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근무가 없는 토요일 너무 행복한 아침이다.
일주일에 달랑 많지도 않은 두 식구 아들과 나 서로 마주 앉아 밥 한 번 먹기가 어쩌면
그리도 힘든 일인지 ...
게으름 떨며 늦잠도 푸욱 자보고 아침에는 쇠고기 무국 끓여 잘 익은 포기 김치 한 포기
꺼네어 머리만 툭 자른 뒤 손으로 주욱 주욱 찢어 아들 밥 수저에도 올려주고
내 수저에도 올려 놓으며 김장 김치는 이렇게 칼질 안하고 손으로 찢어 먹어야
제맛이지 하면서 마주 앉은 아들 아이에게 그치 그치?
아들 녀석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맞아요 맞아~~
맛있다 냠냠 쩝~~~
그렇게 아침을 맛나게 먹은 뒤 아들 아이는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고
나는 내 방 옷장 정리나 좀 하려는데
인터폰이 요란 스레 울리기에 누구지?
무슨 일이지?
받아보니 우리동 경비 아저씨였다.
그런데 다짜 고짜
저기 혜성이 엄마아세요?
혜성이요?
가만 혜성이가 누구더라~~
예전 직장 다니기 전 살림만 할적에는 늘 주변 이웃들과 정겹과 오가며
여행도 다니고 맛난 음식도 서로 나누며 틈틈 쇼핑도 가고 이사 다니는 곳마다
정스럽게 이웃들과 친분있게 지냈었건만
이곳으로 이사 온지 어느사이 만으로 3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는 이웃이라고는
게다가 누구 엄마 하면서 지낸 사이는 더 더욱 없는데 혜성이 엄마가 누구지?
경비 아저씨 다시 한번 혜성이 엄마라는 분이
관리 사무실로 전화가 걸려 왔는데
우리집 동호수를 말하면서 자기 집 전화 번호를 알려 줄터이니
혜성이네로 전화를 달라고 부탁 하였단다.
그때야 떠오른 얼굴 하나~~
아~~ 알아요 혜성이 엄마~
전화 번호좀 주세요
000-0000
바로 받은 전화 번호로 연결을 하니
기다렸다는 듯 혜성이 엄마가 전화를 받는다
에그그~~
잘 지냈어?
그래 혜성이 엄마 이게 얼마 만이니?
자기도 잘 지냈니?
너무도 반가운 목소리였다.
아마도 20년 세월이 흘렀을게다.
지금 아들 아이가 유치원 다닐때쯤 경기도 부천 중동역 부근 5층 아파트 위 아래층
살면서 혜성이 엄마와 나는 동갑이었고 우연히 아이들도 같은 또래여서
참으로 재미나게들 지냈었다.
점심도 함께 지어 먹고 유원지로 놀러도 가고 옥상문 열어 놓고
돗자리 펴고 고기도 구워 먹고 때로 짜장면도 시켜먹고 볕 좋은 가을 날에는
옥상에 토란대도 말리고 빨간 고추도 말리면서
지난 시절 참으로 근심 없던 시절에 만났던 이웃 사촌 혜성이네~~
정겹던 그 곳을 떠나 각기 서울로 이사를 와서도 한참 동안은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았으나 6년전 우리 집이 갑작스레 어려움을 격게 되면서 집 전화도 내 폰 번호도
다 바뀌어 연락이 두절되었고 그 뒤로 소식도 끊어 졌었다.
그런데 항상 혜성 엄마는 내 안부가 궁금 했었나 보다
혜성이 아빠 직업이 경찰 공무원이니 사실 마음만 먹으면 내 신원 조회쯤이야
어렵지는 않았을 것이고 아무튼 어찌 어찌하여 내 사는 아파트까지 알게
되었나 보다.
그간 결코 짧지 않은 세월의 긴 이야기를 어찌 다 전화로 나누겠는가?
조만간 서로 얼굴 마주하기로 약속을 하고 수화기를 내려 놓는데
사람의 정이란게 무엇일까?
힘든 세월 풍파에 나는 되도록 집안 대소사 모임에도 발길을 끊었고
더 더욱 친구들, 이웃들과의 연락도 거의 단절된 상태인데
아직도 나는 다행인지 주변 사람들에게 잊혀진 얼굴은 아닌가 보다.
가장 서글픈 여인은 잊혀진 여인이라고 하던데...
나는 지금도 가끔 마술처럼 요술처럼 눈만 한번 꾸욱 감았다 뜨면
평온의 가정 그 근심없던 시절로 되돌아 갈 수는 없을까 ?
그런 허무 맹랑한 꿈을 꾸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 나!
나락으로 한 없이 떨어지던 그 슬픔의 날들에서
점점 자주 독립을 외치며 굳세게 자리 잡아 가고 있으니 다행이지만...
아무튼 지난 주말 신원 조회까지 하면서
나를 찾은 혜성이 엄마로 인하여 다시 한 번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