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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영님에게(백석의 시 몇편 )


BY 아리 2006-11-27

님 덕분에 백석시인의 시 몇수를 읽게 되었습니다

 

너무 좋아서

 

혼자 읽기가 아까워서 몇편 올려봅니다

 

다른 분들에게 누가 되었다면 이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비가 오는 외로운 날 영화를 두편 보면서

 

이렇게 침잠되고 좋은 혼자를 찾아주게 해준 날씨가

 

너무도 감사 했습니다

 

답글란이 길다면 그 곳에 적을 터인데 ...

 

그저 같이 보아 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백석의 유지에서 진정한 시의 길을 읽으며

서울 성북동에 있는 길상사에 가보면 \"나누는 기쁨\"이라는 찻집이 있습니다. 거기에 가보면 백석 시인의 애인이 자기 평생 시 한 수 백석이 써준 [나와 나타샤와 신당락]이라는 시가 걸려 있습니다. 그것을 품고 있었던 여자인데, 죽을 때까지 백석을 사랑하고 그리워했습니다. 길상사의 원주인이자 백석의 애인이었던 자야 여사의 생각으로는 백석이 1963년에 세상을 떠난 줄 알았는데,

최근에 조선일보 2001년5월 4일자 신문을 보니까 백석은 1996년까지 살았더군요. 그리고 그 증명으로 사진과 편지를 한국에 있는 소설가에게 주었고 일본의 NK리포터에 얘기했던 게 있습니다. 그래서 자야가 1963년에 백석이 죽은 줄 알았는데 내가 신문을 보고 아니다 그러면 이것을 알려줘야지 그래서 자야가 살았던 그 집에 찾아가서 쓴 시가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백석의 입장에서 간 겁니다. 그러나 이게 맞아야 되기 때문에 그 두 편을 읽어야 하겠습니다. [그 사람을 사랑했던 이유]라는 작품입니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백석이고, 백석이 사랑했던 여자는 김아녕이라고, 그런데 백석은 한때 그녀를 자야라고 불렀지. 이들이 만난 것은 20대 초, 백석은 시 쓰는 영어선생이었고 자야는 춤추고 노래하는 기생이었다. 그들은 3년 동안 죽자사자 사랑한 후 백석은 만주땅을 헤매다 북한에서 죽었고, 자야는 남한에서 무진 돈을 벌어 길상사에 시주했다. 자야가 죽기 열흘 전 젊은 기자가 이렇게 물었다.

\"천 억의 재산을 내놓고 후회되지 않으세요?\" \"그 사람 생각을 언제 많이 하셨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데 때가 있나\"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다시 태어나신다면 어디서?\" \"한국에서요\"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천 억이 그 사람의 신 한 편만 못합니다. \"나 다시 태어나면 나도 시를 쓸거야\" 이번에는 시를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사랑을 간직하는 데는 시밖에 없다는 말에 시 쓰는 내가 어리둥절했다.>


이렇게 하고서 열흘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음은 [나타샤]라는 작품입니다. 자야 여사는 흔히 보는 기생이 아니었습니다. 기생 하기 싫어서 얼마나 도망을 다녔는지 몰랐다고 합니다. 나중에는 조선어학회에서 이 여자를 동경으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졸업할 무렵이 되어 아무도 오지 않고 소식이 없어서 함흥으로 갔습니다. 조선어학회 사람들이 모두 감옥에 들어갔기 때문에, 만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허사였습니다.

도저히 면회가 이루어지지 않자, 자신이 기생 출신이니까 기생을 해봐야겠다고 함흥에서 제일 큰 \"함흥관\"에 들어갔습니다. 함흥관에 들어간 첫날 거기에서 백석을 만난 거지요. 백석이 첫눈에 반해서 \"내 마누라가 여기에 있다\"고 선언했답니다. 당시 백석은 스물 여섯, 자야는 스물 둘이었답니다. 하지만 방랑벽이 있던 백석은 만주로 떠돌고, 자야는 서울로 와 명월관의 기생이 되었습니다. 이제 분단이 되어, 두 사람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운명으로 갈라놓았습니다만, 다음의 시는 시속의 화자가 백석이 되어 자야를 찾아가는 것을 상정하고 쓴 시입니다.

<나는 갔다. 백석이 되어 찔레꽃 꺾어들고 갔다. 간밤에 하얀 까치가 물어다 준 신발을 신고 갔다. 그리운 사람을 찾아가는데 길을 몰라도 좋았다. 마당의 느티나무 아래서 젊은 여인들은 날 알아채지 못하고 차를 마시며 부처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까치는 내가 온다고 반기며 자야에게 달려갔고, 나는 극락정 마당 물 위를 밟으며 갔다.

