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한글학교 기념행사에 간 적이 있었다.
교회에 다니지 않기 때문에 한인행사에 나간적이 한번도 없었는데
내가 가입한 합창단에 축하출연을 해주십사 연락이 와서
생전 처음으로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행사는 5시에 시작되었다. 국기에 대한 맹세, 애국가 제창과 함께.
정말 몇 년만에 들어보는 국기에 대한 맹세이며
몇 년만에 불러보는 애국가인가 싶었다.
그것들은 한국에서조차 대한늬우스와 함께 사라졌는데
이 21세기가 밝은 지도 한참 지난 이 시점,
한국도 아닌 독일에서 다시 듣게된 것이다.
행사를 주최한 한인들 대부분이 60, 70년대 독일로 이민오신 분들이라
당시 보편적으로 행해졌던 행사의 의식을 따르는 모양이었다.
국민교육헌장과 만세삼창이 빠지긴 했지만.
곧이어 VIP들의 축사가 이어졌다.
먼저 한인학교 교장을 비롯, 영사관에서 나온 높으신 어른, 한인회 회장,
학교를 후원해주는 사람 등등...
내용이래봤자
‘힘들게 이민와서 외국땅에 한인학교를 세운 한국인이 자랑스럽다’
이쯤 되겠는데 비슷비슷한 내용을 다른 사람이 나와서 읽어대니
얼마나 지루했는지 모른다.
축사가 겨우 끝나는가 싶어
이제서야 공연을 좀 보나 했더니
이젠 감사패를 수여하는 순서란다.
축사를 한다 감사패를 수여하고 받는다
이러는데만 한 시간이 족히 걸렸다.
주위를 돌아보니 외국사람들도 꽤 있다.
그 사람들은 한마디도 못알아듣는 한국말을
1시간이나 듣고 앉아있었으니 나보다 더 지루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생략하고 딱 한명,
한인학교에서 글공부배우는 학생대표가 그간 배운 한국말로
그 모든 인사말을 대신했다면 제일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보고 앉아있자니 작년에 한국갔을 때
조카들의 초등학교 운동회엘 따라갔던게 생각났다.
그 운동회 폐회식때 잠깐 국회의원이 왔던 모양이었다.
폐회식을 선언하고 청군 백군 승리를 알리고 상을 수여하고 어쩌구 하는데 국회의원이 왔다고 사회자가 국회의원에게 마이크를 넘기는 것이었다.
애들 운동회하는데 난데없이 무슨 국회의원의 축사인지 모르겠다고
학부형들이 김밥을 먹다말고 수군거렸다.
나 역시 그 국회의원이 무슨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난다.
어딜가나 VIP의 축사란 다 지루하기 마련인 모양이다.
아침조회때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결혼식에선 주례사가,
읍민체육대회에선 읍장님의 말씀이 제일 지루하다.
나는 비오는 날만 빼고 매주 월요일 아침조회때마다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12년동안이나 들었지만
그중 기억에 남는 말씀이 한마디도 없고,
양월리 대표로 읍민체육대회 400계주를 달리느라
해마다 읍민체육대회에 참가했지만
기억에 남는 읍장님의 말씀 역시 한마디도 없다.
혹시나 당신이 VIP축에 속하는 사람
(이장님, 면장님, 읍장님, 청장님, 시장님, 국회의원, 장관,
교장선생님, 주례, 청년회회장님, 부녀회회장님, 총동창회회장님 등등)
이라면 한가지 부탁하고싶다.
축사를 좀 재미있게 해달라.
짧게하는 것은 더 좋고, 안하는 것이 제일 좋다.
그래도 바쁜데 없는 시간쪼개서 행사장까지 갔는데
생색은 내고 와야할 거 아니냐는 VIP분들이 계실 것이다.
이런 분들,
축사로 생색내는 대신 큼지막한 명찰을 달기 바란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이 당신이 왔다간 걸 기억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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