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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해 최남단 거문도 산행기


BY 그리운섬 2007-05-09

다도해 최남단 거문도 산행기


 글/김덕길




 수없이 많은 산을 올랐고 수없이 많은 산을 내려오며 나는 그 얄팍한 단어를 마치 최고의 찬사인양 나열해가며 산행 후기라는 이름으로 그 산을 다 섭렵한 듯 그렇게 주절주절 글을 올릴 때가 많았다. 적어도 내가 사량도와 이곳 거문도를 직접 올라가 보기 전에는 그랬다.

 여수와 제주도 중간 지점에 위치한 다도해의 최남단 섬 거문도, 혹자들은 거문도를 땅이 검은 섬이라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거문도[巨文島]는 학식이 뛰어난 인재가 많이 사는 섬이라 해서 거문도라 명명했다는 것이다. 한양의 많은 학자들이 이 먼 섬으로 유배를 와서 살았으니 그럴 법도 하겠다.

 녹동항 모텔에서의 하룻밤이 지나고 우리는 간단한 매운탕으로 아침식사를 한 다음 서둘러 배에 올라탔다. 거문도까지 한 시간여를 달린 쾌속선은 다시 백도 행 유람선으로 우리를 갈아태운 후 다시 40여분을 달려 신비의 섬 백도로 우리를 안내했다.

 깎아지를 듯한 기암괴석들이 즐비한 백도는 미지의 섬이었다. 누구에게도 쉬이 그 섬의 알몸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듯 백도는 백가지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그 먼 바다위에 둥둥 떠 있었다.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 때문에 선상 관광은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했지만 그 섬의 신비로움을 간절하게 설명하시는 안내원 아저씨의 목소리는 거문도와 백도 사랑의 단면을 절실히 느낄 수 있었다.  관광 자원이 아니면 거문도가 얼마나 살기에 척박한 땅이 되고 말았을지 그 분의 절절한 목소리에서 묻어났다.

 역시 나는 산악인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아름답다고 외쳐도 내가 발 디뎌 오르지 않은 미지의 섬은 역시 미지일 뿐이다. 그래서 백도는 백가지 아름다움을 간직했다손 치더라도 나에게는 그냥 미지일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발 디뎌 오른 거문도는 그 느낌이 백도의 백배는 더 감동이었을 거라고 감히 자신하는 바이다.


 백도 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거문도에 도착해서 작은 민박집에 들어가 점심식사를 했다. 거문도에서 유명하다는 은 갈치조림에 낯선 섬 음식으로 허기를 채웠는데 섬이었기 때문일까? 내가 아는 전라도 그 고유의 입맛에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도 은 갈치 조림은 나름대로 맛이 있었다. 지금까지가 일련의 과정이었다면 지금부터는 그야말로 거문도 산행의 백미가 아닐까 싶다.


 GPS기능이 있는 무전기를 휴대하시고 다니시는 대장님의 인솔 하에 우리들은 다시 불탄 봉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대장님 역시 거문도는 처음 산행이었는지 처음에 길을 잘 못 들었다. 그러나 그 잘못 오른 길이 우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의 길이 되고 말았으니 전화위복이란 단어가 딱 이 시점에 있어야 할 말이 아닌가 싶다.

 남들이 다 오르는 산길이었으면 그 산길은 풀잎 밟는 느낌보다는 흙을 밟는 느낌이었을 게다. 우리는 얼기설기 쌓아서 담을 만든 돌담길을 구불구불 올랐다. 바닷바람이 강한지 제주도에서 보았던 것처럼 이곳 지붕도 밧줄로 꽁꽁 동여매있었다. 우리는 섬을 끼고 가로로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을 헤치며 걸었다. 최남단 섬 거문도 그중에서도 오지라 할 수 있는 첩첩 산중의 산길은 그야말로 꿈길을 걷는 듯 했다.

 풀잎은 싱그러운 자태로 몸살 나게 우리들을 에워쌌다. 군데군데 숨어서 열린 산딸기는 그 빨간 속살 다 드러내기 싫은 듯 넓은 동백 잎 속에 몸 낮추며 익어가고 있었다.

 산은 온통 동백나무가 지천이었다. 이미 동백꽃은 거의가 피었다가 지고 없었지만 간혹 송이채 떨어져 산 속 외진 풀숲에 뎅그러니 나뒹구는 동백꽃을 보노라면 인생사 다 그렇고 그런 것이 또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동백 숲을 헤치고, 찔레꽃을 헤치고, 바람이 밀면 밀려간 바람의 길을 따라 꾸역꾸역 올랐다. 간 밤 내린 빗물에 촉촉해진 땅바닥의 조그마한 바윗돌은 우리들이 디딛는 발길에 차여 주르륵 미끄러졌다. 미끄러지면 또 미끄러지는 대로 우리는 바위와 흙을 밀어내며 오르기만 했을 뿐, 누구 하나 이런 험한 길로 산행을 하느냐며 푸념하는 분들은 안계셨다.

