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하는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폴짝 뛰어 오르기만 해도 잡힐 것 같은 뭉게구름이 강물 위에
낙엽 떠내려가듯 흘러가고 있었다.
폭신하게 생긴 그것에 올라서 편안히 뒹굴며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른이 되면 동심의 상상을 잃게 된다던데, 너무나 맑고 깨끗한 심신을
지녔는지, 아니면 철이 덜 들었는지, 그도 아니면 망령인지...
구름 위로 올라가고 싶다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어릴 때, 구름을 보면 그 속 어딘가에 날개옷을 입고 있는 ‘선녀’가
숨어서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목이 아프도록 하늘을 바란 본 적이 종종 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아침 출근길에 mp3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자전거로 거리를 달리면
참으로 상쾌한 기분이 들곤 한다.
그렇다고 어떠한 상황에서 그런 기분을 만끽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은 사라졌던 감수성이 조금 꿈틀거릴 수 있던 날인 것 같다.
‘출퇴근’이란 것을 하면서 보게 되는 거리의 풍경이 전과는 다르게
느껴진다. (2007년 8월 28일)
(어제에 이어서 쓰는 글)
어제와 다르게 오늘은 아침부터 잔뜩 흐린 구름으로 파랗게 맑은
하늘을 볼 수 없었다.
어제 못 다 쓴 아침 풍경을 이어 보고 싶다.
출근하며 바라본 어제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클로즈업 되어보였다.
밝은 얼굴로 활기차게 각자의 직장을 찾아서 가는 사람들의
손에는 메트로 신문부터 서류가방에 각양각색의 가방들이 들려있었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은 인종도 다양했다.
흑인부터 백인에 이르기까지.
그 인파들 속을 가로질러 골목길로 접어드니 유치원이나 초등학교를
가기 위해 나서는 아이들과 몇몇 보호자들이 보였다.
아침부터 어린 아이의 우렁찬 울음소리가 골목을 메아리 쳤다.
무슨 일인가 모두들 그 쪽으로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5~6살 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가는 모습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의 모습처럼 처절하게(?) 버티며 울고불고
난리도 아니었다.
엄마의 인상을 보니 마음 좋게 생겼던데,
아이가 엄마 손에 끌려가며 한다는 말이,
“ 물 먹고 갈래~~~앙~~~”
하는 거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물 먹고 싶다는 아이의 말을 무시하고 끌고 가는 엄마를 계모로나 보지
않았을까? 콩쥐 팥쥐에 나오는, 그도 아니면 신데렐라나 백설 공주에 나오는
못된 계모로.
그 엄마는 아침부터 얼마나 진땀이 날까, 하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웃고 있어도 웃는 것이 아닐 그 엄마의 마음이 나는 십분 이해가 되었다.
아빈이가 어릴 때였던 것 같다.
머리 감기를 제일로 싫어하는 녀석을 3살까지도 세면대에서
무릎 위로 녀석을 받쳐 눕혀서 감기다가 힘에 부쳐, 어느 순간부터
욕조에 엎드리게 해서 샤워기로 감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의 머리 감기 전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길고도 치열하게
진행됐던 것 같다.
나름대로 얼굴 쪽으로 물이 가지 않게 감겼는데도
녀석의 반항이 어찌나 거센지,
“사람 살려!!!, 엄마 살려 주세요~~~!”
라며 머리 감는 내내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날...
시장을 가느라 밖으로 나선 나에게 이웃에 살던 아줌마 한분이 말씀
하시길,
“오늘 무슨 일 있었어? 세상에 애 잡는 줄 알았다...”
아...그 날의 쪽 팔림...
아침에 본 애기 엄마의 마음이 그때의 내 마음과 같지 않았을까?
목마르다는 아이에게 물 한 모금 안 먹이며 끌고 가는 것으로 보이는 그 상황을
속 깊이 들여다보면...분명, 아이가 어린이 집에 가지 않으려 떼쓰며 핑계 좋게
물을 빌미로 땡깡을 놓는 것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남의 일에 뭘 그리 깊이 들어가려고 하는 것인지...
그제부터 나는 병든 닭 모양으로 꾸벅꾸벅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지난 토요일에 방학 때 했어야 하는 체육숙제를 하느라고 잠실야구경기장에
다녀왔다.
야구의 ‘야’자도 모르는 내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가는데
준비물은 또 얼마나 많은지, 꽁꽁 얼린 보리차 물, 군것질 거리들 이것저것...
양산, 타올 등이 담긴 묵직한 가방을 메고 지하철을 3번이나 갈아타고 도착한 잠실. 나의 몰골은 시골에서 막 상경한 아낙으로 보였을 것이다.
오래 걸어도 발이 편한 샌들에 검은 색 조끼에 검은 색 반바지, 머리는 아무렇게나
틀어 올려서 핀으로 꼽고 선캡 모자를 꾹 눌러 쓰고 세련된 젊은이들
사이를 누비고 다닐 정도로 낯이 두꺼운 아줌마로...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가고 보니, 그 날이 ‘두산 베어스 데이’ 날이란다.
두산 ; 현대의 게임이었는데
나는 야구 경기보다 중간중간 이어졌던 이벤트에만 흥미가 일었다.
공개 프로 포즈부터, 베스트 포즈 상, ‘안타’나 ‘파울’로 날아오는 공받기
등등...
5시에 시작하는 게임을 성질도 급한 나는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도착하고 말았다. 초행길이라 헤맬 것을 걱정한 탓도 있었지만
일러도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그날따라 햇볕은 어찌나 따갑게 내리 쬐던지.
