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사회에는 끼지도 못하고, 그래도 한국에서는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세탁소나 식당이나 청소 같은 일에 종사하다 보니 교회에 가서라도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는데 그렇지 못하니 갈등이 일고 분열이 생기는 거죠.\"
가게 냉장고를 고치러 온 아저씨 말에 남편은 정말 공감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나이들고 돈도 못 벌고 이제는 마누라도 날 우습게 알고 자식 놈들도 우습게 알고 속상해 죽겠다.\"
\"선배님, 이해가 됩니다.\"
남편은 선배라는 분의 신세 한탄에 정말 공감하는 표정이다.
남편과 같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으면 좋겠는데 반대로 고개가 흔들어진다.
어떤 사람이 존경을 받는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성공한 인생을 사는 것인가?
남편과 나는 정말 다른 잣대로 인생을, 사람을 평가한다는 생각을 한다.
부부로 같이 살면서 한 사람은 실패한 인생이라고 화를 내고, 한 사람은 성공한 인생이라고 감사하며 산다.
남편이 나름대로 탄탄대로라고 생각하는 길을 가던 때, 나는 내 삶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남편이 가져다 주는 편안과 안락함 속에 안주하여 삶을 마친다면 죽음의 순간에 엄청난 후회를 할 것만 같았다.
남편과 부부 동반 모임에 참석하여 나누는 사교적인 대화들이 정말 재미없었다.
남편 덕분에 듣는 사모님 소리가 귀에 달갑기 보다 부끄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로 교만해 지기도 하였다.
난 지금의 내가 좋다.
식당 아줌마가 사모님 보다 훨씬 훨씬 좋다.
가게 앞의 꽃밭을 망쳐놓은 노숙자하고 악다구니 하고 싸우기도 하지만 그런 내 모습이 오히려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한다.
노숙자가 가게 안으로 들어와 구걸이라도 할라치면 못 된 식당 아줌마가 되어 단호하게 쫓아내어 버린다.
교양 같은 것은 코에 걸지 않는다.
남편이 벌어다 주던 돈의 반도 못 미치는 돈을 벌지만 그래도 내가 무엇인가 보람있는 일을 하는 것 같아 뿌듯하기만 하다.
교만할래야 교만할 건덕지가 없는 내 삶이 오히려 안전하게 느껴진다.
교만은 고사하고 까다로운 손님들 비위를 맞추기 위해 얼마나 겸손하고 싹싹한 지 모른다..ㅎㅎ
그런데 남편은 우리의 사는 모습이 실패한 인생으로 느껴지는가 보다.
자주 슬픈 표정으로 넋놓고 먼산 바라기를 한다.
남 앞에 내세울 것이 없어 슬픈가 보다.
난 그래서 좋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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