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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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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산삼과 장닭을 먹었다.


BY 정자 2006-11-27

산삼 먹기 전에 그렇지 않았다.

언제나 얌전하고 착하고 말 잘듣고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다.

특히 남의  의식을 참 잘하여서 누군가 싫은 소리를 할려치면 얼른 그 소리에 걱정이 된 나머지 그네들의 요구를 들어주곤 하였다.

말도 잘 못했다. 말더듬이가 심하여서 말 한마디 할려면 이미 머릿속의 단어는 상대방이 먼저 애기  한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 거기다 어눌하여 느려터지니

연애도 그 흔한 데이트도 잘 못했다.

어찌 어찌하여 결혼은 하였는데, 남편은   그런 나를    좋아했다.

꼭 백치 아다다처럼 늘 바보같이   잘 웃는 마누라처럼 대했다.

나도  그런가보다 하고 살았는데.

 

어느날 꿈도   제대로 꾼 날도 아닌 날에

초봄 남편은 산삼을  캐왔다. 그것도 매일   마주보는  앞 산에서 말이다.

고사리 꺽으러 갔는데, 산삼이 보이더란다.

그래서 얼른 캐왔는데

가져 와보니 이만 저만 부담이 아니다.

팔자니 한 뿌리고,누구 주자니 부모님인데, 한 뿌리니 두 분 가위바위 보해서 이긴 사람 줄까, 아니면   혼자 사시는  장모를 줄까 한 참 고민을   남편은  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일주일 흐르고   이주일 가니 어느새 한달을 고이 모셔놓은 산삼을 나는 실컷 보았는데. 그 때 딸내미가 그런다.

\"엄마! 삼계탕 해먹자? 산삼 넣고?\"

 

 남편도 고민을 하느니 차라리 온 가족 다 나눠먹자는 쪽으로 기울었다.

나는 닭을 사러 갔는데, 그 닭이 토종닭이냐, 육계냐 하다가 마침 장날에 판이 벌어진 곳에   벼슬이 붉고  날개짓도 활달하고, 무엇보다도 목소리가 굵고 힘있는 장닭을 본 것이다. 값도 토종닭보다 만원이나 더 비싸고, 닭주인이 그런다.  장닭이 그렇게 흔한게 아니라서 더욱 비싼 거라고 한다. 뭐 할거냐고 묻기에 난 얼결에 산삼넣고 푹 삶아 먹는다고 했더니, 푸하하 호탕하게 웃으신다.

 

 단단히 닭발을 한 오랏줄에 묶어 내 차에 실었는데, 힘이 얼마나 쎈지 뒷좌석이 들썩들썩해서 나도 불안했다. 집에까지 제대로 운전하고 갈 수 있을런지 걱정이 되고,

 

 집에 오니 남편은 장닭이라는 말에 어떻게 그런 걸 사오냐고 면박을 준다. 너무 질기고 삶아도 압력밥솥에 서너시간 푹 고아야 하는데, 산삼이 흔적도 없겠다고 한다.

그래도 할 수없다. 우리는   기다리고 기다려서 연기가 피싯피싯 꼬다리가 팽팽 돌아가는 압력밥솥에서 나오는 김을 보니 인삼보다도 더욱 은근한 향이 온통 주방에 한가득했다.

내 집게손가락보다 더 가늘은 그 몸뚱어리가  이렇게 진동하는 냄새가 날 줄은  몰랐다.

 

 꺼내서 보니   장닭은 질기지  않았고 국물은   느끼한 맛이   전혀   없었다. 우리 가족은   배두둘기며   실컷   국물에 밥 말어먹고   닭을   먹었는데, 닭이 얼마나 큰지 어느 닭 두배였다. 우리는    한끼에 그 걸 다 먹지 못했다. 하루  세끼를 나눠서 먹었는데.  

 

 그 이틀날도 아무렇지 않고, 일주일이 가도 산삼먹은 특이한   현상은 몸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나는 괜히 심통을 부리기 시작했다. 착하게 잘 살자는   마누라가  어느날부터 바뀐다고 하더니, 우선은 목소리가  장닭처럼 굵게 잔소리를 해대고, 말도 더듬지 않고 . 잇속 바른 말을  마구하니 남편도 얘들도 이상하게 나를 쳐다보는 것이다.

