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주말이었다.
날씨가 안좋아 하루종일 집에 있어야할 생각을 하니 일단 먹을 것 걱정부터 되었다. 나는 아침부터 호박, 무, 피망, 소고기 그리고 고추다대기를 흠뻑 넣고 고깃국을 한솥 끓였다. 반찬걱정없이 하루종일 앉아서 이거나 먹을 양으로다가.
그런데 아침일찍 빵집에 빵사러갔던 남편이 고깃국 냄새가 집안을 진동하자 인상이 갑자기 뚱해졌다.
‘뭐야, 또 국끓여? 내건 뭐 없어?’
‘자기거 내거가 어딨어? 뭐 고깃국 한솥 끓여놨으니깐 밥말아 그거나 먹어.’
독일사람들은 국종류를 좋아하지 않는다. 수프도 전채요리로나 먹지 한끼 식사로 수프를 먹는 사람이 별로없다. 게다가 남편은 고기를
좋아해서 고기볶음이나 스테이크같은 걸 먹어야 한끼 먹었다고 치지 국같은 건 여러그릇 먹어도 성에 안차는 사람이다. 먹는데 목숨건
사람이라 여행을 가도 먹는데 돈을 제일 많이 쓰고(중국서 다람쥐구이, 거미구이, 개고기, 뱀술 등을 먹거나 마신 경험이 있음)
쥐꼬리 월급받는 주제에 장을 볼때도 유기농만 사는 사람이다. 그러다보니 한끼라도 부실하게 먹으면 치질걸린 사람 피똥싸는 인상이
된다. 이런 사람한테 하루종일 고깃국이나 먹으라 한 내가 잘못이지.
아니나 다를까 흡사 흥분한 프랑스 시민들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듯 나를 공격한다.
‘너는 뭐 맨날 니가 먹고싶은 것만 요리해서 먹니? 언제 한번 내가 먹고싶은 거 요리해준 적 있어? 나 봐. 지금 너 먹으라고 빵도 사왔잖아. 맨날 먹는건 내가 챙겨야돼!’
달랑 빵 한봉지 사가지고 들어온 주제에 유세도 이런 유세가 없다. 그런데 그 말을 듣자하니 무슨 이런 욕심장이가 다있나 싶다.(남편은 욕심장이, 뚱뚱이같은 한국말을 알아듣고 그렇게 불리는 것을 불쾌해한다.)
사실 최근들어 내가 예전보다 자주 밥을 짓고 국을 끓인 것은 사실인즉 이유는 다음과 같다. 왕년의 나는 한끼 식사로 호떡이나
오뎅, 심지어 새우깡 한봉지만 먹어도 남아도는 힘을 주체할 수가 없어 에어로빅 학원에 가면 두탕씩 뛰곤했던 정력의 소유자였다.
헌데 30대 중반을 넘기고 나니 어찌된 것이 밥과 국을 안먹으면 도무지 기운을 차릴 수가 없는거다. 요즘에 와서 옛날 어른들
하는 말씀 하나도 틀린게 없다는게 뼈저리게 느껴진다.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는 말. 칼로리가 밥보다 높다는 초코빵같은 걸 먹으면
금방 배가 꺼지고 그러다보니 뱃속에 힘이 없어서 크게 소리내어 말하지도 못할 지경이다.
그런 까닭에 한인회에 가입하지도 않았으면서 한인회에서 무슨 잔치를 한다 하면 꼭 득달같이 뛰어가서 한그릇 먹고온다. 집에선
김치만 있어도, 하다못해 김 한 장만 있어도 밥위에 척척 얹어서 먹어야 먹은 것 같지 서양음식은 기운난다는 스테이크를 먹어도 늘
허기가 지는 것이다.
내 몸상태가 이렇건만 먹는 것에 목숨건 남편을 둔 나는 주로 내 입보다는 남편의 취향을 고려해서 퇴근시간 무렵이면 스파게티다
피자다해서 서양요리를 하고 때때로 지금까지 보도듣도못한 요리를 스스로 발명해내어 대령하기도 했다. 그뿐인가. 생긴건 마당쇠지만
입은 대감인 남편을 위해 파는국수 대신 늘 손으로 밀어서 국수만드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이제는 파는국수는 아예 거들떠도
안본다. 손국수가 쫄깃하다고 그것만 찾는다) 상황이 이러하거늘 어디서 내가 먹고싶은 것만 요리해 먹는다는 소리가 나와?
그래서 나는 반격에 나섰다.