 경험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정해진 시간표대로 이어지는 과정은 단조롭기 그지없다. 이미 예상이 되는 승리 또한 흥미가 반감되기 일쑤다. 그러나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팀이 승리를 한다거나,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좋은 결과를 얻었을 때 느끼는 그 감동의 깊이는 배가 될 것이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 어떤 날은 유난히 낯선 길 그 길이 더 향기롭다고 쓴 내 시가 아니더라도 이런 날은 정말이지 낯선 길로만 정처 없이 발 길 닿는 대로 걸어가고만 싶다.


 그렇게 반시간여를 올랐을까? 드디어 정상 등산로를 찾은 우리들은 잠깐의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산행을 이어나갔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산길은 그야말로 풀길이었다. 풀잎이 길에 누워 일광욕을 하는 사이지만 우리들은 그 풀잎이 일광욕을 하건 말건 발 디뎌 올랐다.

 사실은 길에 누운 풀잎을 밟는 것조차 미안했다. 발에 닿는 촉감은 그야말로 환상이었다. 풍년이 든 논의 벼를 탈곡한 후 논바닥에 깔아놓은 지푸라기 위를 조심조심 걷는 느낌이기도 했고, 새로 지은 전원주택의 잔디위를 사뿐사뿐 걸어가는 느낌이기도 했고, 구름 위를 걸어가는 느낌이기도 했다. 불탄 봉에는 유난히 죽은 고목이 많이 있었다. 그 고목들이 불에 타서 죽은 것인지 병에 걸려 죽은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불탄 봉의 뜻은 지천에 깔린 동백꽃이 마치 불이 붙은 것 같다 해서 불탄 봉이라 이름 지었단다. 고목에는 담쟁이넝쿨이 그 죽은 자리를 대신하고 있었다.  다시 삼십 여분을 더 걸으니 산길 바로 아래는 천길 벼랑이었다. 그리고 그 벼랑 끝으로는 아스라이 펼쳐진 쪽빛 바다가 끝없이 이어졌다. 그 바다위로 배 한척이 유유히 지나갔다. 한참을 지나가는가 싶더니 이윽고 작은 꼬마 배 한척이 90도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며 긴 물무늬를 만들었다. 잔잔한 바다는 어느새 하얀 포말 흐느끼는 물 파도로 울렁거렸다.


 내 발걸음 아래 바다를 두고

 내가 산길 걸으니

 나는 바다 위를 걷는 듯 거침없어라.

  산 전체가 온통 동백 숲인 이곳 거문도는 동백 숲 사이사이로 어울려 자라는 나무들이 있었다. 그 나무 이름들도 또한 가지각색이었다.

 자귀나무, 왕작살나무, 생달나무, 예덕나무등 그 이름들 또한 낯설었지만, 그 숲을 헤치며 섬을 일주한다는 것은 참으로 큰 감동이었다. 이러다가 전국 섬 산행에 매력을 느낀 나머지 섬 여행만 고집하는 것은 또 아닐지 모르겠다.

  

 하산 길에 삼호 교를 지나다 그곳에 사는 꼬마들을 만났다.

 한 꼬마가 다리교각을 붙들고 외쳤다.

 “야, 저기 좀 봐! 시방 해삼이 떠내려 오고 있어야.”

 “그러게 겁나게 크네.”

 두 아이의 대화를 들으며 웃다가 나도 다리 아래로 떠내려가는 해삼을 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너희들 어디 사냐?”

 “거문도 살아요.”

 검게 그을린 얼굴 부스스한 머리 아무렇게나 입은 옷가지들이었지만 나는 안다. 그 아이들이 꿈꾸는 미래는 얼마나 아름다울 지, 내 아이가 저렇게 마음껏 자연을 만끽하며 살지 못하고 어린 시절을 보내버린 것이 나는 못내 아쉽기만 하다.


 참으로 즐겁고 유익한 산행이었다. 처음엔 별 생각 없이 회비만 내면 갈 수 있는 섬이려니 하는 단순한 생각으로 나선 여행길이었지만, 이렇게 큰 감동을 안고 떠나려니 미리 거문도에 대해서 공부라도 좀 하고 왔으면 좋았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든 떠나는 자는 아름답다. 내 좁은 시안으로 바라보는 세상도 이렇듯 황홀한데 그 먼 외국까지 나가서 몸소 체험하는 배낭여행객들의 자부심은 얼마나 아름다울까?


 아직도 휴일이면 방에서 콕 처박혀 쉬는 게 남는 거라고 생각하시는 독자 분들은 안계십니까?

 어디든 떠나 보세요. 낯선 경험은 새로운 한 주를 위한 활력소가 되어줄거라 자신하는 바입니다. 그리고 옆에서 많은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주신 블랙홀님과 그 가족들에게도 감사의 말씀 전하며 이 아름다운 산행을 끝까지 책임져주신 산행대장님과 후미 대장님 그리고 기사님, 그리고 더불어 같은 길 함께해준 산악회 회원님 그리고 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씀 전해드리며 이글을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덕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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