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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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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머물지라도...(2)


BY 개망초꽃 2007-01-22

 

아홉시에 도착하면 3층 사무실엔 아무도 없습니다.

사무실엔 여직원만 일곱 분이 계십니다.

이곳은 카톨릭 제단이라 아침 아홉시만 되면 직원들이 2층으로 기도를 하러 가기 때문에

내가 문을 열고 들어옵니다.


오늘도 아무도 없는 유리문을 열고

내 책상에 가방을 내려놓고 청소를 시작합니다.

책장 사이사이와 아이들이 책을 보는 넓은 탁자 먼지를 훔칩니다.

사무실은 30평쯤 됩니다.

반은 교육정보센터 사무실로 쓰고 나머지 반이 도서관입니다.

대출해주는 책은 유치원아이들이 보는 책입니다.

그래서 도서관은 넓지 않아도 되고 책도 많지 않습니다.

회원제이고 가입비만 조금 받기 때문에 바쁘지도 않고

책빌리러 오는 엄마들이 인상도 쓰지 않습니다.

백화점에서 서점 일을 할 때는 손님들이 어깨에 힘을 주고 얼굴엔 인상을 잔뜩 쓰고 있어서

일하는 내가 괜히 하인이 된듯하지만

이곳은 서로 웃으며 다정하게 책을 빌리고 책을 반납합니다.

일하는 내가 괜히 봉사하러 온 듯 마음이 가볍고 보람이 있습니다.


책을 보는 곳엔 사과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나무엔 빨갛게 익은 사과가 주렁주렁 달려서 가을날의 과수원 같습니다.

따거나 서리할 수 있는 사과가 아니고

인조사과지만 가짜 나무 한 그루로 인해 도서관은 싱그럽고 풍요롭습니다.

넓은 탁자가 두 개 있고,

빨간색 작은 엉덩이 의자가 탁자아래 쏙 넣어져 있습니다.

두 개의 탁자 옆으로 사과나무가 있고

사과나무 사이로 신발을 벗고 책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과나무 아래서 책을 보게 되는 겁니다.

나무아래서 책을 보는 것은 행복이 한 장 한 장 끼워져 있는 것 같습니다.

분홍카페트가 깔려 있고

아이들 엉덩이에 맞는 앙증맞은 소파가 양옆으로 두 개가 있습니다.

카펫 주변으로 바이올렛 화분이 쫄로리 놓여 있답니다.

이건 진짜입니다.

내가 오기 전에 꽃을 피웠는지 시든 꽃대가 달려 있어서 지저분한 꽃대를 따 주었습니다.

책장과 책장 사이엔 벤자민 잎이 반짝거립니다. 이것도 살아있는 나무랍니다.

짙은 초록색 창틀에도 화분이 놓여 있습니다.

저는 풀꽃 한 송이에도 나뭇잎만 팔랑팔랑 달려 있어도

마음이 설레고 속상했던 기분이 흩어져 버립니다.

전 참 단순하지요?

 

토요일과 일요일은 쉰답니다.

아홉시 출근이고 여섯시에 퇴근입니다.

12시부터 점심시간이랍니다.

아이들이 책을 보러왔다가도 점심시간이 되거나 퇴근시간이 되면

“점심시간이에요. 퇴근시간입니다.” 해도 됩니다.

옛날(처녀 적에) 직장생활을 할 때는 퇴근시간외에 근무를 많이 했고

퇴근시간이 되어도 윗사람들 눈치 보느라고 퇴근을 못하곤 했었습니다.

근데 요즘은 점심시간, 퇴근시간이 정확합니다.

일하기 좋은 시절이 되었다는 것이겠지요.

무조건 일만하는 시절은 지나고 일을 즐기며 보람된 곳으로 탈바꿈 된 거지요.

곧 선진국처럼 여행과 여가시간을 갖기 위해 일을 하는 시절로 바뀌어질듯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무실 직원들은 즐겁게 일을 합니다.

서로 웃으며 농담하며 의견을 나누며 일을 하네요.

자유롭게 차를 마시며 간식도 아무 때나 먹고 싶을 때 먹기도 합니다.

처음 간식을 받았을 때

여기서 아무 때나 먹어도 되나요? 하고 물어보았더니

물론이지요, 하네요.

백화점 다닐 때 차 한 잔 마셨다고 혼난 적이 있는데 여기는 참 좋은 일터네요.

간식도 매일 줍니다.

어떤 땐 크림이 잔뜩 든 빵이 나오고, 찰떡파이도 주고, 딸기도 주네요.

편하게 먹고 싶은 거 맘대로 먹을 수 있어 일터라기보다는

이웃집에 다니러 온 것 같답니다.

책도 볼 수 있고 컴퓨터에 글도 쓰라고 하네요.

일터라기보다는 내 사무실 같답니다.


오전에는 책을 보러오거나

책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청소를 끝내고 차 마시며 글을 쓰고 있답니다.

따지고 보면 일하는 것에 비해 월급이 적은 것이 아닙니다.

참 편하고 좋은 직장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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