‘당신 그저께 먹은 건 뭐고, 그그저께 먹은 건 뭐야? 생각안나?’
그저께는 토마토소스 넣고 볶은 다진고기 파이를 했었고 그그저께는 다진고기넣은 볶음국수, 그리고 호박전을 해주지 않았냐고 맹공격에
나서니 긴 생각할 필요도 없이 순순히 항복을 선언한다. 내말이 맞다고. 그저께 다진고기 파이 먹은거 맞고 그그저께 볶음 손국수에
호박전 먹은 거 맞지만 오늘도 맛난 걸 먹고싶은 마음에 그렇게 얘길 했다고.
남편이 미안하다고 두어번이나 말했지만 나는 분이 가시지 않아 1주일간 요리거부를 선언했다. 이것은 먹는데 목숨건 우리 남편에게
1년간 포르노 못보는 벌보다 더 무서운 벌이다. 나는 요리거부를 선언하고 보란듯이 수퍼엘 갔다. 가서 진짜로 입때까지 내가 먹고
싶었지만 남편 밥해주느라고 안먹었던 것들을 속속샀다. 게다가 이왕 하는 김에 아주 김치까지 담자싶어 배추 3단과 내 장딴지만한
무도 샀다. 오랜만에 옥수수가 나왔길래 그것도 쪄서 먹으려고 샀는데 하나만 사고 싶었지만 두 개들이 한 팩만 팔아 한 팩을
샀다.
호박을 채썰고 양파를 채썰고 새우를 넣고 전을 붙였다. 매콤한 양념장을 만드느라 고추장과 식초, 통깨, 참기름, 그리고
삼발올렉이라는 고추다진 소스를 넣고 양념장을 만들었다. 전은 발그레하니 맛있게 부쳐졌다. 한솥 끓여논 국은 아예
식혀서 냉장고에 넣을 셈을 하고 요리를 했다. 후라이판에선 기름이 지글지글하고 솥에선 옥수수가 쪄지고... 내가 부엌에 들어앉아
요리를 하니 남편이 아주 신이났다. 연신 부엌을 들락거리면서 냄새를 맡고 좋아죽는다.
‘자기 먹으라고 하는거 아니야. 다 내꺼야. 전도 딱 3장만 부쳐서 혼자 다 먹을거야.’
하고 쌀쌀맞게 말했더니 싱글싱글 웃으며 하는 말이 가관이다.
‘거기 밀가루 후려논거 보니깐 열장은 부치겠네.’
부쳐논거 먹지 말라고 했더니 진짜로 손도 못대고 그러고 서있다. 그 모양새가 불쌍해서 결국은 옥수수도 하나는 내가 먹고 하나는
남편에게 주었으며 전도 여러장 부쳐 두어장은 남편 먹으라고 주었다. 그는 이렇게 먹고도 성에 안차 케밥을 사러나갔다. 그
뒷모습이 좀 불쌍해보였지만 그날 저녁 나는 잠들기 전에 단단히 으름장을 놓았다. 옥수수 얻어먹었다고 혹시나 하는 생각 아예
말라고. 일주일동안은 국물도 없으니 저녁은 계속 케밥을 먹든지 직접 요리해서 먹으라고.
어젯밤에 그랬는데 그걸 그동안 잊었는지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은 뭐야?’
‘저녁이 어딨어? 케밥먹고 들어와. 아니면 집에와서 밥이랑 김치겉절이 먹든가.’
말은 이렇게 했지만 속으로 나는 고민이다. 일주일이라고 했으니 이틀은 못버티더라도 하루는 버텨야 하지않을까? 내일부터 밥을
해줄값에라도 오늘 저녁은 걸러야하지 않을까 싶은데 그럼 남편의 그 먹는 타령을 내가 어떻게 견딜까 싶다.
대부분의 독일사람들은 요리를 나만큼 자주하지 않는다. 아침은 콘플레이크로, 저녁은 각종 곡식이 들어간 검은 빵에 치즈, 살라미
등으로. 남편 역시 총각때는 요즘처럼 직접한 요리를 많이 먹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애초에 내가 버릇을 잘못들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남편의 모습이 보기좋아 몸이 피곤해 부서질 것 같아도 계속 요리를 하다보니 어느새
요리는 내차지가 되고 말았다. 나도 나지만 우리 남편 모습좀 보라지? 결혼초 75킬로그램이던 사람이 지금은 90킬로가 다돼간다.
칭찬해주면 좋아서 고꾸라지는 내 천성탓이다. 으이구 누가 개띠아니랄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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