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가 싶더니 겨울여자가 잘났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제때제때 물을 주었더니 사과나무도서관의 화초들이 새순이 보드랍게 나왔습니다.
봄이 오는가 싶어 겉옷도 얇은 걸 입고 다녔는데
다시 겨울 겉옷 한 가지를 꺼내서 이번주 내내 입고 다녔습니다.
장갑도 끼고, 목도리도 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 다니게 되네요.
전 말라서 그런지 더운 건 잘 참는 편인데 추위를 이기지 못해
겨울잠 자는 다람쥐가 되어 출근하지 않고 집안에서만 뒹굴뒹굴 놀고
늘어지게 잠자고 밤늦도록 책이나 읽고 싶답니다.
도서관에 일한지 두 달이 되어갑니다.
월급을 두 번이나 탔어요. 히히
그래도 아직 직원들과 그리 친하게 지내지 못해요.
직원들은 너무 싹싹하고 친절한데 나랑은 책상이 떨어져 있고,
나랑은 나이 차이도 많이 나고, 나랑은 업무가 틀려서 친해지지 못하나봐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제는 제가 붙임성이 남들보다 떨어진다는 거예요.
잘 붙는 딱풀처럼 누구에게나 잘 붙어서 말도 잘 하고 농담도 주고받고 싶은데…….
전 딱풀 같은 여자가 되고 싶거든요.
그런데 좋은 소식이 있어요.
저랑 나이 차이가 한 살 밖에 안 나고
제가 한 살 언니랍니다.
작년에 도서관 일을 9개월 동안 하셨던 여자 분이신데
잠깐 동안 일 도와주러 온거지요.
사무실 센터장님이 쌍둥이 아기를 낳기 위해 출산 휴가를 떠나셨거든요.
그 분 대타로 3개월동안 출근을 한답니다.
통성명을 하고 나이를 묻고 마주 앉아 차도 마시며 얘기하다보니
사무실 직원이랑 같이 떠들게 되고, 좀 더 가까워지고 부드러워진 느낌입니다.
오늘은 점심식사 후에 산책도 다녀왔어요.
종일 앉아 있으니까 허리와 엉덩이에 바람을 씌워 줘야 한다며
동네 한바퀴를 돌았답니다.
오늘은 추워서 동네만 돌았지만 날이 풀리면 기찻길을 건너가자고 했어요.
기찻길 가에 돋아나는 풀도 관찰하고
기차가 지나가면 냅다 손도 흔들어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인간은 혼자 살 수 없는 동물이랍니다.
여럿이 부대끼며 살다보면 눈물도 흘리고
화도 내고 싸우기도 하고 미워지기도 하지만
감정의 동물이기에
여러 가지 감정 표현을 하게 되는 거겠지요.
키가 작아 멀리서 보면 아이 같은 여자,
말하는 것도 행동하는 것도 여자 같은 여자,
커피를 맛있게 타다 주는 친구 같은 여자
속눈썹에 마스카라를 하고 눈 밑에 잡티가 귀여운 여자
화초 이야기를 잘 하는 식물 같은 여자
만난지 삼일 밖에 안됐지만 금방 마주 보고 이야기를 하게 된 아줌마 같은 여자
춥다고 감기 걸릴까봐 걱정하는 소녀 같은 여자.
이런 여자 하나 사과나무 사무실에 있답니다.
여자는 아줌마라도 할머니라도 소녀 같고 싶고, 공주 같고 싶고,
한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여자라면 누구나 여자답고 싶은 여자.
나도 그런 여자랍니다.
이런 여자 하나 사과나무 도서관에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