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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영산에서 맞은 바람


BY 그리운섬 2007-05-09

팔영산에서 맞은바람


 글/김덕길



 조금 아파도 아주 아프지는 않았을 거야

 내가 발 디뎌 나갈 때마다 꾹꾹 누르는 내 발 떠받치러 

 땅바닥은 쉴 틈도 없었을 테니

 하물며 학도 외발로 서서 땅의 수고로움 덜어주지 않던가.


 새벽을 가르는 회색안개가 질펀하게 드리워 도심의 숨통을 끊어놓는 분당은 아직 잠깨지 않은 섬 그 자체였다. 야탑동 공원 큰 나무에 등 기대고 살던 비둘기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휑한 바람만 벤치에 걸터앉아 버려진 신문조각의 글씨만 연신 들여다보고 있었다.

  

 파아란 산행 회원님들을 태운 버스는 전남 고흥 그 먼 길을 달려가기 시작했다. 연둣빛 연약한 잎사귀를 살포시 내밀고 봄의 절정을 맞기에 바쁜 경기도와는 달리 남녘은 이미 여름으로 달려가기에 바쁜 하루였다.

 차는 어느새 내 고향 정읍을 지나가고 있었다. 로터리가 끝난 논은 물이 가득차 작은 논에는 곳곳마다 파란 하늘이 내려앉았다. 잠시 스치는 어머니의 영상이 정읍 이평의 부추 밭으로 향했지만, 나는 그냥 스쳐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팔영산이 정말 좋더라는 어느 친구의 말이 떠올라 나는 부푼 기대를 안고 능가사 입구에 내렸다. 조금은 작고 앙증맞은 여덟 개의 봉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한 저 산을 내가 오른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힘이 솟았다. 긴 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가쁜 숨을 몰아쉬며 산을 오른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번엔 차에서 먹은 김밥이 배고픔을 달래주었는지 지난 화왕산 산행 때보다는 쉽게 산행을 할 수 있었다.

 한 시간여를 올랐을까?  벌써 등줄기엔 땀이 흥건하게 고였다. 중간고사를 끝내놓고 따라나선 중학생인 내 아들도 즐거운지 귀에 꽂은 이어폰의 음악소리에맞춰 걸어가는 발걸음이 무척 가벼워보였다.

 어쩜 글을 그리도 서정적으로 잘 쓰시냐고 물으시던 지혜고모님 내외분들의 오붓한 모습도 보기 좋았고 항상 그랬듯이 팔각군용 모자를 쓰신 파아란 대장님의 진두지휘는 보기에도 시원해 보였다. 한소끔 땀방울을 떨어뜨리어낸 다음에야 시작된 점심식사는 꿀맛이었다.  아내가 정성스레 장만해온 불고기에 상추쌈은 마치 모내기를 하다 먹는 점심처럼 맛있다. 거기에 목젖까지 촉촉하게 적시는 한 모금의 맥주는 더 없이 시원했다.


 잠시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오르는 산행이 힘들 리는 없었다. 그러나, 장장 여덟 개의 봉우리를 넘어야 하는 산행이었기에 안심은 금물이었다. 산봉우리마다 제각각 다른 이름을 하고 산의 자태를 뽐내는 동안 우리는 마치 에베레스트의 모든 산을 정복해 나가는 양 의기 양양했다. 2봉에 착 올라서는 순간 눈앞에는 검푸른 바다가 펼쳐져있었다. 하느님이 하늘에 구름지도를 그리다가 붓을 떨어뜨렸는지 하늘 닮은 바다에는 점점이 작은 섬들로 가득했다.

 섬은 로터리를 치기 위해 논에 물을 가두어 놓은 것처럼 질서 없이 흩어져있었다.

4봉쯤 올랐을까? 앞에서 갑자기 아우성 소리가 들렸다.

 “어머 저기 좀 봐요!”

 “저기 바위틈에 뱀이 있어요.”