선수들이 연습중인 것부터 구경해보자며 배정받은 자석으로 들어
서고 보니...계란을 후라이로 만들고도 남을 만큼 뜨거운 태양의 열기가 이글
거리고 있었다.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실내로 들어와서는 물을 찾는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비롯한 얼음이 들어간 콜라를 하나씩 안기고,
원망어린 아이들의 눈길을 피하느라고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
아들놈이 너무 빨리 가는 것 같다며 일주일동안 열심히 공부를 했으니까
토요일만큼은 컴퓨터 한 시간만 하게 해달라고 조르는 것을
묵인하고 촉박하게 가는 것보다 느긋하게 출발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며
고집껏 데리고 갔던 것이 아이들을 생고생 시키게 될 줄이야.
그날 흘린 땀의 양이 얼마나 많은지...
해가 저물어도 더위는 쉬이 가시지 않았다.
5시에 시작된 게임은 밤 8시가 훌쩍 넘어서야 끝이 났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으로 집에 오자마자 일년에 몇 번 사용하지 않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돌렸다.
그 다음 날인 일요일,
오른쪽 머리가 깨질 듯 아프더니 오른쪽 얼굴의 느낌이 기분 나쁠 정도로
좋지 않았다.
뱃속은 계속해서 뒤틀리고 나중에는 오른쪽 팔까지 저려오는 것이 아닌지.
일요일에 응급실로 실려 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나이 37살에 중풍을 앓는 사람으로 세간(?)에 오르내릴 수도 없었다.
매일 술이 떡이 되서 들어오는 남편에게 아이들을 맺길 수나 있을까?
내가 누워서 꼼짝 않고 말도 못하고 있으면서 집안 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중풍이 따따불(?)로 오지나 않을지. 그건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닌 것을...
별별의 별 소설을 쓰며 눈물을 찔끔거리니 녀석들도 난리가 났다.
제 아빠는 일 좀 한답시고 새벽별 보기 운동을 시작했는지, 만취해서
들어왔다 체 술 냄새가 가시지 않은 상태에서 출근을 하곤 했다.
(이러다가 조만간에 63빌딩 하나쯤 장만하게 되는 것은 아닐지...
밑에 돈이 숨을 못 쉴 정도로 수북하게 쌓일 정도로 부자가 되면
그 돈을 다 어떻게 보관해야 하나... 걱정하나 더 생겼다.)
(8월29일)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이어지는 글>
그날 밤,
역시나 늦어지는 제 아빠에게 불만이 생긴 아이들이
전화를 해서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아빠, 엄마 병원에 가야 돼요. 앙앙앙...엄마 어떡해요.
엄마 쓰러졌다구요. 밥도 안 먹었는데 자꾸만 토하고 엄마 죽으면
어떡해요.“
아영이의 말을 이어 받아서 아빈이가 전화기를 뺏었다.
“아빠는 뭐하시는 분이세요?”
......
달랑 한 마디 하던 녀석이 갑자기 꾹꾹 참고 있던 울음보를 터트렸다.
“엄마는 왜 아빠랑 결혼 하셨어요? 이혼 하세요. 아빠가 아빠 같지도
않고...“
어찌나 서럽게 울던지 통곡하던 아영이의 울음소리가 묻힐 정도였다.
울면서 해대는 말이라고는 자기가 커서 어른이 되면
아빠가 아프면 밖에다 버린다나 뭐라나... 제가 말을 다 하지도 않았는데
전화를 끊어 버렸다며 서럽게 통곡을 했다.
‘뭐시라? 마누라가 아프다는데도 걱정은커녕 전화를 끊어 버려?
그래...내가 정말 헛살았지. 바보처럼 살았어...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다고 요 모양 요 꼴로 살아야 되는겨...그리고 이놈 뭐라고
시방 떠들어대? 제 아빠랑 헤어지겠다고 언젠가 통보했을 때, 절대로
자신들을 봐서라도 그러면 안 된다고, 아빠가 없는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라고
제 엄마를 설교하던 녀석이, 이제 와서 한다는 말이 엄마가 아빠에게
매달리며 살고 있는 것처럼 말하네. 아...혈압...‘
아이들과 나는 그렇게 슬픈(?)영화 한편을 찍고 있었다.
‘철컥!!!’
아이들이 제 아빠와 전화 통화를 한지 10여분이 좀 지났을까?
헐레벌떡 들어오는 남편이 침대에 너부러져 있듯 누워서 눈물을
찔끔거리는 나를 보고 아들놈에게 한다는 말이,
“엄마가 이 지경이 되도록 왜 연락을 하지 않았어?!”
란다.
제 아빠가 와 준 것에 안심이 됐는지 조금은 차분해진 목소리로
“엄마가 연락 하지 말라고 했어요. 엄마 빨리 데리고 병원에
가야 되요. 약국에 가서 증상을 얘기 했더니 빨리 병원으로
모시고 가래요. 어떡해요.“ 한다.
그날 남편은 몇 시간이나 내 머리부터 발끝까지 주물러 됐는지 모른다.
간사한 사람의 마음은 그 동안 무능력함과 무관심한 남편의
단점들이 용서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겁 많은 남편은 결코 나를 병원까지 데리고 가지 못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고,
다음날 출근했던 나는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점심때까지만 근무하고 일찍 퇴근을 해서 병원으로 향했다.
증상을 말하니 심각하게 엑스레이까지 찍자했고, 혈액 검사에
주사까지 맞고 침대에 누워있으니 어찌나 내 꼴이 한심하던지,
덩치나 작아야지 어디서 좀 아프다며 꾀병 부려도 통할 것을...
“덩치는 ‘산’만한게 연약한 척 하려니 그것도 쉽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