하얀 눈이 내리면 재로 뿌려달라던 흰 유언을 밟고 갔다. 참나무 밑에서 달을 보던 자야가 나를 반겼다. 느티나무 밑은 대낮인데, 참나무 밑은 우리 둘만을 위한 밤이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울었다. 죽어서 만나는 서러움이 무슨 기쁨이냐고 울었다. 한참 울다보니 그것은 장발이 그려놓고 간 그녀의 스무 살 때 치마였다.

나는 그 치마를 잡고 울었다. 죽어서도 눈물이 난다는 사실을 손수건으로 닦지 못하고 울었다. 나는 말을 못했다. 찾아오라던 그녀의 집을 죽은 뒤에 찾아와서도 말을 못했다. 찔레꽃처럼 속이 타들어갔다는 말을 못했다. 나는 말을 못했다. 찾아오라던 그녀의 집을 찾아와서도 말을 못했다. 찔레꽃 향기처럼 속이 타들어갔다던 말을 못했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아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를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디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흰 바람벽이 있어

 

흰 바람벽이 있어


오늘 저녁 이 좁다란 방의 흰 바람벽에

어쩐지 쓸쓸한 것만이 오고간다

이 흰 바람벽에

희미한 십오촉(十五燭) 전등이 지치운 불빛을 내어 던지고

때글은 낡은 무명 샷쯔가 어두운 그림자를 쉬이고

그리고 또 달디단 따끈한 감주나 한잔 먹고 싶다고 생각하는

내 가지가지 외로운 생각이 헤매인다

그런데 이것은 또 어인일인가

이 흰 바람벽에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있다

내 가난한 늙은 어머니가

이렇게 시퍼러둥둥하니 추운 날인데 차디찬 물에 손은 담그고

무이며 배추를 씻고 있다

또 내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내 사랑하는 어여쁜 사람이

어느 먼 앞대 조용한 개포가의 나즈막한 집에서

그의 지아비와 마주앉어 대구국을 끓여 놓고 저녁을 먹는다

벌써 어린것도 생겨서 옆에 끼고 저녁을 먹는다

그런데 또 이즈막하야 어느사이엔가

이 흰 바람벽엔

내 쓸쓸한 얼굴을 쳐다보며

이러한 글자들이 지나간다

─ 나는 이 세상에서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어가도록 태어났다

그리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내가슴은 너무도 많이 뜨거운 것으로 호젓한 것으로 사랑으로 슬픔으로 가득찬다

그리고 이번에는 나를 위로 하는 듯이 나를 울력 하는 듯이

눈질을 하며 주먹질을 하며 이런 글자들이 지나간다

─ 하늘이 이 세상을 내일적에

그가 가장 귀해하고 사랑하는 것들은

모두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그리고 언제나 넘치는 사랑과 슬픔속에 살도록 만드신 것이다

초생달과 바구지 꽃과 짝새와 당나귀가 그러하듯이

그리고 또 \'프랑시스 쨈\'과 \'도연명\'과 \'라이넬 마리아 릴케\'가 그러 하듯이
흰 바람벽이 있어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남신의주(南新義州) 유동(柳洞) 박시봉방(朴時逢方)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끝에 헤메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木手)네 집 헌 삿을 깐,
한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이 생각하며,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오면,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위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하며,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고 자리에 누워서,
머리에 손깍지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 하는
것이었다.
내 가슴이 꽉 메어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정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 인것을 생각하고,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끼며, 무릎을 꿇어보며,
어니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어두어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고향(故鄕)

 


나는 북관(北關)에 혼자 앓아 누워서
어느 아침 의원(醫員)을 뵈이었다.
의원은 여래(如來) 같은 상을 하고 관공(關公)의 수염을 드리워서
먼 옛적 어느 나라 신선 같은데
새끼손톱 길게 돋은 손을 내어
묵묵하니 한참 맥을 짚더니
문득 물어 고향이 어데냐 한다
평안도(平安道) 정주(定州)라는 곳이라 한즉
그러면 아무개씨(氏) 고향이란다.
그러면 아무개씨(氏)ㄹ 아느냐 한즉
의원은 빙긋이 웃음을 띠고
막역지간(莫逆之間)이라며 수염을 쓸는다.
나는 아버지로 섬기는 이라 한즉
의원은 또다시 넌즈시 웃고
말없이 팔을 잡아 맥을 보는데
손길은 따스하고 부드러워
고향도 아버지도 아버지의 친구도 다 있었다.


수라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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