쓰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무언가 쓰고 지우고 또 쓰고 지우기를 여러 번 얼굴은 발갛게 상기 되고 손이 까맣게 된 아이.

“선생님, 이것 좀 봐주세요.”

하며 내미는 공책에는 가을이 출렁이고 있었다. 동욱이는 시를 통해 눈, 코, 입이 없는 허수아비를 노래하고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표현에 나는 참으로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동욱이는 그렇게 사물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나는 그런 동욱이의 기발한 발상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순간 동욱이의 표정은 더없이 흐믓해 보였다. 그런 날은 나도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 내가 하는 일에 뿌듯함을 느끼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이들은 생김새가 다르듯 성격 또한 다양하다. 침착하고 말 수 없는 아이, 둥글둥글 한국형 얼굴에 성격까지 재미있고 우스운 말을 잘하는 아이, 또래 아이들에 비해 훨씬 어른스럽고 똑 부러지는 성격을 가진 아이. 말을 많을 잘하고 친근감이 드는 아이. 모두모두 사랑스럽다. 또한 그날 수업 내용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기도 한다.

4학년 남자아이들의 수업이 있던 날이다. 아이에게 ‘별명’에 대해 글쓰기를 시켰더니 ‘황소’라고 써놓아 배꼽을 쥐게 했다. 한번은 여자아이들의 수업시간이었는데 엄마에게 서운한 마음을 담은 글을 쓰면서 눈물을 보여 옆에서 지켜보는 나까지 코 끝이 찡해졌다. 이렇게 아이들의 글 속에는 아주 솔직 담백한 그들의 세계가 있었다. 이런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참으로 보람 있는 일이다. 가끔은 내 자신도 제대로 경영하지 못하면서 무슨 아이들을 가르치나 싶은 회의감이 밀려오기도 하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즐거웠고 시간도 잘 흘러갔다.

가르친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싹에 물을 주고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일이다.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생각주머니에 창의적이고 유익한 생각들을 차곡차곡 채워주는 일. 상당히 조심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나의 말 한 마디로 아이들이 받을 영향을 생각하면 항상 긴장의 끈을 늦출 수가 없다. 내가 선택한 일들 중에서 제일 가장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고 가장 부담감이 많은 일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부담감은 많을수록 좋다. 그래야 내가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준비하게 될 것이므로.

요즘 아이들은 내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과는 너무도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워 부족함 없이 자라는 아이들. 좋은 음식을 먹은 덕인지 다들 똑똑하고 잘생겼다. 아이들을 가르치기에 앞서 아이들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들과 많은 대화를 한다. 아이들과의 대화 속에서 요즘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으며 무엇을 하고 놀고 어떤 말과 노래, 어떤 문화가 유행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그런 것들은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때때로 대화를 나눌 때면 아이들은 저희들의 문화에 대해 관심을 보이는 나를 보며 어떻게 그런 것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그럴 때마다 나는 당당하게 대답한다. 선생님이니까. 선생님은 많이 알아야 하니까.

이렇게 늘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보니 마음이 젊어지는 느낌이다. 아이들과 지낸 세월의 두께만큼 내 마음도 맑아졌다는 생각이다. 많은 시간들을 동심에 젖어 살다보면 시간가는 것을 감지하지 못할 때가 있다. 처음 가르쳤던 초등학생 아이들이 이제는 청소년이 되어 가끔씩 길거리에서 마주칠 때가 있다. 그들이 먼저 인사를 건네 오지 않았다면 못 알아 봤을 정도로 아이들의 모습은 많이 변해 있었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것도 신선한 충격이다. 더운 여름날 빳빳하게 풀 먹인 옷을 막 입었을 때의 그 뽀송뽀송한 느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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