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면서 조금 바쁘기도 했었지만 춥다고 웅크리고만 앉아
게을리 하던 산책길을 나섰다..
대문 앞에 서서 어디로 갈까, 잠시 고민...
공동묘지 앞을 지나야 하는 앞 동네 길로 들어섰다.
조금 가다가 옆을 보니 오솔길이 눈에 띄었다.
전에는 잘 가지 않던 길이다.
한참을 가니 미나리 논이 있었고 길은 거기까지였다.
되돌아 올까 하다가 여름에 미나리를 기를 때 물이 내려 가게 되어 있는 또랑으로 내려섰다.
물마른 또랑에는 키만한 마른 잡초들만 무성했다.
갑자기,
비비비~~~
화들짝 놀란 콩새의 무리들이 비명을 지르며
풀숲을 날아 오른다.
풀숲을 헤치고 반대편 전나무숲으로 올라 섰다.
잘디잔 무우채 같은 낙엽이 발등까지 푹푹 빠져 걷기가 힘들었다.
군데 군데 집채만한 바위들이 낙엽에 반쯤 묻혀 있었다.
숲은 컴컴했다.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며 진땀이 버쩍 났다.
서둘러 엎어질듯 숲을 빠져 나왔다.
숲에서 나오니 나무들이 앙상한 나즈막한 산이었다.
햇볕이 따사로운 산 아래의 작은 오솔길이 아늑했다.
차를 타고 가다가도 차창 밖의
소나무 숲으로 이어진 아담한 길이나
황토흙이 빨간 언덕으로 이어진 조붓한 길이나
파란 잔디가 포근한 그림같은 길을 보면 내려서 걷고픈 충동이 일곤 하는...
매마른 노란 잔디가 폭신한 오솔길을 한참을 걷다보니
저만치에서 김이 무럭 무럭 오르는 것이 보였다.
아니, 이 추운 겨울에 웬 김이...
옹달샘이었다.
아!
이마에 땀이 사그라들며 작은 탄성이...
작은 옹달샘 가장자리 물에서는 미나리와 수초들이 샘물에 몸을 맡긴채 하늘거렸다.
아니,샘물이 수초들에게 온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누런 빈 들판의 미나리와 수초의 파아람도 경이였다.
새소리만이 허공을 휘젓는 한적한 샘터 언덕에 쪼그리고 앉아
샘물과 수초들의 아름답고 따뜻한 어우러짐을 넋잃은 듯 한참을 내려다 보았다.
함 겨울 숲길 끝에서 만난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옹달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으며 샘물같은 평화가 넘실거리며 가슴으로 밀려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