 뱀은 바위틈에 거꾸로 붙어서 그 긴 몸뚱이를 비비 꼬아대고 있었다. 우리들은 저마다 뱀이 보이느니 안보이느니를 가지고 마치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길바닥을 스치는 뱀은 수없이 보았지만 바위틈에 물구나무를 서서 벌을 받는 뱀은 또 처음이었다.


 우리는 산봉우리 중에 가장 암릉이 아름답고 험한 6봉을 향해 걸어갔다.

 다리가 아팠다.

 조금 아파도 아주 아프지는 않았을 거야

 내가 발 디뎌 나갈 때마다 꾹꾹 누르는 내 발 떠받치러 

 땅바닥은 쉴 틈도 없었을 테니

 하물며 학도 외발로 서서 땅의 수고로움 덜어주지 않던가.

 몇 번의 산행에서 얻은 시구를 가지고 한편의 시를 만드는 과정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시를 쓴다는 것은 어쩌면 내가 산행을 하면서 얻는 감동 중 가장 큰 것일지도 모른다.


 바람에도 창이 있나보다

 바람 쿡쿡 찌를 때마다 가슴에 생채기가 나는걸 보면

 바람에도 매가 있나보다

 바람 맞을 때마다 가슴에 피멍 드는걸 보면

 내 혼돈의 시심으로 매를 맞은 바람같은 언어들

 바람으로도 때리지 말아야 할 시어가 나에게는 올 것인가.


 팔영산은 그렇게 내 게으른 시심의 다그침으로 바람을 불어넣었고, 그 바람은 모진 비수가 되어 내 게으른 마음속을 사정없이 찔러대고 있었다.

 녹동 항에서 소록도행 배를 타고 우리는 서둘러 소록도로 향했다.

 나환자촌으로 잘 알려진 소록도를 들어간다는 것이 선뜻 내키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우리가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어디에도 나환자들은 보이지 않았다. 공원에 웃자란 거대한 나무들의 위엄을 즐기기 보다는 나는 소록도 해수욕장 끝으로 연신 시선이 옮겨갔다.


 조그만 포물선을 그리던 해수욕장에 물이 빠졌다.  바다에 젖지 않는 가녀린 실비만 촉촉하게 포물선 그린 해수욕장을 넘나들었다. 물 빠진 해수욕장 너머로 허리를 펼 사이도 없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줍고 계시는 늙으신 할머니의 모습에서 부추를 뜯고 계실 내 어머니의 모습이 투영되었다가 이내 사라졌다. 아득히 먼 뻘위로는 할아버지 한분이 무엇인가를 끌고 뻘위를 걸어가시는 모습이 흑백영화의 한 장면처럼 펼쳐졌다. 실로 감동이었다.

 이 아름다운 풍경을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으랴?


 우리는 서둘러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본 후 소록도에서 나가는 마지막 배를 탔다.


 ‘막배는 여섯시에 떠나고’란 제목으로 시를 써 보면 정말이지 주옥같은 시 한편이 나올 법도 한 모양새가 이곳 소록도였다. 낭만 보다는 아픔의 응어리가 시대를 타고 넘어 고목의 옹이로 남아 세월을 아우르기도 했을 테고, 내 보고픈 아들딸의 모습이었지만 혹여 병이라도 옮을까 길을 중간에 두고 그렇게 바라보기만 하다가 끝내 막배로 떠나갔을 지도 모를 어느 어머니의 절규가 들리는 듯 뱃고동 울음소리도 그렇게 구슬프기만 했다.


 저녁은 횟집에서 회와 더불어 하루를 마감했다. 오십 여명의 회원들은 서로 소주잔을 기울이며 오늘의 산행과 하루 일정을 되새겼고, 밤부터 내린 비는 남도의 땅에서 하루의 잠자리를 청하는 우리들에게 그 먼 거리를 달려와 주어 반갑다는 듯 줄기차게 내리고 있었다.


 -계속- 이어지는 다음 편은 거문도 산행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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