 

남  의식을 잘해서 눈치도 잘보는  나는 그런게 싹 없어진 것이다. 산삼의 효력인가 싶은 게 한참을   거슬러 언제부터 그랬나 더듬어 기억을 해보니 산삼을 먹기 전에는   이렇던 마누라가 산삼과 장닭을 삶아 먹은 후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후였다.

 

 나는 신이 났다. 그렇게 잔병이 흔해   감기에 비염에 언젠가는 눈다래끼까지 나니 그 자리엔 속눈썹이 다시는 안났는데, 이젠 감기도 비염도 잘 안걸린다. 튼튼해진 것이다.

몸이 튼튼하니 목소리는   작아질 이유가 없다. 기운 쎈  마누라가 한다면 한다고 밀어 붙이니 울 남편은   아고고..그 산삼 울 어머니 줄 걸 이런다.

 

 나는 아이들에게도 만일 엄마가 없어도 밥을 해먹을 수 있는 어린이가 새나라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안 그러면 집에 엄마가  늦게 오거나 못 들어오는 날은  엄마를   기다릴 겨? 아니면 밥 해먹을 겨? 했더니 두 놈 엄마의 공갈에 어리버리 대답한다. 해먹는다고 한다.

반찬도 없으면 너희들이 해 먹을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가공식품이나 인스턴트들은 뭐든지 다 가짜다, 먹으면 머리 나빠지고, 살이 빨리 찌다가 비만에 걸려 죽고싶냐? 아니면  오래 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냐? 하면 또 오래 오래 안 아프고 살고 싶다고 한다. 그러면 난  된장찌게 끓이는 법부터, 계란 찌는 것, 냉장고에 재료를 찾아서 다시   재료를  보관 하는 방법들을 알려줬다. 남편은 아이들을   벌써부터 부려먹을 거냐고 역정을 내지만 장닭에 산삼먹은 여자는 그런 말에 기죽지않고 오히려 덤빈다. 왜 남자라서 노상 앉아서 밥상 받아  먹으라는 대한민국 헌법이 따로 있남? 그런 거 따로 있는 겨? 아 말혀 봐?

 

 그렇게 사년이 지났다. 지금은 알아서 내가 늦던 안 늦던 관계없이 본인들이 알아서 한다. 스스로 하니 잔소리가 필요없다. 남편도 이젠 마누라가  그렇게 된거는 어쩔 수가 없다고 체념한 것 같다. 어떤 때는 저녁을 준비하고 그럴 듯하게 분위기를 만들어 막걸리 한 두어잔을  같이 마시기도 한다. 이젠  가사일도 도와주는 차원이 아니라고 했다. 이젠 공동으로 해야 하는 시대라고 했다. 이름하여 공동체라고 거창하게 크게 말하며 주장했다.

 

 나의 가정이라고   무조건 한쪽보고 해 달라고   요구 할 수도 없고, 조금 있으면 서로 각자의 몫이 스스로 해가는 가정이 되는데, 그 때 남자라고 밥도 못하고, 살림도 잘 모르면 그 가정은    참  힘들어진다. 그러니 이젠 아들에게 여자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엄마에게 배려를 해주는 법부터 사소한 것을 무시하지 않게 알려줘야 한다. 마찬가지로  딸아이에게도 그랬다. 남자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거나 기대하지 말라고 했다. 왜냐하면    이혼도 이별도 모두 상대가 있기 때문이다. 또 누가 알겠는가? 앞으로 오십년후에는 결혼제도가 없어지거나, 결혼을  안해도 서로 어울렁 더울렁 잘 살아 갈 세상이 올 지 모른다.

 

 

겨울이 흰 빛 강줄기를 타고 흘러 들어오고 있다. 지금 우리동네에는.

남편이 또 산에 간단다. 그래서 난 물었다. 왜 또  산삼 캐려구?

그랬더니 피식 웃는다. 그런 걸 아무때나 보이는 줄 알어?

약초 몇 뿌리 캐서 말렸다가 겨울에 다려 마시면 얘들 감기에도 좋고... 하더니

느닷없이 나보고는 마시지 말란다. 왜그러냐고 그러니까.

거기에 성질 더 나빠지면 난 이젠 책임 못 져? 같이 못 살어!

 

후후...그러게 왜 그 산삼을 먹여가지고 나를 이모양으로 바꾸었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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